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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과정이 궁금해요.

[글모사 9기] - 관찰

by 마마뮤

나는 사람을 참 좋아한다.

본래 사람의 본능이 그러하다니 나는 너무나도 전형적인 인간인 것이다. 그래서 참으로 사람에 관심이 많고 관계에서 오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내 삶에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어디 관계에서 즐거움만이 존재하던가.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생각도 많고 혼자 마음 앓이도 많고 상처도 참 많이 받는다.


상처가 생겼다 아물면 그 마음이 더 단단해지면 참 좋으련만, 베었던 상처가 아물었다고 같은 자리에 다시금 상처가 나면 그게 안 아픈 게 아니듯, 참으로 고약하게도 여린 마음은 그렇게 세월에 데고 깎여도 그다지 두꺼워지지는 않는 것 같다. 그나마 이만큼 세월을 주워 담고 나니 어릴 적 보다는 담담함을 얻었고,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스스로 도닥이는 법을 배웠다. 경험치가 쌓였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아마도 좋은 관계를 맺어가기 위해 본능적으로 패치를 장착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사람들을 관찰하기를 즐긴다. 그 사람의 행동거지, 말투, 평상시 제스처 등등, 물론 그것으로 사람을 모두 판단하기는 어렵겠으나 대체적으로 그러한 관찰의 과정을 통해 그 사람이 살아온 가정의 분위기는 어땠을지, 어떠한 점이 그 사람의 성격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을지를 추측해보곤 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상대에 대한 전체적인 '판단'을 내리고자 함은 아니지만, 사실 그 과정을 그저 즐기기도 하고, 전문가는 아니더라도 나름의 분석으로 그 사람을 파악하고 나면, 대부분의 경우 상대를 대할 때 나름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전문가로서의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야말로 나름의 노하우와 꼼수가 쌓여 있는 게 분명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관찰대상은 당연히 남편이었다. 처음부터 딱히 너무 안 맞는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지는 않았지만, 오래 함께 살아 나가다 보니 그래도 서로 둥글둥글 깎아 나가며 많이 닮아가는 듯 부드러워지는 구석이 많다는 생각이 든다.

다 늦은 나이에 만났기에 상대방을 내게 맞추려는 노력보다 그래도 각자 있는 그대로를 존중해줄 수 있는 여유만큼은 그야말로 최고 레벨이었다고 자신할만하다. 그래도 가끔 보면 이 사람은 참 모든 것을 본인 위주로만 생각하는구나 싶은 것이 내가 정말 화가 날 때는 어쩜 그렇게 이기적이냐는 말도 나왔다.


나는 사실 마음속에 뭔가 꿍하며 감춰두는 것보다 무엇이든 속마음을 터놓고 문제 해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성격이 급한 나에게는 그렇게 함으로써 답답해 속이 터지는 일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편은 뭔가 절대 속 시원히 입 밖으로 생각을 내어놓는 사람은 아니었었다. 혼자 생각을 숙성시키고 묵히고 삭히고 늘 그렇게 혼자 속으로 해결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같이 살게 된 이상 그것만은 금기사항이 되어 버렸다.

무조건 이견이 생기거나 문제가 있으면 모두 대화로 풀어내야만 우리가 원만히 살 수 있음을 알차게 세뇌시킨 결과 이제는 서로의 생각을 내어 놓으며 빠른 수습을 하다 보니 살면서 크게 시끄러울 일이 없다.




남편과 나에게서 많이 다른 점을 발견할 때마다 어릴 적 본가에서 자랄 때는 어떠했는지 이것저것 참 많이도 물어봤다. 사람 관계에서 언제나 그러하듯, 어떠한 성장 배경이 이 사람의 성격에 영향을 미친 건지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남편과 나는 엇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런데 양가 집안의 분위기만큼은 달라도 너무 다른 상극에 가까웠다.


우리 집은 전반적으로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엄격하게 조심해야만 하는 부분도 없었기에 집에서 크게 주눅 들어 지낼 이유도 없었고,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선에서 여느 집들처럼 잘하면 칭찬받고 잘못하면 야단맞으며 그렇게 자랐다. 지금껏 그래도 가장 감사하게 여기는 것은, 나는 부모님의 칭찬을 먹고 자란 사람이란 것이다. 항상 무엇을 하든 대체적으로 잘한다 해주셨고, 나에 대한 애정 표현을 정말 아낌없이 해주셨었다. 한창 사춘기일 땐 그게 좀 귀찮다 싶을 정도이긴 했다. 부모님은 항상 내게 사랑한다, 자랑스럽다 표현해주셨고, 매일 안아주며 스킨십도 참 많았다. 그렇게 넘치도록 사랑을 받고 살았으니 사실 불만이랄 게 뭐가 있었겠나. 그런 환경에 놓여 있었다는 자체가 그저 감사할 일인 것을..


부모님과의 관계가 그러하다 보니, 사실 자유롭게 내 생각을 표현하고 맞서기도 하는 게 크게 이상할 게 없었다. 우리 집은 갈등이 생기면 세게 부딪치기도 하며 또 그 과정을 거쳐 해결점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지금도 아버지께 내 의견을 서슴없이 말씀드리곤 한다. 아니라고 생각되는 게 있으면 강하게 말씀드리는 것이 하나도 힘든 일이 아니다.


반면, 우리 남편은 나와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인다.

워낙 성격이 대쪽 같고 강성이신 시어머님의 성격 탓도 있지만, 남편은 강하고 솔직하게 의견을 내세우며 맞서기보다는 설득하고 회유해보다 결국 대부분은 당신 뜻대로 하시라며 포기해버리곤 한다. 물론 같이 살아보니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지 너무 "잘" 알겠지만, 여하간 결혼 초에는 왜 좀 더 강하게 말씀드리지 못하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더랬다.


왜 그런가 살펴보니, 남편 집안의 분위기는 우리 집처럼 상호작용이 활발하지 않았다. 시아버님은 늘 밖에서 바쁘신 아버지셨고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은 하시나 입 밖으로 내어 굳이(?) 많은 표현을 해주시는 분들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과 그렇게 많은 대화가 오간 적이 없다고 한다. 시어머님이 실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들은 적도 있긴 한데, 너무 예쁘다 아낀다 표현을 많이 해주면 '버릇이 없어진다'라고 철석같이 믿으시는 분이시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도 다른 '저세상'의 기준을 가지고 사신 분들인 것이다.


아마도 그런 환경이 우리 남편이 뭔가 표현하기를 극도로 서툴러하던 이유가 아닌가 싶다. 표현도 서툴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기보다 각자 자신의 생각으로부터 출발하는 게 시댁 식구들에겐 일상이었다 보니, 같이 살게 된 내가 느낄 땐 모든 게 다 본인 위주의 생각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아이에게도 그 점을 자주 얘기해준다. 무엇이든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표현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너의 생각을 알아줄 수 없는 거라고 말이다. 말하지 않는 것은 모르는 법이다.

남편은 이제 내 방식에 완전히 젖어 들어 표현도 잘하고 나와 대화가 많은 편이다. 엄마 아빠 둘이만 맨날 얘기를 나눈다며 질투에 이글거리는 꼬맹이까지 합세하니 서로 자기 말만 하겠다고 난리난리, 온전한 대화가 어려울 지경이다. 아마도 이젠 발언권 표지판을 만들어 순서를 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활 속의 '관찰'을 통해 나는 사람을 알아간다. 예전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때에도, 너무도 오랜 기간 함께 일해야만 했던 소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원수 같은 분'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도 나름 이런 관찰과 분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를 하릴없이 읊어대며 머리를 쥐어뜯기보다는, 그 사람이 어떤 결핍이 있었을지 또는 어떤 넘침에 의해 성격이 그리 형성되었는지, 그렇게 나름의 분석을 통해 최대한 객관화하여 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Don't take it personal


우리나라 말에서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말 정도로 해석이 될 것 같은데, 영어 표현으로는 'Don't take it personal'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뜻을 들여다보자면, 상대방의 어떠한 행동을 너라는 사람에 대한 반감이나 미움으로 한 것이라 생각지 말라는 정도의 의미가 될 것 같다.

그 저변에는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만한 어떠한 그 사람만의 '이유'가 있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 원인을 내가 제공한 것이 아니니,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일 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므로 내 기분을 지하세계로 끌어내리거나 고민에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서양인들과 생활하면서 이러한 가치관과 태도가 내심 놀랍기도 하고 또 좋게 다가왔다. 그렇게 상대방의 문제를 나와 분리시켜 바라보기 시작하니 그럭저럭 골치 아픈 사람들도 상대할 만 해졌기 때문이다.


그 분리에는 바로 상대방에 대한 '관찰'이 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왜 이럴까'로 문제를 접근하기 시작하면 그 끝은 그저 '괴로움'일 뿐이다. 그러나 상대의 행동과 성격에 있어 어떠한 배경과 원인이 있었을지를 관찰해보면, 분명 그 끝자락엔 그 사람만의 이유와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관찰을 통한 문제의 객관화가 어찌 보면 수많은 인간관계를 안전하게 지켜나가기 위한 패치라는 생각이 든다. 상처가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미리 슬쩍 붙여놓는 대일밴드 말이다.

적어도 어떠한 관계에 있어 '파스'를 붙여야 하는 일만큼은 미리 막아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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