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잔잔한 행복

by 마마뮤

주말 내내 비가 주룩주룩 많이도 내리고 있다. 마치 장마라도 들었나 싶게 봄비라 하기엔 지나치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한 남편 덕분에 모처럼 호젓한 일요일을 즐기고 있다. 하루에도 한 오만 번 정도 들려오는 엄마 부르는 소리로부터 해방되니 이 고요함이 그저 너무도 소중할 따름이다.


어릴 땐 정말 몰랐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도 때로는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오히려 그 거리를 존중하고 서로의 공간을 지켜줄 때 애틋함이 더더욱 차오르고 사랑이 솟아나는 법인데, 나를 정말 사랑한다면 매일 보고 싶어 안달이 나야 하는 거 아니냐며 투닥거리는 어린 연인들을 보면 다소 안타까운 마음만 들 따름이다. 어찌하겠나.. 세상의 아주 많은 것들이 나이를 들어가며 세월을 겪어봐야 깨닫게 되는 것들 천지인 것을.. 그 투정이, 그 투닥거림이 다 헛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날이 올 테지..




아침에 자리에 앉았다가 오랜만에 TV를 켰다. 때마침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방영 중이었는데, 안 그래도 왈가왈부 시끄러웠던 사유리 씨의 육아 모습이 나오는 참이기에 자연스레 리모컨을 내려놓고 보기 시작했다. 다소 엉뚱한 캐릭터에 독특한 아가씨라고만 생각했던 사유리 씨가 어느새 아기 엄마가 되어 돌아온 모습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그 논란의 원인제공을 한 그녀의 아기는 어쩜 그렇게도 사랑스럽고 천사 같은지 정말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무렇게나 질끈 동여맨 머리카락, 늘어진 츄리닝 바지, 푸석푸석한 얼굴.. 누가 봐도 한창 아기를 키우는 엄마의 모습이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할 너저분한 엄마의 모습... 내가 아이를 낳아 키워본 후로는 이런 엄마들의 모습을 접할 때마다 그렇게도 기특하고, 안쓰럽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힘들다 힘들다 하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엄마들의 고결한 수고를 너무 알아버렸기에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내 수도꼭지는 주책없이 풀어진다. 정말 엄마가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을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겠기에...


아이를 등에 업고 국물에 밥을 말아 후루룩 들이마셔버리는 사유리 씨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할 수만 있으면 가서 잠시라도 내가 아기를 봐줄 테니 편하게 식사 하시라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는데.. 잠시도 떨어지려 하지 않는 아이를 앞에 붙이던 등에 붙이던 어떻게든 짊어지고 부엌에 서서 밥을 입으로 넣는 건지 코로 넣는 건지도 모르게 그저 살자고 음식을 먹어야만 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렇게 밥을 털어 넣고는 바로 온갖 영양제를 꺼내 먹으며 아기에게 '엄마 오래 살아야 해'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유리 씨의 말에 다시금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렇게 엄마는 한 생명을 향해 무한대의 책임감을 갖는 것이다. 아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등장하는 순간부터 내 몸이 내 것이 아니고, 나의 건강도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게 된다. 엄마는 그저 그렇게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녀가 육아 예능에 출연하는 것을 막아달라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갔다는 사실이 그저 어이없고 씁쓸하다. 누가 그녀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정상'이라는 기준은 도대체 뭣이길래 다른 사람의 선택을 함부로 짓밟으려 드는 건가.. 아빠가 없는 가정의 모습을 '비정상'이라 규정한다면, 아빠라는 사람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않는 비상식적인 아빠들이 있는 가정은 '정상'이란 말인 건지..

시작이 어떠했건, 사유리 씨가 어떤 선택으로 아기를 얻었건 간에 한 생명은 그저 소중하다. 천사 같은 아들을 혼신을 다해 돌보는 엄마 사유리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그 선택이 결코 경솔하지 않았음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새 생명의 잉태에 진심이었고, 엄마로서의 삶 역시 그 누구 못지않게 진실해 보였다. 물론 '보이는 모습'이라며 비아냥대는 입들도 있을지 모르겠으나, 자식을 향한 엄마의 눈빛을 누가 거짓으로 꾸며낼 수 있을까.. 그녀의 모습은 순수하고 고결한 엄마 그 자체였다.




온전히 내게 주어지는 단 몇 시간의 휴식은 정말 달콤하다. 그러나 그 달콤함이 끝나는 순간은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아이의 모습에 광대는 승천하고 입꼬리는 하늘을 찌르기 때문이다.

늘 치대고 엉기는 아이가 버겁다 느껴질 때도 많지만, 그런 아이가 없는 시간은 묘하게 허전함을 느낀다. 그럴 땐 혼자 앉아서 아이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남녀 간의 사랑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 그 마음이 사그러 간다지만, 엄마가 아이를 바라볼 때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바로 남녀가 처음 사랑에 빠져 호르몬이 활화산과 같을 때 느껴지는 정도의 감정 상태라고 한다. 아이를 향해서는 그 불타는 사랑의 감정이 사그라드는 게 아니라 평생을 간다니, 이 얼마나 짜릿한 행복인가.. 어떤 대상을 향해 한 번도 지루하거나 싫증이 느껴지지 않고 언제나 눈에 하트가 떠있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가..


그렇다고 내가 남편에 대해 지루하거나 싫증을 느낀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강한 부정!) 사랑의 호르몬이 활화산과 같던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이제는 눈빛만 봐도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겠고, 다소 어이없는 유머에도 허허거리며 서로 웃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되었으니, 이 또한 감사할 따름이다. 아이로 인해 평생을 누리게 된 활화산과 같은 뜨거운 사랑의 감정과, 그저 인생 함께 살아가며 잔잔히 의지하고 정을 나누는 강물 같은 평안한 사랑을 얻었으니, 주룩주룩 창문에 내리치는 비를 바라보며 오늘도 나의 일상을 감사히 되새겨 본다. 엄마를 부르며 문 열고 들어올 아이를 꼭 안아줘야겠다. (그 뒤에 따라 들어오는 남편도..)






(이미지 출처: Pixabay, Dave Gerber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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