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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마뮤 Nov 03. 2021

딸아이의 최신 버전 친화력

어머 얘 좀 봐~ 나한테 윙크했어요~ 호호~


우리 집 꼬마가 대략 자신의 의지대로 걷고 행동할 수 있게 된 이후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그 시작이 점점 더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더니 7살이 된 지금은 초절정에 무르익어 어딜 가서든 아무한테나 눈을 찡긋하는 게 이 아이의 주특기가 되었다. 마트에 가서 캐셔분께도 찡긋, 약국에 가면 약사님께 찡긋, 병원에 가면 간호사님께 찡긋, 빵집에 가면 빵집 아주머니께 찡긋, 그러다 보니 어른들은 이 아이의 맹랑한 행동을 너무도 즐거워하며 웃음꽃을 피우게 되곤 한다. 그 덕에 덤으로 뭔가를 얻어오는 것 일상이 되었다. 어제도 약국에서 친절한 약사님이 '여자는 아무한테나 그렇게 윙크하는 거 아니야~'라고 웃으시면서 비타민 음료를 두 개나 그냥 주셨다. 아이 덕분에 뭐 하나라도 '공짜'로 얻는 기회가 비일비재 해졌으니 그야말로 딸 덕분에 수지맞는다고 해야 하나.




나는 어릴 때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지금 그 얘기를 하면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정말로 모든 사람이!) 콧방귀를 뀌지만, 여하튼 믿거나 말거나 어린 시절엔 비교적 조용한 편에 속했었다. 그런 내가 달라지기 시작한 건 전적으로 나를 '내버려 두신' 엄마 덕분이다. 우리 엄마가 나를 돌아보지 않고 대충 키우셨다는 게 아니라, 어릴 적엔 참으로 섭섭하게도 나에 관해서만큼은 모든 걸 스스로 하게끔 내버려 두셨다. 오빠를 위해서는 학교 육성회도 참여하시고 뭔가 죄다 적극적으로 나서 주셨는데, 유독 나에겐 일절 그런 게 없었다. 어찌나 속상했는지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나는 아마 주서 온 자식이 아닐까도 생각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타고난 성향이 그리 얌전해야 할 종자는 아니었던 건지, 엄마가 나서 주지 않자 나는 스스로 튀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생활하고, 학급 임원 선출에도 열심히 들이밀곤 했다. 생각해보면 정말 타고난 관종임이 분명하다. 그렇게 스스로 달라지고자 노력하니 수줍어 나서지도 못하던 아이가 어디서든 말도 잘 섞고 활발한 성격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지금에가끔 어릴 때를 떠올려보면, 아이 둘에게 똑같이 열정을 쏟을 만큼 엄마의 체력이 달렸을 수도 있었을 테고, 아니면 어느 집이나 그러하듯 첫째는 잘 몰라서 부모의 손이 먼저 나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둘째는 경험상 놔두는 게 답이다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엄마께 여쭤볼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 그저 내가 아이를 키우며 깨닫는 생각들을 대입해볼 따름. 방치라고 생각했던 나에 대한 엄마의 육아 방식은 오히려 내가 지독히도 독립적이고 스스로 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게끔 도와주었던 것이다.




우리 딸은 참말로 사회성이 좋다. 요즘 말로 하면 진심 갑이다. 지금은 그래도 조금 컸다며 살짝 수줍음을 타는 순간도 있긴 하지만, 좀 더 어릴 땐 동네 놀이터에 나가 풀어놓으면(?)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함께 나온 부모님들에게까지도 어찌나 친한 척을 하는지 양손 가득 온갖 간식을 수거해서 나타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이가 그리도 변죽이 좋다 보니 오히려 그 덕분에 동네 사람들과 말을 섞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더랬다. 나는 그럴 때마다 습관적으로 남편을 돌아보며 물었다.


"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리도 변죽이 좋아?"


남편은 나를 쳐다본다. 본인은 어릴 때도 조용한 아이였고 그다지 나대는 성격도 아니었으며 현재까지도 그렇게 인간관계에 목숨 걸지 않는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범인은 나밖에 없다는 눈빛으로 그저 바라볼 뿐.


"어우~ 나도 아주 어릴 땐 얌전했어~"


남편의 동공이 한층 더 커진다. 눈으로 '그럴 리가'를 말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아이의 그 놀라운 친화력은 내쪽에서 내려간 것이 좀 더 맞는 듯 보인다. 의외로(?) 낯가림이 조금은 있는 나와는 본질적으로 결이 아주 다른 최신 버전 친화력을 장착했다. 그렇게 친근하고 살갑게 굴기를 잘하다 보니 어딜 가서든 환영받는다. 아이가 그 성격 그대로 잘 자라나 어디서든 사회생활을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마트에 다녀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갑자기 아이가 한마디 한다.


"나는 사람들을 잘 사귀지...

나는 그런 내가 좋아..."


나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뒤늦은 나이에 더욱 깨달아가는 요즘, 아직도 어리게만 생각되는 아이가 그런 말을 어디서 듣고 하는 건지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다. 그래, 그렇게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며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살아가거라. 그러나, 아무한테나 윙크하는 건 좀 자제하면 안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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