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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r 01. 2021

아빠와 쓰레기


아부지!!! 제 곰인형 어디 갔어요~!!??


친정에 갔다 문득 내 곰인형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사실 크기가 상당히 커서 그 아이의 존재감은 상당했는데, 방문을 여는 순간 바로 느껴지는 허전함은 모르고 지나갈 수가 없을 정도였다. 순간 싸해진 불길함으로 동공이 흔들리려는 찰나 들려오는 울 아버지의 간결 명료한 응답은...


"어 그거 버렸지"


헉......... 나는 뒷목을 잡는 게 이런 거구나를 그날 처음 경험했다. 그만큼 충격적이고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렇게 멀쩡하고 그렇게 예쁜 아이를 버렸다고? 내가 아이를 낳으면 우리 애한테 주려고 그저 친정에 잠시 '보관'을 해둔 건데, 주인 허락도 없이 그걸 버렸다고?

나는 정말 장난감을 잃어버린 아이처럼 울 뻔했다. 진심으로 울고 싶었다. 아니 그걸 어떻게 버리냐고.....






우리 아버지는 언제부터 그렇게 정리벽이 생기셨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워낙 평소에 깔끔하셨던 엄마랑 사신 세월이 있으니 그 영향을 받아 늘 주변을 깨끗이 정리하시는 게 습관이 된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는 더더욱 주변을 늘 정리하며 사신다. 언젠가는 당신도 그렇게 가실 거라며 미리미리 정리를 해두시는 거란다. 자식 된 입장에서 그 심정을 다 알 길이 없으니 그저 그러신가 보다 할 따름이지만, 그렇게 하나둘씩 다 버리시다가 뭐가 남으려나 싶기도 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친정에는 내가 어릴 적 모아두었던, 사실상 지금 보면 크게 의미 없어 보이는 잡동사니들도 많다. 돌아보면 추억이지만 그 잡동사니들에 애정이 없이 바라보면 그저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다. 친정이 가까워 자주 드나드는 편이지만, 사실 그 물건들이 거기에 있다 뿐이지 자주 찾아서 들여다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살면서 보니 1년 동안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앞으로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말이 마치 격언처럼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 '어릴 적 시간'이라는 틀에 가둬 둔 그 물건들은 그렇게 가장 큰 의미를 덮어쓰고 어딘가 구석에 박혀 세월을 입어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학 시절 호주에서 친정 오빠와 둘이 살았었다. 오빠는 약간 츤데레 스타일이라고 해야 할까. 항상 나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동생을 생각하는 마음은 (아마도) 상당히 컸던 모양이다. 어느 날 본인 용돈을 털어 정말 너무나도 예쁜 대형 곰인형을 사준 것이다. 너무 정교하게 봉재가 되어 예쁘기도 예쁘지만, 그만큼 가격도 상당히 비쌌었다. 그렇게 눈에 하트 띄우고 구경만 하던 그 예쁜 인형을 오빠가 사주다니, 그야말로 곰인형을 안고 집으로 오던 기분은 날아갈 듯했던 기억이 있다.


모든 물건이 그러하듯, 일단 손에 쥐면 그 기쁨도 점차 퇴색되기 마련이기에 날아갈 듯했던 기분도 사그라져 갔고, 그 곰인형은 그냥 내 침대 위에 늘 앉아있는 또 하나의 식품이 되었다. 사실 어린 나이에 그걸 받은 게 아니다 보니 인형을 안고 자거나, 내 마음을 인형에게 털어놓거나 하는 귀여운(?)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늘 내 방에 앉아 있는 마음의 친구 같은 존재였다고 나 할까. 여하간 그랬던 그 곰돌이가 친정 내 방에 홀로 앉아 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너무도 깨끗하고 예쁜 상태였어서, 차라리 누가 쓰레기통에서 건져가기라도 했다면 그 어떤 다른 아이에게 기쁨을 주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만약 무자비한 쓰레기봉투 안에 갇혀 버려졌다면, 그다음은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이고 처참한 기분이 들어 아버지께 어떻게 버리셨는지 여쭙지도 않았다. 울 아지는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중년의 딸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안겨 주셨다.

가운데 가장 큰 곰인형이 이야기의 주인공


"우리 아버지도 내 만화책 싹 다 가져다 버리셨잖아.."


남편이 속상해하는 나에게 건넨 말이다. 생전에 시아버님도 집안 정리를 그리도 열심히 하셨다는데, 어느 날 보니 말씀도 안 하시고 남편이 아껴보던 만화책을 모두 버리셨단다.


"후우.. 아빠들은 왜 그래 진짜.. 사실 내 물건 아닌 건 그게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모르니 버리자고 들면 막 버릴 수도 있긴 하겠지... 아후... 내 곰돌이 어떡해...."


내 딸아이에게 안겨주고 싶었는데, 그걸 못하게 됐으니 그게 그렇게도 속이 상했다.






집이 떠나가라 울어 재끼는 우리 딸, 그 울음을 자초한 건 바로 나였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다 알 것 같은데, 킨더 조이라는 초콜릿을 사면 꼭 알처럼 생긴 포장지 안에 반쪽은 초콜릿이 들었고 다른 반쪽엔 작은 캐릭터 장난감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매번 똑같은 게 아니라 때면 때마다 시리즈가 바뀌는데, 마침 디즈니 공주 시리즈가 판매 중에 있던 때였다.


웬만하면 그리도 단 군것질거리를 사주지 말라 했건만, 회사 어린이집에 매일 데리고 출근하는 남편은 아이가 순순히 들어가 줘야 본인도 가뿐하게 출근을 완료할 수 있었기에, 간혹씩 등원 거부 사태가 일어나면 회사 내 편의점에 데리고 가 사탕이니 초콜릿 등을 사 먹인 것이다. 그런 거 제발 사주지 말라고 말해봤자, 아침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기까지의 고충은 안 봐도 그림이기에, 당근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저 받아들여야 했다.


그런 이유로 어느 날 아이가 받아먹은 킨더 조이 안에서 알라딘과 재스민 공주 캐릭터가 나왔던 것이다. 아이가 그 조그만 인형을 그렇게 잘도 가지고 놀았나 본데, 무심하기 짝이 없던 이 엄마 사람은 아이 방을 청소하다가 뭐 이런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생각과 함께 재스민 공주를 쓰레기봉투 안에 거침없이 넣었다. 나의 무심함으로 알라딘과 재스민이 헤어지게 된 것이다.(둘 다 넣었어야지) 며칠 뒤 덜렁 혼자 남겨진 알라딘을 발견한 딸아이가 재스민을 찾아대며 울기 시작했는데, 내가 한 짓을 너무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던 나 엄마 사람은 그저 할 말이 없을 따름이었다.


달래고 달래다 결국은 재스민 공주가 다시 나올 때까지 킨더 조이 호갱님이 되었던 사실은 우리 집에 길이길이 회자될 흑역사로 남아 있다.(내가 팔아드린 갯수가... 또르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어쩌지 못할 상황이 그렇게 생기고는 했다. 내 물건을 함부로 버린 아버지 때문에 속상해하던 장본인이 정작 자기 자식에게 똑같은 속상함을 던져주고 말았다. 그나마 내 아이는 다른 새것으로 다시 얻기라도 했지, 내 곰돌이는 어디서도 똑같은걸 구할 수 조차 없어 그저 슬프기만 하다.






딸아이는 어린이집에서 뭔가 아주 다양한 것들을 만들어 가져온다. 꼼지락꼼지락 손으로 뭘 만들기를 아주 좋아하는 것 같다. 물론 아이가 만들어온 작품들을 보면 기특하고 신기하지만,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사실상 집에 더는 보관할 장소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어느 날 남편이 집안 정리를 하다가 딸아이의 '작품'을 주저 없이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아이가, 쓰레기봉투 입구가 묶이고 밖으로 배출되기 직전 현관 앞에 서 있을 때 비닐 사이로 비쳐 보이는 자신의 작품을 발견하고는 그걸 왜 버리냐며 당장 꺼내놓으라고 울기 시작다.


"내가 정성스레 만든 건데 왜 버려어~~"


아이의 말에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좀 더 들키지 않게 잘 버려두지 하는 생각에 남편을 한번 흘겨.(왜 버렸냐며 흘겨본 거 아님 주의) 애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싶어 달래주긴 했지만, 정말 대책 없이 늘어나는 그 '작품'들을 바라보 한숨이 나온다.


쓰레기봉투에 담긴 자신의 작품을 발견했던 게 아이에게 염려증을 더 키워줬는지, 이제는 새로운 걸 가져올 때마다 '이건 버리지 마'라는 멘트를 꼭 붙이곤 한다. 나도 아버지가 내 물건 버리는 거 너무 속상했는데, 나 역시도 내 아이의 마음을 어루만지지 못하는구나 싶어 잠시 생각에 잠긴다. 우리 아버지도 '추억'으로 포장된 내 물건들을 바라보면 한숨이 나오셨던 겐가...






자꾸 물건을 가져다 버리시는  울 아버지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다만 버리는 것이 내 물건이 될 경우는 얘기가 달라질 뿐이지.. 얼마 전 우리 딸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다.


"아빠들은 왜 아무거나 다 버려?"


'그래.. 그 아빠들에 네 아빠도 포함되고, 엄마의 아빠도 포함되고, 네 아빠의 아빠도 포함이 되는구나 '


공교롭게도 물건을 버리는 사람은 '아빠들'로 정의가 되어버렸다.


우리 아버지는 그 곰인형 말고도 내 물건을 가져다 버리셔서 뒷목을 잡게 하는 사건이 몇 번 더 있었다. 이제는 나도 좀 초연해진 상태라고나 할까. 버려졌음을 알았을 땐 속상한 마음이 가득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그렇게 잊히고, 그 물건이 굳이 없어도 내가 사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봉변을 당한 내 곰인형에 대한 기억이 사실 그 인형이 방에 늘 있던 때보다 더욱 또렷해지고 오히려 곰인형의 보드라운 느낌이 선명해지는 것 같은 건 그저 나의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버려짐으로 인해 소중함을 더욱 깨달았고 나는 그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해 오히려 더 노력하게 되었다. 집안 한 구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내 맘 한구석에서는 절대 잊히지 않기만을 바라기 때문이다.






얼마 전 어떤 유명 유튜버가 한 말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필요하지 않았던 물건은, 앞으로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갑자기 뼈를 때리는 말 같았다. 그래.. 무턱대고 일단 집안에 들여 버리느라 애쓰고 버려서 마음에 상처 받고 버리는 바람에 지구가 아프게 하지 말고, 물건에 대한 미련 아닌 미련을 좀 버려보자 새삼 결심하게 된다.


최근 '신박한 정리'라는 프로를 너무 재미나게 봤었다. 커다란 박스에 버릴 물건, 나눔 할 물건 등을 나눠 담는데 정말 집안의 반절 정도가 다 사라져 나가는 것 같다. 그렇게 치워내면 비로소 깔끔하고 정돈된 집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집도 주기적으로 물건을 다 정리해 치우며 살긴 한다. 나와는 다르게 남편은 또 그런 거에는 도사이다. 그렇게 들어낼 때마다 웬만하면 필요하지 않은 건 더는 들이지 말자며 다짐을 하건만, 참 희한하게도 사람이 살다 보면 물건이 쌓이고 또 쌓인다. 물질이 풍요로운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숙명인 건가.


나의 애착을 한껏 담았던 곰인형이 속절없이 버려짐을 당해보고 나니, 사실상 물건에 대한 어떤 집착 같은 게 좀 사라지는 느낌이 들긴 했다. 그렇다고 무소유의 경지까지는 갈 수도 없지만, 어쨌든 뭐든 잘 버리시는 아버지 덕분에 반 강제로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그래도 아버지께 바라는 것이 한 가지 있다면 이것뿐이다.

'다음부터는 버리기 전에 꼭 한 번만 물어봐주세요.. 그리 어려운 일 아니잖아요...'

나도 얘처럼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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