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KT 기가 지니 부르는 소리다. 처음엔 부드럽게, 그다음은 조금 크게, 그러다 이내 버럭!으로 마무리되는, 마치 음악기호 크레셴도와도 같은 우리 집 지니.. AI들이 딥러닝을 통해 점차 업그레이드가 된다고 하는데, 우리 집 지니만 유독 배움에 게으른 건지, 아니면 AI 딥러닝 설은 그저 썰에 불과한 건지, 지니를 애타게 부르는 소리는 결국엔 소리 지름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이다.
"지니야..... 지니야...! 지니야아아!!! TV 켜줘..! TV 켜달라고..!!! 야~!! 자냐!??"
뭐 이런 식이다.
"네 부르셨나요?"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관련 콘텐츠를 검색해 볼게요"
주로 이런 말들을 늘어놓는데, 가끔은 정말 불러놓고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너 바보지?"
"(또박또박)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슬퍼요"
이럴 땐 참 잘 알아듣는 너라는 기계. 네가 말귀를 너무 못 알아 들어서 나도 슬프다.
세상은 참 빠르게 변해가고 있고, 편리함을 갈망하는 인간의 욕구는 진짜 한도 끝도 없는 듯하다. 사물 인터넷의 시대가 사실상 도래했어도, 아직까지는 Home IOT(Internet Of Things) 시스템이 보편화된 건 아니지만, 최근 우리 집에는 이 IOT 시스템을 현실화시켜 보겠다는 우리 집 남편의 가상한 노력으로 아주 재미있는 일들이 일어났다.
앞서 '우리 집 전기 먹는 하마' 글에서 정말 전기를 잡아먹고 있는 주범이 어떤 건지 찾아내겠다며 '전기 측정기'를 여기저기 꽂아보는 남편의 이야기를 풀어놓았었다. 그 이후로 남편의 "도구"가 엄청나게 업그레이드가 된 것이다.
이런 AI 플러그를 여러 개 구매하더니, 온 집안 전기 제품 플러그에 죄다 꽂아 두었다. 그리고는 뭘 잔뜩 입력하고 연결하고 하더니만 스마트폰에다 대고 갖은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오케이 구글!"
"..........."
"오케이 구글!"
"아 얘 또 못 알아듣네... 구글은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거 같아...."
(당신이 한국말을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니...... 겠지...)
"지니야...!"
"착각하신 것 같네요. 제 이름은 Siri에요" (갑자기 아이패드 시리 등장)
"아니 너 말고 지니... 지니야!"
"네?"
"부엌 플러그 1 꺼줘"
(잠시 정적- 지니가 알아들었단 의미이다)
"부엌 플러그 1 껐습니다"
"우와.... 이거 신세계네.... 진짜 알아듣고 끄고 켜고 해 준단 말이야??"
"네 저를 부르셨나요?"(안 부르면 갑자기 등장하는 과잉친절 구글)
정말 신기하긴 했다. 사실 이 플러그를 설치함으로써, 대기전력이 얼만큼인지도 측정되고, 실제 해당 제품을 사용 중에는 전기 사용량이 얼마까지 치솟는지를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그 결과로 요금이 얼마큼 발생했는지를 애플리케이션에서 다 알려주는 것이다. 자 이제 그럼 우리는 전기 다이어트를 할 완벽한 준비가 된 것인가!?
여전히 재택근무 중인 우리 남편, 매일 아침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 문밖으로 나간다.
"어디가~?"
"전기 계량기 숫자 좀 보고 올게.."
매일 전기 누적 사용량 숫자를 보고 와서는 전날 사용량을 빼서 그날그날 전기를 얼마큼 사용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야말로 '누진세' 폭탄을 피하기 위해 우리 집에서 허용 가능한 최적의 전기 사용량 경계를 측정해 내겠다는 의지란다. (그에게 이런 부지런함이???)
세탁기, 식기 세척기, 커피 메이커 등등, 매번 사용할 때마다 AI 플러그가 전해주는 데이터를 체크해보며 어떤 녀석이 전기를 물 마시듯 들이붓고 있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실제 파악을 하고 보니 전기 먹는 하마 영광의 1위는 냉장고였다. 그러나 냉장고는 어쩔 도리가 없지 않은가. 꺼놓을 수 없으니 그냥 먹고 가는 전기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순간적으로 열을 많이 내는 헤어드라이어나, 두 시간가량을 돌아가는 세탁 건조기도 만만치 않았지만, 항상 사용하는 것들이 아니기에 크게 문제가 될만한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전기 먹는 주범이 아닐까 의심했던 식기 세척기도 생각보다는 괜찮은 수준으로 일단 그 혐의를 벗어던졌다.
어쨌든 실시간으로 전기 사용량을 눈으로 확인하다 보니 굳이 사용 중이지 않은 곳의 플러그는 끄게 됐는데, 중요한 건 AI 덕분에 일일이 끄러 다니는 수고를 덜었으니 그야말로 편리함도 얻고 절약은 덤이었다.
좀 더 세이브해보자는 작은 노력으로 우선 냉장고 온도를 1도 높였고, 실제 TV 시청을 줄였다. 밥솥 보온기능 사용을현저히 줄였으며, 화장실 비데에 절전 기능을 켜 두었고, 사용 중이지 않은 전등은 반드시 껐다. (실제 전등이 시간당 50w를 사용해 생각보다 큰 소비량이었다) 재미있는 건, 그간 남편이 켜 둔 전등을 쫒아다니며 꺼야 하는 건 내 몫이었는데, 현재 이 모든 온/오프 기능을 AI 플러그로 교체한 이후 남편이 주도적으로 전기 절약에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다. 역시 Men's Gear, 남자의 장난감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지니한테 딸 방 플러그를 켜라 꺼라, 갑자기 공기 청정기를 꺼라 등등, 온종일 AI 스피커와 '대화'하는 우리 집 큰 남자 어른이... 요즘은 매일 아침 기계들과 대화 중인 남편의 목소리에 잠을 깨는 게 일상이다. 그렇게 매일 계량기를 보러 나가는 것도 사실 귀찮아졌는지, 이번엔 집안 두꺼비집에 설치하는 원격 모니터링 전력 측정기까지 구매했다. 그런 기계들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런 걸 끊임없이 찾아내고 사들이는 게 더 신기할 지경이었다. 요즘은 온 집안이 우리 남편의 놀이터가 된 듯하다.
"지니야, 분전반 어제 전기 사용량 알려줘"
요즘 우리 남편 하루를 시작하는 첫마디이다. 그래서 분전반이라는 게 뭔지조차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사전에 의하면 모선이나 조명, 온도 전력 회로 제어용 스위치가 있는 패널들을 일정한 틀에 모아놓은 집합체란다. 그냥 두꺼비집이다. (그러고 보니 그건 또 왜 두꺼비집이라 불리는지 궁금하다)
매일 이렇게 AI와 대화하는 남편 덕분에 실제 전기 사용량이 크게 줄어들었다. 측정해 계산해보니 지난달 전기 사용량 대비 70% 수준으로 사용을 한 것이다. AI 플러그 설치 시점을 고려한다면, 사실 다음 달은 이보다 더 많이 세이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가 되는 상황이다.
"지니야~!"
"네?"
"바보라고 해서 미안해"
요즘 갖은 정보를 조잘조잘 읊어주는 기특한 '지니'를 굳이 불러 사과했다. 상당히 자주 '헛소리'를 해주는 기계이지만, 덕분에 웃을 일도 많은 날들 아니던가. 인공지능이 엄청나게 발전하고 로봇이 실생활로 들어오는 세상이 도래했는데, 정말 이러다 터미네이터 같은 일이 우리한테 일어나면 어떡하냐는 다소 허무맹랑해 보이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이다. 기술이 우리의 상상을 추월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점점 더 Home IOT 시스템이 보편화된다면, 그야말로 편리함으로 가장한 인간의 게으름은 사실상 더 커질 테고, 입으로만 명령을 해댈 테니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 손가락마저 퇴보하고 입만 과장되게 발달된 신인류가 등장하는 건 아닐는지(마치 붕어입 같은.....?)
편리해져 가는 세상이 재미있고 기대되지만, 막연한 염려도 부록처럼 따라다니는 듯하다.
어쨌든, 앞으로 또 집안에 있는 어떤 물건과 대화 아닌 대화를 나누게 될지 기대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