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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May 24. 2021

주말마다 이사하는 집

"어후~ 또야~?? 이제 그만 좀 하자아~~"


주말 아침 남편을 향한 나의 절규다. 나는 평소에 쉴 새 없이 주변을 깔끔히 정리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냥 좀 늘어놓기도 하고, 너저분하게 놔뒀다가 어느 순간 정리가 필요하다 싶을 때 한꺼번에 다 뒤집어엎거나 적당히 정리정돈을 한다. 결혼 후 처음엔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남편은 상당히 깔끔한 사람이었다. 꼼지락꼼지락 자기 책상 주변을 늘 정리하는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아마도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가 아니었나 짐작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주말 아침이면 남편이 부지런히 집안 청소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야 집안일을 도와달라고 징징대지 않아도 알아서 정리정돈을 척척 해두니 그저 감사한 마음일 뿐... 그 덕분에 한번 스치고 지나가면 온통 아수라장의 마법을 부리는 딸내미가 바삐 어지르고 다녀도, 좀 수월한 마음으로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모든 것의 시작은 또 그 노무 '코로나'였다. 남편이 재택근무를 정말 이렇게나 오래도록 할 줄은 몰랐던 지난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했던 수순으로 남편은 자신의 근무환경에 대 '개혁'을 불러왔다. 오랜 시간 앉아서 일을 하려는데 의자가 불편하다 보니 가뜩이나 목디스크로 고생하는 사람이 여기저기가 아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사용 중인 의자가 상당히 유명한(?) 의자라던데, 동종업계 사람들은 그 의자 때문에라도 남편이 소속된 회사로 이직하고 싶어 할 정도라고 한다. 정교한 인체공학적 디자인으로 오래 앉아 있어도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게 해 준다나 뭐라나.. 더구나 목디스크가 있는 남편은 유독 그 의자에서만은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어깨나 팔에 통증을 못 느낀다는 것이다.

이를 어쩌겠는가. 집에서 일은 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불편한 의자에 앉아 일하는 게 고통이니 그야말로 산재 아닌 산재가 돼버린 듯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이 상황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 그 좋다는 의자를 집안에 들이게 되었다. 다소 금액이 부담스럽긴 했으나 눈물을 머금은 고육지책이었다.


그래서 그의 업무 환경 대 개혁이 의자에서만 그쳤을까? 물론 아니다! 의자는 시작에 불과했다. 너무 오래 앉아 있는 것이 얼마나 건강에 해로운지는 현대인들이 잊을만하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얘기다. 앉아 있는 게 힘들어 좋은 의자를 들여놓고 보니, 왠지 앉아만 있으면 안 되겠는 건지? 갑자기 스탠딩 데스크에 꽂힌 것이다.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책상이 꼭 필요하다며 열심히 검색하더니 그나마 적정선에 괜찮은 물건을 발견하여 그 책상을 또 집안에 맞이했다. 전동식으로 스위치를 누르면 위아래로 움직이는데, 적절히 피로도를 봐가며 일어선채로 일을 하기도 하면서 꽤 만족하는 듯하다.

그런데, 일어서서 일을 해보니 딱딱한 맨바닥에 서 있기에 발바닥이 아프더란다. 그래서 또 책상 아래쪽을 포근하게 감싸줄 도톰한 러그까지 들여왔다. 세상에 한 사람이 재택근무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준비가 필요했던 것인가 진정!




본인 방을 완벽하게 일하기 좋은 환경으로 탈바꿈하고 나니, 이제는 집안 곳곳이 눈에 들어왔던 모양이다.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이 증폭되어 관련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라는 뉴스를 지난해 종종 접하긴 했었건만, 우리 집도 여지없이 그 대열에 합류해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거실 가구의 위치며, 심지어 늘어선 전선줄까지 모두 다 깔끔하게 정리하겠다매주 주말 아침이면 오만 가구를 들었다 놨다 이리 밀고 저리 밀고 난리도 아니다.


사실 우리 집은 세 식구만 살기에 딱 최적인 아담한 사이즈인데, 그러다 보니 아주 많은 물건을 다 늘어놓고 살 수는 없다. 보기에도 흉하고 밀도가 높아져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즉부터 주기적으로 안 쓰는 물건을 모두 정리해서 내다 버리는 게 행사 아닌 행사였는데, 이제는 매주 주말마다 아침에 눈을 떠 거실에 나오면 남편이 정신없이 어질러 놓은, 소위 이사를 나가는 집과 같은 아수라장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는 하루 종일 정리를 한다. 남편이 혹시 일 스트레스를 집안 꾸미며 푸는 건지, 어느 정도는 그런 영향도 없진 않으리라 생각되지만 매주말 정말 이사가나 싶을 정도로 집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것을 보면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뭐든 과유불급이라지 않던가. 주말이면 좀 편안히 늘어져 쉬고 싶은 마음이 들 텐데, 어쩜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매주 토요일 집안 정리 푸닥거리를 하다니.. 정말 어디 가서 상담이라도 받아야 하는 건 아닌지, 허리가 아프네 힘이 드네 하면서도 부득부득 일을 저지르는 걸 보면 난 조용히 뒷목을 잡게 된다. 잔뜩 어질러 놓고 낑낑대는데 그걸 또 아주 모른척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으니 자연스레 내 할 일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왜 자꾸 일을 만들어 주는 건지 남편!)

사실 집안을 예쁘게 꾸미고 싶은 건 어느 정도 주부들의 로망 이건만, 나는 남편이 온 집안을 들었다 놨다 하니 아예 관심 자체를 두지 않게 된다. 그렇게 푸닥거리를 한번 거치고 나면, 어쨌든 주말의 끝자락에는 어느 정도 깔끔해진 (새롭다 하나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은) 우리 집을 마주하게 되긴 하기 때문이다.




구석구석 쫓아다니며 깔끔하게 정리를 해대는 성격이 아니다 보니, 남편이 나를 봤을 땐 답답하다 생각했을지 모르겠으나, 그걸 뭐라 타박하지 않고 본인이 나서서 다 정리를 해주어 사실 많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부부가 붙어 지내다 보면 항상 예쁠 수만도 없고, 섭섭한 마음이 드는 날도 있기 마련인데, 남편은 많은 부분에서 먼저 지혜롭게 판단을 내려주는 편이다. 뭔가 말을 꺼내서 시끄러워질 거라면 그냥 입을 다물고, 행동을 지적하기 전에 본인이 먼저 나서곤 한다. 아무리 남자들이 많은 부분에서 '아들 같다'고들 표현하지만, 나는 남편이 상당히 자주 성숙하게 생각하고 지혜롭게 판단해주어서 그저 고마울 때가 많다.


가끔씩 꽃을 사서 들이밀거나, 5월 21일 부부의 날을 의미 있게 챙기는 것과 같은 깜짝 이벤트는 사실 없지만, 늘 무던하게 평소에 우리 가족의 삶이 평화롭게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성숙하게 행동해주는 게, 그런 잔잔한 이벤트성 감동보다 훨씬 묵직하고 감사하게 다가온다.(그래도 가끔씩 이벤트도 있음 더 많이 감사할 텐데..)

8년의 시간을 같이 보내고 나니 이제는 표정만 봐도, 대충 하는 행동만 봐도 기분 상태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는데, 앞으로 우린 얼마나 오랜 세월을 더 함께 할 수 있을지... 흔히 처음 사랑에 푹 빠져 영원히 함께 하자는 약속과는 차원이 다른, 정말 좋은 동반자로서 삶이 허락되는 날까지 오래도록 함께하게 되기만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주말에 집 들썩이는 거 좀 그만하면 안될까...

(나는 그냥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실에서 평온한 주말 아침을 좀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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