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은 갈수록 견고해진다.

by 마마뮤

"지금 업무 시간 아니야?? 재택근무 열심히 해야지 이렇게 놀고 있음 어떡해~"

훅 들어온 나의 멘트에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쳐다본다.


"이거 우리가 만드는 게임이거든????"

"헙... 그렇구나..... 쏘리..."

(조용히 퇴장)


가끔은 정말 우리가 얼마나 세상의 모든 일을 '나의 입장'과 '나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지에 대해 새삼 놀랄 때가 있다. 내리 재택근무 중인 남편이 일하고 있는 방에 뭘 좀 가지러 들어갔다가 아무 생각 없이 튀어나온 말에 괜스레 나만 뻘쭘해졌다. 모니터 화면에 띄워져 있는 게임 장면을 보고는 단번에 이 사람이 일은 안 하고 놀고 있다는 생각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한 것이다. 그러나 게임 프로그래머인 그는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었을 뿐인 것을.. 사실 늘 모니터에 알 수 없는 희한한 문자가 그득한 화면을 띄워둘 때가 훨씬 많지만, 잘 구동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 게임 화면을 봐야 하는 때도 있는 건데, 그렇게 대다수의 나 같은 사람들 머릿속에는 게임은 곧 노는 중이라는 공식이 정형화돼버린 것이다.


그렇게 되돌아 나오며 그 언젠가 내가 회사에서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한때 나는 마케팅팀에서 기업 SNS 채널의 전반을 관리하고 있었기에 하루 업무 중 상당 시간을 각종 소셜 미디어를 들여다보는데 들여야만 했다. 우리 채널을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론, 경쟁사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파악해야 했고, 더 나아가 관련된 여러 가지 트렌드를 발 빠르게 따라가야 하다 보니 웹서핑을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나의 의무이자 권리였다. 우리 파트의 일이 회사 차원에서는 나름 중요하다고 인지는 하고 있으나 그다지 적극 밀어줄 의향은 애매하기 짝이 없던 시절이라, 마케팅 팀에 한 파트로 소속되어 있음에도 팀장님 조차 우리가 무슨 일을 하는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듯했다. 어느 날 내 뒤로 쓱 지나가던 팀장님이 툭 던지는 한마디..


"야 너는 일 안 하고 맨날 페이스북 보냐?"

"팀장님.. 이게 제 업무입니다만......"

".............."





나는 그 누구보다 상대방을 잘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언제나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게 무슨 특기라도 되는 양 사실 피곤하다 싶을 정도로 남의 입장을 생각해보던 나였기에, 그 언젠가부터는 그리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그게 나 스스로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조금씩 깨닫게 된다. 언제나 나의 경험과 생각이 아이의 행동보다 앞서 나가 있고, 그를 바탕으로 아이의 행동을 사전에 결론짓기 일쑤인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아이를 염려하는 마음이 전제된 것이지만, 아이에게는 이런 경험이 쌓이다 보면 결국 엄마는 나를 믿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게 아니겠나. 안 그래도 고작 7살밖에 안된 딸아이가 얼마 전 내게 한단 소리가 엄마는 왜 내 말을 못 믿어? 였었다. 엄마가 항상 자기 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의 이런 반응에 내심 놀라고 말았다. 내가 그랬나? 싶은 생각에 당황스러웠기 때문이다. 아직 사춘기도 결코 안 올 것처럼 멀리 떨어진 미취학 아동의 입으로 이런 얘기를 듣다니.. 나 스스로의 말을 조금 더 인지해보려는 노력으로 살펴보자 나는 정말 온통 나만의 생각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선입견에 가득 찬 말과 행동을 하고 있었다. 생각이 좀처럼 열리지 않으려는 듯 너무 많은 것들을 나의 경험에 근거해 미리 판단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라떼는 말이야'가 나오는 그야말로 '꼰대'가 되어가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선입견이 강하다는 것은 단순히 고집이 세다는 것에서 더 나아가, 사실은 내가 겁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남들이 겉으로 보기엔 쟌 다르크 뺨칠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겠으나, 내심 속으로는 아주 여린 '나'를 꼭꼭 숨기고 있다. 나는 사실 잘 모르는 초행길에 운전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일찍부터 해외 생활을 했던 터라 운전면허를 17살에 손에 쥐었으니 그간 운전한 경력만으로 강산이 3번은 변하는 찰나인데, 운전이 얼마나 능숙하냐 아니냐의 이슈와는 별개로 나는 그렇게도 내비게이션에 오롯이 의지해야 하는 초행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내비 언니의 안내에 온통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느라 예민해지는 데다 만약 한번 길을 놓치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혈압이 오르는걸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어찌 보면 결코 실수를 용납하고 싶지 않은, 내가 관 뚜껑을 열고 들어갈 때까지 이룩하지 못할 그 어쭙잖은 '완벽주의'적인 성격의 영향이기도 하고, 뭔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방황하게 될 내 모습을 마주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나의 경험을 맹신하며 그 틀을 벗어나고자 하지 않는 아집으로 보기 좋게 '선입견'이라는 색안경을 늘 쓰고 있지 않나 싶다.


내비게이션 얘기가 나왔으니 지난 나의 경험을 다시 불러오자면, 사실 이런 나의 유연하지 못한 태도로 인해 간혹 내비 언니가 실시간 교통 정보를 반영한 빠른 길로 안내를 해준다 해도, 나는 기어이 복잡한 길로 뚫고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다. 길이 막히고 차 안에 갇혀 아~ 이래서 다른 길로 가라고 했구나~ 를 새삼(?)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기어이 내가 익숙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반면에, 한 번은 내 고집대로 가지 말고 내비 언니의 안내에 충실히 따라가 보자 했더니, 온 동네방네 골목길을 다 찍고 자칫 삼천포까지 다녀오는 줄로 알았다. 마치 내가 항상 자기 말을 무시했으니 그 참에 엿이라도 한 상자 먹여주려는 듯... 모처럼 내어준 나의 믿음을 보기 좋게 갈아 마셔버리는 내비게이션, 너란 기계!

그래서 나는 다시금 보란 듯이 나의 익숙함을 먼저 선택하게 된다.




결국 아이의 행동에 한껏 나의 선입견을 동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로운 일에 일단 덤벼보게 놔두고, 나타나는 현상과 결과에 따라 융통성 있게 방향을 틀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할진대, 사실 부모라는 입장에 놓인 순간부터 아이의 매사가 불안하고 염려가 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지 않던가. 그러기에 좀 더 자유롭게 아이 스스로 부딪치며 겪어보게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는 사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 경험과 나의 기준을 아이에게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나는 안 그럴 줄 알았고 실제 안 그러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국 나도 한치를 더 앞서 가지 못하는 똑같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때는 좌충우돌 도전이란 거 내가 좀 해봤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는데, 그 역시도 지금 돌이켜보면 젊어서 가능했던 패기였고 그 패기 안에는 꽁꽁 잘 숨겨진 겁쟁이 '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들어가면서 '위험'보다는 '안정'을 택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앞으로도 하루하루 살아가며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나의 익숙함을 신뢰할 테고, 또 내 기준으로 충만한 선입견을 누군가에게 적용하게 되지 않을까. 이래서 나이가 들면 말을 적게 하라고 하나보다. 나의 생각과 행동이 하루아침에 변화하기를 기대하긴 쉽지 않으니, 그것이 표출되는 것을 최대한 막아보는 게 가장 효과적인 방지책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나의 선입견으로 상대에게 상처 주는 일을 줄이는 것에 대한 방지책 말이다. 난 오늘도 이렇게 또 한 가지를 깨닫는 꼰대가 되어간다.





(사진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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