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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Aug 30. 2023

행복하자니 웃어야죠~

아유~ 무슨 여자아이 웃음소리가
그렇게 요란해~


내가 어린 시절에는 '여자 아이가~'라고 시작하는 말을 아쉽잖게 자주 접할 수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사고방식이 고루했던 그 시절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이 말 자체를 딱히 큰 문제로 생각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저 그러려니..


나는 어려서부터 웃음소리 하나는 호탕했다. 뭔가 재미난 것을 보면 서슴지 않고 시끄럽게 웃어젖히며 나의 감정 상태를 한껏 드러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엄마는 쟤가 누굴 닮아서 저리 어허~거리며 웃는지 모르겠단 혼잣말을 하시곤 했는데, 딱히 야단을 하시는 건 아니었기에 나는 어떤 말에도 위축되지 않고 나만의 호탕한 웃음을 살아오는 내내 쭉 지켜왔다. 아마도 내가 비교적 건강한 체질로 잘 살아올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런 호탕한 웃음이 뒷받침된 건 아닐까? 최근 우리는 '웃음'이 신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익히 들어 잘 알지 않나.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족과 함께 호주에서 살기 시작했다. 아무리 한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다한들 현지에서 맞닥뜨린 생활 영어를 능숙히 구사해 내기까지는 물론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다. 처음엔 당연히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듯 상대의 말에 최대한 촉을 세워 열심히 들어야 했는데, 그렇게 들어도 100% 알아듣지 못하는 건 당연지사. 그럴 때 가장 유용했던 게 바로 '웃음'이었다. 흔히 입장이 곤란하거나 당신 말을 내가 다 알아듣지 못했지만 알아들은 걸로 치자는 제스처를 보내기에 '미소' 또는 '웃음'처럼 쓸모 있는 방법은 또 없었지 싶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시드니에서의 어느 날이 있는데, 모처럼 극장에 갔을 때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시리즈인데 아마도 슈렉 2편을 보러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즈음엔 이미 못 알아듣는 수준에서는 벗어난 지 한참 지난 때였지만, 아무리 영어를 잘한다 해도 '유머'를 너끈히 소화하는 건 외국어 능력에서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야 가능한 일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어쨌든 나에게는 늘 '제2 외국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던 게 영어이다 보니, 웃음이 많이 터져 나와야 하는 콘텐츠를 보면서 나만 웃지 않는 포인트가 발생한다는 건 정말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 일이었다.


이런 어쭙잖은 자존심을 마음 한구석에 움켜쥔 채,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듣고 열심히 웃어젖혔다. 그야말로 영혼을 빼내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본다면, 저 혼자만 세상 그렇게 웃긴 게 또 있을 수 있나 하는 모양새였다. 지금 떠올려보면 너무 부끄럽지만, 앞에 앉았던 호주 아주머니는 내가 너무 시끄럽다고 생각했는지 살짝 눈치를 주셨다. 무척 sorry 하지만 이 말을 이제야 전해드릴 길은 없으니 그저 죄송할 따름. 누구보다 열심히 웃음으로써 그 유머를 모조리 이해하고 있다는 걸 확실하게 입증하고 싶었다.(지금 보니 이게 젤 우습다)




이제 기력이 다해간다는 무엄한 발언을 던지기엔 아직 그래도 한창인 중년이지만, 어쨌거나 기운이 전만 못한 지 이제는 그렇게까지 호탕하게 웃는 일이 많지는 않다. 어쩌면 웃을 일 자체가 많이 사라진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함도 좀 느껴진다. 그렇지만 나의 웃음 DNA를 고스란히 전수받은 자가 있으니, 바로 우리 딸내미이다.

아이는 재미난 것, 웃긴 것을 보면 집이 떠나가라 웃는다. 그런 아이를 바라보면 옛날 그 시절 우리 엄마가 나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겠구나 싶어 피식 웃음이 나곤 한다.


살면서 그나마 아이 덕분에 웃는다는 말을 참 많이 하게 된다. 아이는 종종 내가 무심코 하는 말이나 표정에도 너무 즐거워하며 웃음을 터트리곤 하는데, 뭐가 그렇게 웃기냐고 물어보면 엄마가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는 굴러가는 나뭇잎에도 웃음이 터진다고 하던가. 아이가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그렇게 웃을 일이 아주 많으면 좋겠다. 사실 웃을 일이란 많이 생기고 안 생기고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오늘 이른 아침 들었던 라디오 방송에서 웃음 강사의 비법을 공유해 줬는데 정말 간단하다. 크게 웃고, 길게 웃고, 온몸으로 웃으면 된단다. 얼마나 들 안 웃고 살면 웃음을 전수하는 강사가 다 존재할까.

그러게 살면서 조금 더 마음을 유연하게 갖고 의식적으로 많이 웃어봐야겠다. 아이가 웃을 때 누가 더 시끄럽게 웃나 내기해 볼까. 그럼 하늘에서 우리 엄마가 어이없어 웃으시려나...






글쓰기로 우주정복을 꿈꾸는 브런치 작가들이 모여 팀라이트가 되었습니다. 팀라이트 매거진에는 매월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하여 각양각색 이야기를 작가님들의 다른 시선과 색깔로 담아 갑니다. 이번 달 주제는 <웃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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