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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an 04. 2021

우리 집 전기 먹는 하마

그 이름은 남편?

'응~? 이번 달 전기요금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왔지?'

에어컨 사용이 중단된지도 몇 개월이 지났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어 곰곰이 원인을 되짚어 본다. 의심 간다고 할만한 것이 있다면 남편과 아이가 풀타임으로 집에서 지낸 게 한 달이 넘었으니 그게 원인인 것 같다. 코로나 때문에 식비가 증가한 것은 물론, 집에서 지내는 사람이 많아지니 그만큼 전기 사용량도 엄청나게 증가한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최소한의 전기를 사용하는 것에 익숙하다. (익숙하다는 것이지 실제 그렇게 열심히 아껴본 적은 없는 듯하다) 전기 절약이 온 국가적 차원의 구호이기도 했지만 우리 아버지는 전기공학을 전공하신 분이어서인지 늘 사용 중이지 않은 전등은 부지런히 끄고 다니셨다.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지 않는 가전은 전기 플러그 전원마저 다 끄는 게 습관이시다.


반면, 우리 남편은 온 집안에 불을 죄다 키고 다니는 게 습관 아닌 습관이다. 젊은 시절에도 밤새 TV뿐만 아니라 불까지 다 켜놓고 잠들기가 일쑤여서 시부모님께 꽤나 야단을 들었다고 한다. 근데 우리 친정 오빠도 죄다 켜놓고 소파에서 잠드는 게 일상 다반사였으니, 이건 개인의 습관 문제인 건지 아니면 총체적인 수컷이라 불리는 그들의 행태인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남편은 벌건 대낮에도 불을 다 켜놓는다. 집이 정남향이 아니긴 하지만 그렇다고 어두워서 뭘 못할 정도는 아닌데 꼭 그렇게 불을 켜댄다. 다 보이는데 왜 켜냐 하면 컴퓨터 들여다보는데 눈이 아프다거나 아이가 TV를 보는데 어두워서 눈이 나빠진다는 이유를 대곤 한다. 눈이 나빠진다니 딱히 반박을 하기가 좀 그렇다.

이유가 그러하다면 볼일이 끝난 후엔 불을 꺼야 마땅하지 않던가. 켜는 손은 있어도 절대 끄는 손은 없다. 집에서 마주치는 시간이 저녁때밖에 없을 땐 몰랐는데, 하루 종일을 같이 붙어 있다 보니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남편의 행적을 쫓아다니며 불을 끄고 있는 게 아닌가. 잠시라도 방심(?)을 하면 그야말로 집안에 있는 모든 조명이 켜져 있는 걸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보야, 저 방에 불 왜 안 껐어~?"


"응~ 나 잠깐 나온 거야~"


리 남편 단골 멘트이다. 근데 잠깐 나왔다가 영영 안 돌아가는 경우를 더 많이 본 것 같은 건 기분 탓인가. 요즘은 스마트폰에서 만사가 해결되다 보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나와서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보기도 하고 그야말로 자유로운 재택근무인은 이 방 저 방 쉴 새 없이 전등을 켜고 다니는 것이다. 방금 사용하고 나온 화장실은 또 뭐란 말인가. 볼일보다 말고 잠시 나온 건 아닐 텐데....




단순히 남편이 불을 많이 켜서 이렇게 사용량이 늘어났을까. 사실 1차 코로나 대유행 때 처음으로 세 식구가 매일같이 24시간을 집에서 뭉개는 상황을 맞이하고 보니, 앞서 글에도 썼었지만 삼시 세끼 밥을 차리고 치우는 일이 정말 보통이 아니었다. (참조: 오늘 저녁에 뭐해 드세요?) 그 핑계로 작년 초 큰 맘먹고 지름신을 모셨는데, 바로 식세기(식기세척기) 이모님을 들인 것이다. 내가 20대 호주에 살던 시절에 그 나라는 이미 식기 세척기 사용이 보편화되어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맞벌이 증가와 개인 여가에 대한 중요성 인식 화가 더욱 커진 최근에야 큰 인기를 끌게 된 것 같다.

우리 집 식세기 이모님


거치형으로 설치할만한 공간이 나오지 않아 그냥 간편히 올려놓고 사용 가능한 제품을 선택했다. 아쉽게도 6인용이다 보니 우리 세 식구 한 끼 식사 정도의 식기만 해결해줄 수 있는데, 그렇게라도 내 할 일을 덜어내는 게 그저 너무 감사했다. 식기 세척기의 큰 장점이라 한다면 내 시간을 세이브해주는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일단 손으로 설거지를 하는데 드는 물의 총량보다 훨씬 적게 물이 든다. 이렇게 또 수도요금을 아낀다며 당당히 사야 할 이유를 들이밀었지만, 실제 사용해보니 그야말로 수도요금은 둘째치고  전기를 퍼먹고 있는 게 바로 식기 세척기였던 것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아마도 건조 단계에서 들어가는 열 전력이 큰 원인인 듯하다. 처음엔 생각 없이 하루 2번 정도씩 사용을 했는데 그 달에 나온 전기요금을 보고 동공에 지진이 어났더랬다.


사실 그래서 요즘은 식기 세척를 옆에 두고 그릇이 몇 개 안된다 싶을 땐 손수 설거지를 마치곤 한다. 재미있는 건, 식기 세척기가 없을 땐 그게 없어서 너무 힘이 들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젠 옆에서 나의 설거지하는 모습을 지켜 봐주니, 이 정도쯤이야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바로 있는 자의 여유라고나 할까(먼 산 바라보며) 이것은 식기 세척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스스로 결정한 선택적 노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간헐적인 사용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심리적 평안을 얻고 있으니 누구든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식기 세척기를 꼭 들이라고 추천한다.




문득 우리 집 가전제품이 도대체 몇 가지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냉장고, 전기밥솥, 인덕션, TV, 셋톱박스, 공기 청정기, 컴퓨터, 세탁기, 건조기, 식기 세척기, 에어프라이어, 전자레인지, 가습기, 공유기 등등등... 뭔가 나에게 편리함을 더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는 것뿐이니, 새삼 자원 하나 안나는 나라에 살면서 죄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은 기분일 뿐, 여전히 눈독 들이게 되는 새로운 가전들은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으니 편리함을 향한 인간의 갈망은 그야말로 끝이 없구나 싶다. 또 이렇게 다양한 것들이 전기로 돌아가다 보니, 얼마 전 잠시 지역 전기가 모두 나갔던 적이 있었는데, 심지어 통신 케이블까지 모두 중단되어 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도 없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며 전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다.


남편은 주말 동안 전기 먹는 하마를 적발해내겠다며 전기 요금 측정기를 들고 다니면서 계속 메모를 했다. 아마도 본인이 바로 그 하마라는 혐의를 벗고 싶은 모양이다. 이리저리 따져보니 사실 가장 전기를 많이 먹을 거라고 생각했던 식세기 이모님도 생각보다 괜찮았고(나의 선택적 노동 덕분에), 의외의 복병이라 한다면 그간 무심코 '살균 가습'을 작동시키고 있던 가습기가 범인으로 급부상했다. 살균 기능을 켜고 안 켜고에 따라 전력 소모량이 무려 6~7배나 차이가 나는 것을 여태 모르고 사용한 것이다. 건조한 겨울 상시 켜놓고 지냈건만 갑작스러운 배신감이 밀려올 따름...


밥솥은 또 어떠한가. 요즘 전기밥솥이 너무 좋아지기도 했지만 매일 새로 밥을 해서 먹을 만큼 부지런하지 못함을 고백하며, 거의 일주일간 보온기능이 켜 있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이 이 시대 삶의 당연한 모습이라고 살며시 주장해본다. 보온 기능이 그렇게도 전기를 잡아먹는다던데, 사실 전반적으로 밥 소비량이 크게 줄어 밥을 안 하기도 또 매일 하기도 참 애매하니 보온밥솥이 전기 잡아먹는 것에 대해서는 알면서도 눈을 감고 지내는 편이다. 그래도 요즘 새로 나오는 밥솥은 절전 기능을 갖추고 있어 그나마 심정적으로 안심이 되는 것 같다.




지난 12월 31일 마지막 날에 우리 세 식구는 모여 앉아 다과를 나누며 한해를 돌이켜 보고 새해의 결심을 같이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2020년은 돌이켜보니 황당하게도 돌이킬게 너무 없었다. 그냥 여태 살아본 중 가장 '나쁜' 한해였던 듯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은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우리는 이 모든 상황이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는 '희망'과 함께 서로에게 바라는 점을 한 가지씩 나눴는데,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야... 방에서 나올 때 불 좀 꺼줘요..."


남편은 실소를 터트리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내가 그에게 바라는 게 이렇게까지 소박할 수가? 어쨌거나 여전히 난 하루 종일 컴퓨터를 2~3개 켜놓고 돌리는 남편이 주원인이라 생각하지만, 가습기가 잘못했다 치고, 우리 새해에는 몸도 전기도 다이어트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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