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면서 치유받는 삶

by 마마뮤

나는 어려서부터 그랬다. 뭔가 속상하거나, 대단히 화가 나거나, 어떤 부정적인 감정을 마주하게 될 때면 모두 일기장에 써 내렸다. 빼곡히 써 내렸던 일기장들을 역시나 친정아버지께서 다 내다 버리셔서 지금은 그 기록을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나는 그렇게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써내리는 것이 어려서부터 익숙했던 것 같다. (잘 버리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아빠와 쓰레기'에 다뤘었다)


사실 직장에 다니고 삶이 바빠지니 맘먹고 일기를 쓴다거나 하는 일은 생각처럼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간단하게나마 소셜미디어에 생각을 잘 표현하곤 했는데, 그 조차도 결혼 후 아이 출산과 동시에 점점 더 멀어져만 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나는 감히 글 따위(?)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육아전쟁의 필드에서 허우적대고 있었으니까..

언제까지나 사회에서 왕. 성. 한. 활동을 이어가며 내 인생은 커리어 우먼의 정점에서 피날레를 찍게 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과 그러한 예측으로만 인생을 살아왔던 내가 생각보다 더 순식간에 육아를 전담하는 전업맘이 된 이후로는 사실 알 수 없는 작아짐과 자존감의 무너짐을 서서히 경험해 가고 있었다. 아무리 인생이 계획대로 되는 건 없다지만, 이건 정말 그다지 머릿속에 그려보지 않았던 역대급 대반전이었다.




자존감(自尊感)

나를 높이고 중히 여기는 감정이라는 자존감에 대해 그리 깊이 고민해보지 않았던 인생인데, 이 감정이 쪼그라드니 사람이 우스워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사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문제를 비약하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야말로 상대는 별 의도가 없는 말을 했는데 그 말을 '곡해'하는 건 온전히 자존감 게이지가 바닥을 친 내 몫이었다. 자연히 아이를 대하는 태도에도 좋을 리가 없었다. 스스로를 자꾸 지하세계로 끌어내리는 나로 인해 모든 관계가 불안정 해지고 있었다.




해법은 단 한 가지였다.

다소 준비 없이 다가왔던 브런치가 그것이었다. 친한 후배가 내게 브런치 해보라는 제안을 할 때도 진심으로 먹는 건 줄 알았다. 지금에야 꿈보다 좋은 해몽을 해보자면, 분명 내 영혼에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으니 어쨌든 먹는 것의 일종이라 봐도 크게 무리는 없지 않나 싶다.


나는 그렇게 다시금 글쓰기를 마주하게 되었다. 사실 예전처럼 나의 다양한 감정 상태를 바로 글로 옮기지는 못한다. 생각보다 여전히 아이는 손이 많이 가고, 육아와 살림에 치이다 보면 온전히 차분하게 생각을 하고 글을 적어 내릴 여유를 갖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어찌 됐건 혼자 컴퓨터를 마주하고 앉는 순간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내 머릿속 생각들을 한 자 한 자 끄집어내는 일이 즐겁다. 희한하게도 글을 씀으로써 칭찬받고 인정을 받으며 바닥을 긁고 있던 나의 자존감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더는 비약과 곡해란 없었다. 나에게 있어 '글'이란 그렇게도 놀라운 치유제였던 것이다.


브런치라는 곳은 참 희한하다. 감탄을 금치 못할 넘사벽 글력의 작가님들도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나처럼 아마추어지만 아주 형편없지는 않고, 그렇다고 또 프로는 아니지만 프로가 되기를 바라보는 수많은 작가님들이 모여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에 한없이 공감하며 우리는 서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브런치는 그렇게 '치유'가 존재하는 곳이란 생각이 든다. 아주 훌륭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의 삶이 이 곳에 담겨 있고, 우리는 그 삶 속에 존재할 뿐이다.





선생님을 만났다.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난 후엔, 나름 고심 끝에 정제된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 올렸었는데, 한 동안은 매주 올리는 글이 '다음'에 떡상을 해서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의 맹점은, 다시금 히트(?)를 치기 위해 글감에 대한 고심이 깊어지고, 오히려 글쓰기의 범위를 한정 짓는 오류를 가져오고 말았다. 내 나름대로 떡상의 요건(?)을 파악해버려 그 조건을 충족하는 틀 안에 내 글을 가두려고 했기 때문이다.


역시 사람은 '귀인'을 만나야 한다. 브런치 플랫폼에서 너무나도 크고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계신 스테르담 작가님과 연이 닿은 것은 그야말로 그 시점에 '신의 한 수'였지 싶다. 그저 한 명의 구독자로서 글을 꾸준히 많이 생산해 내시는 것에 대해 순수한 팬심으로만 바라봤었는데, 작가님의 글쓰기 철학과 방향성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며 근본적으로 생각에 큰 변화를 겪어가고 있다. 이번에 일곱 번째로 출간하신 '나를 관통하는 글쓰기'는 정말 글쓰기의 바이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씹어 소화시키며 읽어 내렸다. 나도 조금씩 이전보다는 더 글쓰기에 대한 나의 스펙트럼을 넓혀가 보고 싶다.




글은 나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가질 수 있는 권능이라고 생각한다.
글은 인간에게 허용된 최고의 자유다.


얼마 전 접하게 된 세바시 강연에서 소설가 김영하 작가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는 그렇게 설명했다. 단 몇 문장 만으로도 과거의 나, 어두운 지하실을 열어젖히는 효과를 나타내는데, 이런 행위가 필요한 이유는 과거의 자신과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한, 글을 쓰는 동안 제 아무리 복잡한 심정이라도 언어의 논리로 써내리면 이 논리적 과정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고, 숨어 있는 어두운 감정들을 언어화해서 쓰는 동안 우리는 그 감정 위에 올라서게 된다고 표현했다.

들으며 생각하니 왜 글쓰기가 나에게 치유제가 되었는지 끄덕끄덕하게 된다. 그는 강의 마무리를 이렇게 했다.

그게 무엇이든 일단 첫 문장을 적어라. 어쩌면 그게 모든 것을 바꿔놓을지도 모른다.

마치 어떤 마법의 주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비디 바비디 부~ 를 외치면 호박이 마차가 된 것처럼, 무엇이든 첫 문장을 적어 내리면 그다음엔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묘한 기대감.. 아마도 그것이 우리 모두가 쓰고, 쓰고, 또 쓰는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써 내리며 나의 인생을 담고, 그 안에서 치유되는 마법.

아는 사람만 안다는 글 안에서만 오롯이 느껴지는 충만함! 오늘도 그 감정을 향해 키보드를 두드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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