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 등장하는 가공의 국가, 오세아니아의 최고 권력자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가공의 인물일 뿐이지만, 정치권력 집단이 내세운 독재자로 실존 인물이냐 아니냐에 대한 추측들이 난무하다. 어쨌든 그가 실제 하건 아니건 간에 그의 '존재'는 모두를 통제하려는 이 정치권력 집단의 '아이콘'으로써 지속 사용되기에, 말하자면 빅 브라더는 결코 죽지 않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내용 출처: 나무 위키)
이 소설의 빅 브라더가 모티브가 되어 호주에서는 24시간 일상을 감시하는 <빅 브라더>라는 리얼리티 쇼가 한동안 큰 인기를 끌었었다. 젊은 청춘 남녀 여럿을 모집해 동거시키는 가운데 이들의 일상생활을 감시 카메라와 같은 형태로 보여주며 매주 인기투표를 진행하여 1명씩 탈락시키고 최후까지 남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다소 이상한 프로그램이었다. 우리나라 정서상 이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사실 요즘 누군가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프로그램 포맷들이 너무도 보편화되었다. 빅 브라더 리얼리티 쇼의 순한 맛 정도라 해두겠다.
이런 관찰 예능의 성행은 누군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픈 어찌 보면 다소 관음증적인 본능과, 누군가에게 나의 삶을 낱낱이 까발리고 싶은 관종 본능이 만나 일구어낸 합작품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자동차에 블랙박스가 필수인 시대가 되었다. 어딜 가든 CCTV가 안 달린 곳이 없는 세상이다. 사실 어디서나 지켜보는 '눈'이 있다는 게, 뭔가 나의 자유가 침해되는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게 나를 대신해서 지켜봐 주는 수많은 눈들이 있어야 또 안심이 될 만큼 삭막하고 무서운 세상이라는 반증이니 참으로 씁쓸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요즘은 유튜브나 TV 프로그램 중에도 자동차 블랙박스 영상을 보여주는 콘텐츠들이 많이 있던데, 너무나 사실적인 현장을 여과 없이 보여주다 보니(공중파에서는 편집을 하기도 하지만) 무서워서 도무지 보고 있을 수가 없는 것들도 많이 있다. 그중에 다수는 요즘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보복운전'의 케이스도 많이 보이는데, 그런 영상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세상이 왜 이런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이 들곤 한다.
운전을 하면서는 누구나 오감각이 다 곤두서기 마련이고,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경고성 경적을 울리는 등의 행위는 운전하는 상황 중 기본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네가 뭔데 감히 내게 경적을 울리냐며 보복 운전을 가하거나, 차를 막아서고 내려서는 상대방 운전자에게 위협을 가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심지어 앞유리 닦느라 워셔액을 뿌린 게 옆 차로 튀었더니 왜 남의 차에 물 튀기냐며 달려들었단 얘기도 있었다. 그 얘길 본 이후로는 주행 중에 창문이 더러워도 맘대로 워셔액을 뿌려 닦지도 못한다.
왜들 이렇게 맘속에 화가 가득할까... 기본적으로 '네가 뭔데'라는 애티튜드는 어째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평등에서부터 근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우리는 모두가 동등한 입장인데 네가 왜 나에게 어떤 특정 행동을 하냐는 어깃장을 부림으로써 나의 위치가 좀 더 높아지거나 낮아지지도 않는다. 요즘 각종 흉악범들의 범죄 동기를 들어보면, 그저 상대가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그랬다는 답이 너무 많아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은 사실 어찌 보면,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얼마나 사람의 관심을 갈구하고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 뼛속까지 사회적이라는 인간의 본능 말이다. 그러니 상대가 날 무시하는 것 같고 내가 집단에서 아웃라이어가 된 것을 깨닫는 순간 단순히 섭섭한 걸 넘어서서 분노하게 되고 극한 경우 범죄까지 이어지는 게 아니겠나.
장난기 많은 남편과 아이는 간혹 CCTV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하고 웃긴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나는 물리적인 장난을 그다지 즐기지는 않는 편이라, 사실 누군가 정말 보고 있을 그 CCTV를 향해 무언가를 하지는 못한다. 똑같이 생긴 부녀가 그러고 장난치는 걸 보고 있자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데, 정말로 어딘가에 앉아 그걸 지켜보고 계시는 분은 재미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웬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할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렇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데에 그저 익숙해져 버린 듯하다.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항상 관찰해야만 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내 모습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게 일상 다반사가 되어 버렸는데, 그래서일까.. 익숙함에서 오는 무뎌짐 때문인 건지, 옛날 어르신들이 야단을 하거나 얼르는 상황에서, '그럼 못써! 누가 본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요즘 세상엔 택도 없는 말이 된 듯하다. '누가 보면 어때'라는 생각이 팽배하기에 서로를 대하는 태도도 다소 과감하고 무례해지는 상황이 초래된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블랙박스가 나의 행동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고 해도 거침없이 폭력을 행사하고 거침없이 무례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여하간 작금의 상황은 CCTV나 블랙박스를 넘어서서 이제는 줌(Zoom)과 같은 다양한 영상 애플리케이션을 통한 상호작용을 해야만 하는 세상이 왔으니, 우리는 카메라 앞에서의 삶이 어쩌면 좀 더 익숙해질 신인류로 거듭나는 게 아닐까 싶다.
요즘 아이들 대다수의 장래 희망이 유튜버라는 소리에 어이없다며 웃었는데, 남의 집 아이들 얘기인 줄 알았더니 실제 우리 집 꼬맹이도 영상을 찍는 사람이 되고 싶단 얘기를 한다. 그리고는 일상생활 중 뜬금없이 아주 종종 자신이 하는 것들을 동영상으로 찍어 달라는 주문을 해댄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서 뭔가를 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세대인 것이다.
시대의 패러다임은 자꾸만 바뀌어가는데, 나름 적응력이 빠른 나조차도 어디에 박자를 맞춰야 좋을지 잘 모르겠는 지경이다. 앞으로의 세대는 기성세대와는 아주 다른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갖게 될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뭔가 좀 더 사람 냄새가 가득하던 '옛것'에 대한 아쉬움이 커가는 요즘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속 빅 브라더는 다소 강압적이고 두려운 존재로 표현됐지만, 사실 이제는 어디서든 나를 향하고 있는 빅 브라더 즉, 감시 카메라를 볼 때면 오히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내 행동을 누군가에게 들킨다는 생각보다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준다는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수많은 카메라들은 진정 감시자일까 아니면 보호자일까...
요즘은 어딜 가든 무심결에 CCTV의 설치 여부를 찾아보곤 한다. 정말 의도치 않은 무의식적인 행동인데, 오히려 설치가 되어 있지 않은 구역을 발견하면 너무도 자연스럽게 '왜 없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만큼 당연시되어 버렸다.
나의 삶을 낱낱이 내 스마트폰에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서 나의 존재를 도심지 구석구석 빅 브라더들의 눈에 기록해야만 뭔가 알 수 없는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다소 이상한 세상..
어찌 됐건 렌즈 너머의 세상보다는 서로 간에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렌즈 밖에서의 세상이 참으로 그리워지는 날들이다. 정말 어서 속히 뉴 노멀을 넘어 다시금 노멀의 세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