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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Jun 11. 2021

그게 왜 내 눈에만 안보이더라

얼마 전 매주 주말마다 집을 들었다 놨다 하며 나름의 인테리어(???) 꾸미기에 삼매경남편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주말마다 이사하는 집) 역시 그도 하다 하다 지쳤는지 2주 전쯤 마치 폐업 세일이라도 하듯 진짜 마지막! 정리라고 선언하더니 그 이후로 정말 아무것도 건들지 않고 있는 중이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는데 집이 '아주 조금' 새로워진다는 장점에 보태어 아주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내 물건이 도대체 어디로 자취를 감췄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전 글에도 말했었지만, 나는 상시 깔끔한 사람은 아니라 대충 어질러진 상태로 지내다 한꺼번에 뒤집어엎는 스타일로, 얼추 늘어져 있는 물건들 속에서도 내가 꼭 필요한 물건과 자주 사용하는 물건들의 위치를 잘 파악하고 있는 편이다. (물론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아 방금 전의 것도 어디에 뒀는지 잊어버리는 낭패가 잦아졌지만..)


아마도 이 부분에 동의하시는 분들이 꽤나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원래 깔끔하게 구석구석을 잘 정리하는 사람들은 정리를 했으니 물건이 제자리에 착착 있는게 당연한 것일 테지만, 그다지 깔끔함을 추구하지 않는 나 같은 종족들 혼돈 속에서도 나름대로의 질서와 규칙이 있다는 것 말이다. 그래서 남들이 보면 아무렇게나 늘어놓은 잡동사니들이겠으나, 내 눈에는 손톱깎이, 가위, 열쇠, 지갑 따위가 제각각(?) 어디에 박혀 있는지를 나름 잘 알고 있다.


남편은 깔끔하게 수납하기를 좋아하는데, 집안을 온통 들었다 놨다 치워대면서 내가 늘어놓은 '나의 물건'들까지도 모두 어딘가에 다~ 넣어 버린다. 원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 필요한 것이 없으면 나는 그때부터 혼돈의 도가니 속에 슬슬 밀려 올라오는 짜증눌러가며 최대한 침착하게 질문을 한다.


"혹시 내 지갑 어딨는지 봤어?"


그럼 보통은 기가 막히게 어디에 넣었다고 다 알려주곤 했다. 나보다 오빠인데 희한하게 물건 치우고는 기억을 잘한다 싶은 것이, 기억력이 선별적인 카테고리(정리 분야)에서만 각별히 좋을 수 있는 건 싶어 정말 신통방통 따름다.




그래도 남편이 그리 열심히 정리를 해놨는데 깔끔하게 잘 마무리를 지어야겠다 싶어 하루는 수납박스를 꺼내고 책장에 꽂혀있던 잡동사니들을 끄집어 내리는 순간 무언가 아주 싸늘한 느낌이 왔다. (그렇다. 나는 이 느낌을 너무 잘 안다. 뭐든 잘 버리시는 친정아버지 덕분에..)

재작년 국가 자격증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증빙서류에 포함시켜야 했던 이유로, 늘 액자에 꽂아두고 애지중지하던 대학원 졸업장을 꺼내 활용하고는 클리어 파일에 꽂아 책꽂이에 꽂아 놔뒀었는데 그게 안 보이는 것이다. 바로 액자로 돌려보냈어야 하는 건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은 것이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나는 앞뒤 상황을 재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범인은 바로 남편! 그냥 답정너였다.


동공이 흔들리고 손가락이 떨리는 상태로 남편에게 톡을 보냈다. 정말 웬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업무 중에 방해될까 봐 연락을 잘 안 하는데, 이건 내게 있어서 하늘이 무너지는(?) 대 사건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무식한 용감함과 무모함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신세계에 도전장을 들이밀고 유학을 떠나 피땀 눈물로 일구어 죽을 만큼 힘겹게 겨우 겨우 받아낸 진짜 내게는 너무 소중한 졸업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빠 내가 졸업장을 책꽂이에 꽂아놨었는데 그게 없어.. 혹시 버렸어?'


나의 이런 뜬금포 질문에 너무도 당연하게 그는 영문을 모를 따름이다. 왜냐면 그는 안버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보통은 다 그렇지 않던가. 나는 안 했으니 범인은 너야 라는 이분법적이고 비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대혼란의 상황! 설사 안 했더라도 그냥 무조건 잘못은 당신이 한 거라고 말이다.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도대체 왜 집은 들었다 놨다 해가지고 그러는거야 남편아!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울 것만 같았다. 차근차근히 책꽂이를 다 뒤져보고 하나씩 들춰보며 다시금 잘 살폈지만, 역시나 없었다. 이건 우리 친정아버지가 내 곰돌이 인형을 내다 버렸다고 하셨을 때보다 몇 배는 큰 충격이었으나, 이미 한번 크게 허무해봐서 그런지 생각보다 마음 상태가 감당할 만큼에 머물러 있었다.

차분히 앉아 생각을 다시 정리해봤다. 그래, 그 졸업장, 그냥 종이 쪼가리인데 그게 없다고 내가 그 인간승리를 이루어낸 팩트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던가. 그게 사람이 죽고 사는 일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당황하고 황망하고 속상해야 할 일이던가. 살면서 이보다 더한 일이 태반인데 졸업장 없어졌다고 무고한(?) 남편을 몰아붙일 일이던가. 마음은 진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속상한 마음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퇴근하고 온 남편을 보고는 자연스레 분위기가 쎄~ 했다. 당신이 잘못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당신밖에 잘못할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무척이나 억울해했다. 그러나 어쨌든 집을 온통 들쑤신 죄(?)로 버리지 않았다면 '찾아내는' 일을 반드시 해야만 했던 것이다.


보통은 이렇다. 남자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물건도 정말 잘 못 본다. 내 눈에는 다 보이는데, 남편에게 물건의 위치를 아무리 말해줘도 그걸 그렇게도 보질 못한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렇게 물건을 '찾아내야'하는 경우에는 나보다는 남편이 잘 찾는 사람에 속한다.

저녁내 뾰로통해 있는 내게 남편이 무언가를 들이미는데, 정말 감쪽같이 흔적을 감췄던 그 졸업장이 다른 자격증 폴더 사이에 같이 끼워져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왜! 도대체 왜? 내가 그렇게 샅샅이 뒤졌는데 안 나오더니 왜 남편이 찾으니까 나오냐고?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찾아낸 것에 안도하며 찾아준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거봐라 싶었다. 분명 내가 보관해둔 장소가 아닌 곳에 있었던 게 아닌가. 졸업장이 발이 달려 스스로 걸어 들어간 게 아니라면 말이다. 물론 나도 나의 기억력을 신뢰하지 못하니 어느 날 내 머리가 모르도록 나의 손이 한 짓일런지 알길이 없으므로 그쯤에서 그냥 땡큐 표시로 마무리 짓기로 했다.

여하간에 희한하게 내 눈에 안 보이는 게 상대의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럴 때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하던가...




한껏 의심을 뒤집어썼던 남편은 내심 속으로 많이 삐쳤던 게다. 다시는 집안 정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에 선언을 거듭하더니, 지난 주말에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빈둥대며 보냈다. 그러면서 한다는 말이 아무것도 안 하자니 너무나도 지루하고 좀이 쑤신단다. 그러게 사람이 하던 대로 하고 살아야지 갑자기 달라지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며, 은근히 집안 정리를 다시 해도 좋다며 살살 구슬려 봤다. 그러나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존심을 굽히고 싶지 않은 거다. 무턱대고 의심했으니 미안한 건 나이지만 어쨌든 당분간은 그가 존심을 지킬 수 있게 놔둬야겠다. 머잖아 다시금 정리의 신이 들썩들썩 그를 찾아올 것이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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