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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15. 2023

여자는 다 그래?

feat. 오페라 코지 판 뚜떼(Cosi fan tutte)

각본 로렌조 다 폰테
음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앞서 이 콤비가 이루어낸 대 히트작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에 이어 등장한 세 번째 작품이 있다. 바로 '코지 판 뚜떼'라는 오페라인데, 사실 이태리어를 직역하자면 '그들은 모두 그래'라는 의미로, 좀 더 작품의 의도에 맞게 의역하면 '여자들은 다 그래'라는 뜻이다. 제목으로 풀어써놓기에는 뭔가 명확한 구석이 없다는 느낌 때문인지 아니면 읽는 순간 여성들의 '발끈'을 유발할까 두려워서인지, 이 오페라는 어느 나라에서 막이 오르건 간에 '코지 판 뚜떼(Cosi fan tutte)'라는 제목을 그대로 고수한다. 일단 외국어라는 이유로 그 의미가 상당히 완화되는 느낌은 분명 있어서가 아닐까.


이 작품은 다 폰테 & 모차르트 콤비의 앞선 두 히트작 대비 사실상 빛을 거의 보지 못한 다소 운이 없던 작품이다. 1790년 1월 비엔나의 부르그 시어터에서 초연되었는데, 불과 다섯 번의 공연을 마쳤을 무렵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 황제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국상 기간에 들어갔고 공연은 중단됐다고 한다. 전적으로 이것이 원인이었는지, 아니면 정말 작품 자체에 흥행 요소가 다소 부족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유가 어떠하건 간에 이 작품은 그 이후 모차르트의 생전에는 비엔나에서 단 한 번도 다시 막을 올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발표 당시 전혀 주목받지 못하다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하니, 뒤늦게 모차르트의 오페라로서 발굴을 당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런 배경을 모르고 그저 작품을 접해본다 해도 사실 타 히트작 대비 다소 재미는 떨어진다는 느낌은 분명 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자면 '피가로의 결혼'처럼 얽히고설킨 복잡한 플롯과 갈등관계 같은 흥미 요소가 약하고, '돈 조반니'처럼 당시엔 다소 자극적일 수 있었을 법한 스토리 라인에 결국 주인공이 심판당하는 드라마틱한 엔딩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아마 그 이유가 아닐까.


다만, 이렇게 '재미'를 담보로 하지는 않지만 오페라의 본질적인 요소가 '음악'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본다면, 이 작품은 충분히 대작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야말로 모차르트가 모차르트 했기 때문이다. 음악 자체를 들어보자면 정말 아름다운 곡들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 작품들 대비 대중에게 어필되는 곡들이 상대적으로 없다는 것은 어쨌든 '드라마'가 대중에게 크게 다가가지 못했음을 의문의 1패 원인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간략히 스토리 라인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작품은 18세기 이태리의 나폴리를 배경으로 하는 어느 상류층 집안의 두 자매인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 그리고 이들의 연인인 굴리엘모와 페란도라는 청년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여자들의 정절이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하는 극 중 철학가 돈 알폰조라는 인물과, 이 자매들을 현혹하는데 크게 일조하는 그녀들의 메이드 데스피나까지, 도합 여섯 명의 출연자가 나온다. 그 흔한 오페라 코러스도 등장하지 않고, 약간의 조연 역할을 맡는 연기자들이 잠시 등장할 뿐이니 이 여섯 명으로 대단한 드라마를 만들어내기엔 역부족이었을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이미지 출처: 구글 서치(미상)


어느 날 돈 알폰조는 두 젊은 청년 굴리엘모와 페란도에게 말한다. 이 세상에 정절을 지키는 여자는 단 한 명도 없고, 모든 여자들이 변덕스럽다는 것을 단 하루 만에 증명해 보일 수 있다며 이 청년들에게 내기를 건다. 내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군인인 두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게 됐다며 그들의 연인인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를 속인 후, 변장을 하고 나타나 서로의 파트너를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여인들이 유혹에 넘어가면 돈 알폰조의 승이 될 테고, 여인들이 끝까지 넘어가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두 청년들의 승이 되는 것이다.


하나의 내기를 두고 세 남자의 동상이몽이 펼쳐진다. 이 젊은이들은 너무도 사랑하는 연인들이 절대 자신들을 배신하지 않을 거라 굳건히 믿기에 당연히 내기에서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고, 돈 알폰조는 두 여성들이 '보나 마나' 마음이 변할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당연히 자기가 내기에서 이길 것이라 자신하고 있다.


알바니아인으로 변장하고 자매 앞에 나타난 두 남성은 다짜고짜 이들을 유혹하기 시작한다. 서로의 파트너를 바꿔 굴리엘모는 도라벨라를 유혹하고, 페란도는 피오르딜리지를 유혹하는 것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꼭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국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게 음역대가 높은 보이스 타입끼리(소프라노&테너), 그리고 낮은 보이스 타입끼리(메쪼 소프라노 & 바리톤) 파트너를 이루는 경우가 보편적인데, 이 작품에서는 피오르딜리지(소프라노)와 굴리엘모(바리톤)가 연인 사이로 등장하고 도라벨라(메쪼 소프라노)와 페란도(테너)가 연인으로 등장한다. 이를 통해 변장 후 서로의 파트너를 유혹함으로써 잠시 일어나는 파트너 스와핑의 상황에서는, 피오르딜리지(소프라노)와 페란도(테너)가 짝을 이루고, 도라벨라(메쪼 소프라노)와 굴리엘모(바리톤)가 짝을 이루게 된다. 아마도 귀가 예민한 분들이라면 바뀐 파트너들끼리의 조합이 왠지 더 안정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는 모차르트가 상당히 스마트하게 의도적으로 담은 요소로 보인다.

이미지 출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그래서 서로의 연인을 유혹한 결과는 어찌 되었을까? 도무지 바위처럼 굳건하게 넘어가지 않을 것 같던 두 여인은 결국 마음이 흔들려 넘어갔고, 심지어 새로운 파트너들과 결혼식까지 올리는 상황에 간다. 이 결혼식의 와중에 타이밍 딱 좋게(?) 전장에 나갔던 연인들의 군대가 돌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가 패닉에 빠진 사이 이들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두 자매의 변심에 크게 화를 낸다. 잠시 후 그들은 자신들이 바로 그 알바니아인 남성들이었단 것을 알아볼 수 있게끔 변장을 반만 하고 나타나고, 결혼식 공증인마저도 두 자매가 새로운 남성들에게 넘어가도록 열심히 부채질을 해대던 메이드 데스피나가 변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들이 속았음에 분노하게 된다.


이들은 서로에게 화가 났다. 그러나 살짝 꼬이다 만 이 갈등의 실타래는 돈 알폰조에 의해 급마무리가 이루어진다. 어쨌든 내기에서 이긴 돈 알폰조는 이렇게 말한다. 결국은 모두가 서로를 용서해야 하고, 인생에는 피할 수 없는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는 법이라며, 그것들을 지혜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오페라 전체의 막을 내리게 된다. 결국 우리가 흔히 결혼식장에서 들을법한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당신의 좋은 배우자가 되겠습니다'라는 선언의 유러피안 스타일인 건데, 결혼으로 결속되지 않은 이들 연인의 관계에서 과연 그 이후에도 이 커플들은 Happy ever after가 가능했을까?




여전히 사랑의 호르몬이 들끓고 있을 시기의 아름다운 두 커플을 두고 괜한 내기를 벌였으니, 머잖아 결국이들은 각자의 갈길을 갑니다라는 결말이 그려지는 건 나만의 상상일까. 여자들은 모두 똑같다는 궤변을 증명하기 위해 참으로 쓸데없는 연극을 벌인 남자들도 결국은 다 마찬가지라고 품은 얘기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 이것은 성별 대결의 이슈라기보다 그저 사람은 다 그렇다고 해야 맞지 않겠나.


극의 진행은 다소 진부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나, 매번 등장하는 음악은 아름답기 짝이 없으니 감히 '재미없는 오페라'라는 오명을 덮어 씌우기엔 참으로 미안스럽다.


이 작품은 미국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1922년에 막을 올렸는데, 20세기에나 들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하니 아마도 뉴욕 메트가 그의 시발점이 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현대까지도 오페라 좀 듣는다 하는 분들은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는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작품이기에 한 번쯤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결혼 반대 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냐는 논란이 따라붙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성 vs 남성의 성대결로 단정 짓기보다는 작품 전체의 큰 그림을 본다면, 결국 유혹에 쉽사리 흔들리는 것이 인간 본연의 마음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좋은 때와 나쁜 때를 잘 포용해야 한다며 마무리하고 있지 않은가. 식상하게 그걸 말해주려고 3시간에 걸쳐 순진한 아가씨들을 그렇게도 뒤흔들었나 싶지만, 어쨌든 다 폰테와 모차르트가 말해주고 싶었던 건 '인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한다. 여자만 다 그런 게 아니라, 여자든 남자든 사람은 다 그렇고 그렇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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