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마뮤 Feb 01. 2021

내 집 방구석의 잠 못 드는 밤

쿵! 소리와 함께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의 소리에 정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었다

지금 이 상황은 뭐지 재빠르게 파악해보던 나는 정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내가 잠이 들었던 것이다. 잠이 들면 안 되는 상황인데 잠이 들었던 것이다.

늦게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과 잠깐 침대 끝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정말 아주 잠깐 눈을 깜빡였을 뿐인데 한번 감았던 그 눈이 세상 무거웠던 그 눈꺼풀을 들어 올리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때 내 품에는 아이가 안겨져 있었다. 피곤에 절어 있던 남편도 나도 잠이 드는지조차 모르는 사이 잠에 빠져 버렸고, 내 손은 스르르 풀려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이틀 동안 두 시간밖에 잠을 자지 못한 100일도 채 안된 갓난쟁이 키우는 엄마의 새벽 3시 현실이었다.


"어머 어떡해 어떡해~ 얘 괜찮은 거야?"


애를 얼른 안아 들고 여기저기 살펴보는데, 아이는 그저 세상이 떠나가라 온 힘을 다해 울고만 있다. 남편과 나는 걱정 가득 사색이 되어 바로 병원 응급실로 갈 채비를 했다. 혹시라도 우리가 모르게 아이 머릿속이 손상이라도 됐다면 정말 큰일이었기 때문이다.

 






새벽 4시 응급실은 조용했다.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곳에 대학병원이 위치해 있어 정말 순간 이동하듯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조급한 우리의 마음과는 다르게 응급실은 차분히 돌아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새벽녘에 그곳을 찾아온 많은 아픈 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애간장이 타서 죽겠는데, 접수하고 대기하고 있으면 소아과 담당의가 올 것이라는 말만 전해 듣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 오래지 않아 한 선생님이 다가온다. 어떤 상황인지 다 설명하자 몇 가지 질문을 하신다.


"아이가 바로 울었나요?"

"네"

"높이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일반 침대에 제가 걸터앉은 상황이었어요.. 무릎보다 조금 높은 정도?"

"얼굴색이 파랗게 변하거나 그러진 않았죠?"

"네, 그런 변화는 못 느꼈어요"

"혹시 토하던가요?"

"아니요, 사실은 집을 나서기 전에 분유 한통 다 먹었어요"

(수유시간은 칼처럼 지키던 초보 엄마의 철저함이 지금 돌이켜보니 좀 어이가 없다. 그 와중에 분유라니.. 모유수유를 못한 구구한 사연은 다음 기회에..)


"흐음......"

"............."


"원래, 아이들이 머리에 충격을 입었을 때, 안 울면 그게 큰 문제가 생긴 거예요. 일단 아기가 울었고, 토하는 증상도 없었고, 게다가 우유까지 잘 먹고 소화가 된 것을 보면 사실은 문제가 없는 거예요. 다만, 그래도 부모님이 더 세부적인 검사를 '굳이' 원하신다면, CT촬영을 할 수는 있는데, 이렇게 영아인 경우는 그다지 장려하지 않는 일입니다."


"아 그런 거군요... 근데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발견되는 수도 있는가요?"


"전혀 그런 경우가 안 생긴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며칠간 상태를 지켜보면서 앞서 말씀드린 것 같은 증상이 혹시라도 나타난다면 바로 병원에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렇게 마음을 푹 놓기엔 뭔가 꺼림칙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며칠간 가슴 졸이며 지켜봤지만, 아이는 별다른 탈 없이 멀쩡함을 재차 확인시켜 주었고, 그렇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황당했던 사건은 마무리가 되었다.




 


딸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유독 잠에 관해서는 유별났다. 나는 신체의 일부가 어디 닿기만 해도 잠에 빠지는 잠만보인데, 아이가 세상에 등장한 그 날 이후로는 잠에 관해서는 아주 학을 뗐다. 그 조그맣던 내 새끼는 우주 최고 성능의 등 센서를 장착하고 나에게 와주었고, 그 덕분에 나는 팔에 감각이 사라지도록 아이를 안고 살아야 했다.


갓난아기 때부터 잠이 얕아서 평균 두 시간에 한 번씩(체감 1시간마다) 깨서 칭얼댔고, 먹이고 재우고 졸다가 깨서 다시 먹이고 재우고 밤새 끊이지 않는 이 루틴으로 인해 나는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흉한 몰골의 좀비가 되어갔다. 어느 날은 어두컴컴한 방에서 아이를 안고 서성이며 다시 잠을 재우기 위해 거의 몽유병 환자 워킹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좀 잠이 들었나 하고 내려다보다 아이와 눈이 딱 마주쳤다. 소오름... 세상에 여태 살면서 그렇게 화들짝 놀라 본 적이 또 있던가. 밤에 눈뜨고 있는 아이가 제일 무서웠다.


그 와중에 세상모르고 단잠에 빠져 있는 남편을 보면 주체 못 할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이 세상 아기 키우는 모든 부부들의 예외 없는 논쟁의 이슈인데, 왜 아이가 바스락대는 소리에도 엄마는 잠이 깨는데, 아이가 떠나가라 울어대도 아빠들은 푹~ 잘 수가 있는 건지 세기를 거듭해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일 뿐이다. 실상은 아빠들도 다 들리는데 그냥 자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만이 아니겠지?

아이와 눈이 마주쳤던 그 밤에 하마터면 자고 있는 남편을 발로 찰 뻔했다. (마음으로는 니킥에 하이킥에 오만 킥은 다 날렸다.. 그 순간 자유로운 게 발밖에 없어서....)






아이가 세상 빛을 보던 날, 아직도 그날 밤을 새하얗게 지새웠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모자동실 병원에 입원해 있었더래서, 내 몸을 추스르는 것뿐만 아니라 첫날부터 아기를 직접 돌봐야 하는 실전에 내동댕이 쳐졌다. 말하자면, 해병대 훈련소 같았다고나 해야 할까. 물론 그런 하드 트레이닝 덕분에 사실 남편도 초기부터 현실 육아 훈련을 잘 받은 점은 플러스 요인이 되었지만, 우리는 아주 좌충우돌 우왕좌왕 환상의 삽질팀으로 실전에서 구르고 또 굴렀다.


사실 첫날은 의아할 정도로 아기가 고요하게 잠을 잘 자주어서, 미리 각오를 단단히 했던 나는 이게 웬일인가 싶어 너무 기뻐했었다.

'세상에.. 우리 아기는 밤새 울지도 않고 잠도 잘 자고,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온 거야...'

그런 생각으로 들뜨기도 했지만, 그 조그만 아이를 마주 대한 그 날은 아주 묘한 감정에 휩싸여 그저 잠이 오지 않았다. 잠든 아기를 바라보며 캄캄한 입원실에 앉아 아기를 보고 또 보고, 그렇게 한숨도 잠을 못 잤다.(그때 잤어야 했는데...)


대반전이 일어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 자그맣던 딸아이는 세상에 적응하는 하루를 소요했고, 바로 다음날부터는 아~이게 전투 육아인 건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한 해 두 해 조그만 아이는 쑥쑥 잘도 커갔지만, 이 아이는 늘 잠이 힘들었다. 잠들기 전에 거의 한 시간씩 우는 것은 매일 밤의 행사였고, 좀 자라면서는 안 울고 잘 자는가 싶더니 이제는 자다가 깨서 울어재끼는 것이었다. 수면 전문가는 아니지만 주워들은 얘기들만 종합해보면, 정말 잠을 깊이 못 자서 꿈도 많이 꾸는 듯했다. 답답한 마음에 소아과 선생님께 하소연하니, 아이가 두뇌활동이 활발한 아이라 그렇단다. 정말 속 터지는 마음에 아이 기질검사까지 해봤더니, 오감이 모두 예민한 아이란다. 맞다. 바로 그 초예민 베이비였다.


여하 간에 아이는 자라 갔고, 험난한 수면 의식의 날들도 점차 조금씩 나아지기는 했다. 아이가 여섯 살을 앞두었던 어느 날 이제는 정말 나도 '숙면'이라는 것을 다시금 취해보고 싶다는 엄청난 갈망에 아이에게 2층 침대를 들여주며 물었다.

"이 침대 정말 좋지~? 우리 이제 씩씩하게 혼자 잠자는 연습 해볼까~?"

웬일인지 그러겠노라 하며, 정말 한 이틀간을 혼자 자는 것이었다. 세상에.. 나에게도 이런 기적의 날이 오는가.. 나는 속으로 '올레~'를 외치며 드디어 찾아온 자유의 날을 진심으로 만끽했다. 딱 이틀간.




'침대가 아무도 자주지 않아서 너무 외롭데.. 좀 더 같이 놀아줄 다른 친구한테 보내줘야 할까 봐...."

기겁을 한 아이는 절대 안 된다며, 조금씩 혼자 침대에서 자보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오늘 어디서 잘 꺼야?라고 물으면 단연코 2층 침대라 외친다. 책도 읽어주고 잔잔한 수면등도 켜주고 잠이 들 때까지 조용히 음악도 들려주고, 숨소리가 제법 깊이 잠이 들었구나 싶으면 편안한 마음으로 나도 내 잠자리에 들어간다. 원래 잠이 들기까지 그리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은 나는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잠에 푹 빠진다.


'이거 뭐냐....'

잠결에 뭔가 묵직한 것이 옆구리에 끼어 있다. 오늘 밤도 예외 없이 꼬마가 왔다. 2층 침대에서는 정말 '한잠'만 자고 오는 모양이다. 그렇게 잠시 머무는 소중한 2층 침대...






아이가 자는 시간에 내가 할 일을 하기 위해 정말 큰 예외가 생기지 않는 한 새벽에 기상을 한다. 아이는 여전히 잠이 얕은 편이라,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그 이른 시간마저도 옆에 엄마가 없음을 알아차리면 바로 깨어 나와서는 안아달라며 엉기고는 한다. 어쩜 엄마한테 GPS라도 부착 해 논 건지, 옆에 없는 건 어떻게 그리 귀신같이 알아차리는 걸까..

"(어금니 꽉) 왜 이르케 일찍 이르늤늬 드 즈여지"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니 더 자야지)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 아이의 응석을 한없이 다 받아줄 수 있을 만큼 넓은 아량의 엄마는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이렇게 엄마를 애타게 찾아주는 지금이 감사한 줄 알라는 선배맘들의 조언을 되새기며... 언젠가 너무 안 찾아줘서 섭섭해질 그날이 오면 지금을 사무치게 그리워하게 되겠지.. 꼭 다 지나가야 아쉬운 줄 알게 되는 우리네들이니까..

언제나 마음은 좋은 엄마이고 싶어도 실상은 너무 부족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는 나란 엄마를 그리도 최고로 생각해주니 너무 고맙다. 너와 함께 엄마도 자라는 중이란다. 

근데 혼자 좀 자게 해 주라....










매거진의 이전글 그거 시장조사 맞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