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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는 기쁨이 더 컸어요.

[글모사 9기] - 선물

by 마마뮤

어릴 적 '선물' 이란 정말 생일날이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 등에 받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그러기에 어린 시절엔 한 해의 삶을 이 날들을 기다리는 낙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선물은 그렇게 가끔씩 맛볼 수 있는 인생의 꿀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떠한가? 사실 내 어릴 적보다 상대적으로 우리는 너무도 풍족한 세상을 살게 되었고, 내 아이의 경우만 보더라도 사실 선물이란 게 꼭 그런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뜬금없이 손에 안겨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을 보게 된다.


기본적으로 응당 선물을 받아야 한다고 정해진 특별한 날들을 제외하고도, 외국에 사시는 친척분이 한국에 오시며 손에 들려주는 선물, 할아버지가 손주 예쁜 마음에 시도 때도 없이 사주시는 선물, 고모, 숙모, 삼촌 너나 할 것 없이 종종 들이미는 선물, 그야말로 선물이 범람한다. 게다가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주문하여 택배로 받아보는 시절이 도래하다 보니, 택배 아저씨는 1년 365일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 집 벨을 누르는 '산타 할아버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택배 박스를 열어볼 때면 이제는 아이가 제 물건이 왔냐며 반갑게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해져 이를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실 어떤 새로운 물건을 마주했을 때, 아이가 그것에 대해 느끼는 감사와 기쁨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쉽게 발견하곤 한다. 사실 부모로서 아이에게 물질을 소중히 여기는 습관을 길러줘야 하는데, 우리 아이에게는 아무것도 사주지 마세요!라는 엄포와 공지를 늘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이 부분은 참 혼란스러운 문제이다. 아이에게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진지한 대화로 소중함의 개념을 납득시켜야 할지, 아니면 시대의 패러다임이 바뀌었으니 이 아이들이 받아들이는 가치관과 기준점이 달라졌을 뿐이라며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그래도 물론 물건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는 것만은 변치 않는 '가치'임을 잊으면 안 될 텐데 말이다.




지난 주말 아침부터 반가운 택배도착 알림이 왔다.

함께 하는 문우(文友)이신 글향 작가님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얹힌 너무나도 예쁜 머그컵이었다. 주말 아침을 이 반갑고 예쁜 선물과 함께 시작하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사실 이렇게 선물은 나이가 많으나 적으나, 그 누구라도 받는 사람은 큰 기쁨을 맞이하게 된다. 그런데, 보내주신 작가님께 감사를 표시하자 '주는 기쁨이 더 컸다'는 말씀을 해주시는데, 그 마음이 너무도 감동으로 다가왔다.


선물을 마주하며 '주는 기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해야 할 때는 그 사람이 뭘 받으면 좋아할까, 어떤 물건이 유용하게 쓰일까, 나라면 무엇을 받을 때 기분이 좋을까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예쁘게 포장하고 카드를 써내리고, 하나하나의 과정을 거치며 마음속엔 상대방의 기뻐하는 모습을 떠올려보게 되고,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 역시 행복감에 젖어들게 된다.


나는 상대에게 선물을 전해주기까지가 그렇게 심장이 두근두근한다. '선물'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이어지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치 무대 위에서의 공연을 준비하듯 떨림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사실 의외로 내 생각만큼 받는 사람이 기뻐하지 않는 상황(?)도 생길 수는 있지만, 어쨌든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선물을 고르고, 포장하고, 전달하기까지 나는 행복한 설렘에 빠질 수 있으니, 선물은 주는 사람에게나 받는 사람에게나 말 그대로 '선물'이 아니겠는가..





이제 7살인 딸아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 것과 네 것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후로는 작아진 자신의 옷을 사촌동생에게 주는 것조차도 속상해한다. 아직 분별력이 미숙한 아이에게 있어서는, 내게 속한 '내 것'이라는 영역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유치원에서 배우는 건지 가끔씩 과자를 나누어 주며 '나눠 먹으니 훨씬 맛이 좋다'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그렇게, 인간은 1차적으로는 '나'를 위주로 생각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교육을 통해 나누는 것이 필요하고 더 좋은 것임을 배움으로써 점차 옆을 돌아볼 줄 아는 '능력치'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그와 더불어 우리는 살아가며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통해 주는 기쁨과 받는 기쁨에 대한 학습을 하게 되는 게 아니겠나..


주는 기쁨을 논하고 보니, 더 나아가 나누는 삶에 대해 떠올려보게 된다.

가진 것을 많은 분들과 나누는 훌륭한 삶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다. 연예인들 중에도 소위 '기부천사'라는 타이틀을 얻으신 분들이 꽤 있는데, 이들은 한결같이 얘기한다. 나누고 주는 기쁨이 훨씬 크다고 말이다.


여태 나 사는데 허덕이느라 나눔을 미루어 왔는데, 사실 크고 거창하게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나눔이란 사실 언제든 열려있는 게 아닌가 싶다. 단지 눈을 들어 주변을 크게 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살았을 뿐..


작은 선물을 준비하면서도 그렇게 설렘을 느끼게 되는데, 좀 더 많이 나눔을 실천한다면, 그로 인해 더 많은 분들에게 선물을 해드릴 수 있다면, 아마 설렘보다 더 나아가 충만감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결국은 내게로 돌아올 선물 같은 행복감을 위해서라도, 좀 더 주변을 돌아보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반성을 해보게 된다.


선물을 통해, 주는 기쁨, 선물하는 삶을 생각해보게 된 것, 바로 이것이 오늘 내가 받은 선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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