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뮤 Jan 03. 2024

삶이 곧 배움이라는 것을 아이에게서 다시금 배운다

요즘은 학사 일정이 학교 재량껏 진행되다 보니 이미 방학이 시작된 학교들도 많지만 우리 아이는 이번주 금요일에 종업식을 한다. 학교 입학한다고 가방 메고 가는 뒷모습이 짠하던 게 언제라고 2학년을 올라가더니 그마저도 이제 끝났다. 1년이 얼마나 속절없이 흘러가는지 새삼 또 깨닫는 요즘이다.


이제 학과정도 사실상 다 마무리가 된 상태이다 보니 선생님께서 다양한 과외활동을 기획하신 듯했다. 오늘은 학교에서 '알뜰시장'을 할 거라며 사용하지 않는 물건이나 더는 필요하지 않은 것들 중 친구들에게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을 미리 생각해 두라는 공지가 열흘 전쯤 왔었다. 유독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을 넘어 집착까지 보이는 우리 딸은 그 어떤 것도 가져다 팔 것이 없다며 그저 배짱으로 날만 보내고 있던 터였다. 결국 하루 전 내가 나서서 이것저것 물건을 들춰보다 이제 더는 손이 가지 않는 듯한 것들 몇 가지를 추려내고 아이와 가격을 결정했다. 100원부터 500원까지 정할 수 있었는데, 가장 멀쩡하고 예쁜 데다 유용하기까지 한 필통 한 가지에만 500원을 붙이고 나머지는 모두 100~200원 선으로 결정했다.


아이에게는 더 이상 필요한 물건이 아니지만 친구들이 봤을 때 예쁠법한 것, 필요할 법한 것들을 기준으로 선정해 봤다. 그리고 물건의 상태와 크기, 활용도 등을 고려해 나름의 가격을 붙여봤는데 이런 일련의 마케팅 활동을 아이가 제대로 이해하긴 했을까? 그저 재미로만 생각한 것 같지만 은연중에 이 역시도 배움이 있었으리라.




방학 전 학교의 사물함을 비워내야 하기에 오늘 유독 보따리가 많 것이라 예상되어 교문 앞까지 아이를 마중 갔다. 역시나 바리바리 한 무더기를 들고 나타난 아이의 얼굴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시무룩함이 가득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니?"


아이는 웅얼웅얼 금방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요약해 보자면 이런 내용이었다. 친구들이 자기가 준비한 물건들을 사주지 않았는데, 자기는 필요한 물건 몇 가지를 사다 보니 준비한 2천 원이 금방 줄어들어 700원이 남았다는 것이다. 물건에만 집착을 보이는 게 아니라 돈 역시도 아직 쓰는 것보다 쥐고 있는 것에 더 익숙한지라 가지고 있던 돈이 조금만 남았다는 데서 현타가 온 모양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자기 물건을 사주지 않은 것이 그렇게도 속상했단다.


"음... 그래 네가 준비한 게 잘 안 팔리니 속상하긴 했겠다.. 근데, 그래서 무슨 생각이 들었어? 다른 친구들이 준비한 물건은 어땠길래 더 잘 팔린 것 같아?"


"애들이 다 장난감을 가지고 왔단 말이에요.. 나는 내 장난감들이 다 소중해서 팔 수가 없는데...(눈물 그렁그렁)"


"아.. 그랬구나.. 아직은 너희들이 어린 친구들이란 걸 미처 고려하지 않았네.. 아무래도 유용한 학용품보다는 놀잇감이 좀 더 매력적으로 보이긴 했겠다.. 그래서 오늘 뭘 깨달았어?"


"돈이 들어오지 않고 내가 쓰기만 하니까 조금 남아서 너무 속상했어요.. 돈 많이 번 친구들이 막 자랑하고 다녔는데.. 그래서 내 물건 안사준 친구들 다 나빠...(실제 울기 시작)"


나는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오늘 아주 좋은 경험을 하나 만들었구나 싶었다. 물건을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보지 않았으니 잘 팔릴 리가 없었다는 것, 그리고 물건을 팔아 돈을 벌지 못한 상태에서 쓰기만 하니 돈이 줄어들어 속상하다는 것, 열 마디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체험을 통해 자연스레 알게 됐을 테니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어디 있겠나.




집에 와서 자신이 구입한 물건들을 늘어놓는데, 산 것보다 친구들이 그냥 줬다는 게 더 많았다. 안 팔려서 속상했을지라도 친구들이 그냥 준 게 많으니 훨씬 기분이 좋겠다며 살짝 기분을 부추겨봤지만 여전히 뾰로통이다. 친구한테서 구매했다는 노트와 연필을 꺼내더니 조용히 앉아 그 연필을 깎는다. 그러더니 앉아서 한참 뭔가를 써 내렸다. 사각사각 연필 지나는 소리만 명쾌하게 들렸다. 그러더니 잠시 후 잔뜩 써 내린 종이를 내민다.


"엄마, 내가 오늘 속상했던 기분을 다 써봤어요.."


속으로 슬쩍 놀라며 나름 장문의 글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오늘 있었던 일련의 사건 기록과 함께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속상했는지를 서술했는데, 그 끝자락에 제법 기특한 깨달음이 있었다. 돈이 들어오지 않는데 쓰기만 하니까 많이 줄어들어서 너무 속상했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돈을 쓰지 말아야겠단다. 결과적으로 돈이 부족해서 갖고 싶은걸 더 사지 못했기 때문에 너무 속상했단다. 그리고 친구들이 물건을 안 사줘서 속상했으므로 다시는 알뜰시장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까지........(음?)


오늘의 레슨은 거기까지인 걸로.. 돈을 안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똑똑하게 제대로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이제 차차 얘기해 줘야겠다.


그보다 사실 아이가 속상했던 마음을 글로 써 내렸다는데서 나는 더 놀랐다. 다 쓰고 한단 소리가 아까는 엄청 속상했는데 글로 모두 썼더니 이제 괜찮아졌다는 것이다. 세상에.. 글쓰기의 효용을 그렇게 알아버렸다고?

나는 중년의 한복판에서 글쓰기가 얼마나 좋은지를 깨달았는데 아홉 살 인생이 그 좋은걸 스스로 깨달았다니 그저 기특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부디 앞으로도 그렇게 많이 쓰며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고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 가면 좋겠다.

와 이제 방학이다.(영혼 없음)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뒤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