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눈 뒷동산
일본은 3학기 제라고 한다.
4월에 새 학기 시작, 한 달쯤의 여름방학 후
9월부터 12월까지 2학기, 겨울방학이 2주 정도로 짧게 있고
1월부터 3월까지 겨울학기인 3학기, 3월 말에 2주 정도의 봄방학 후 다음 학년으로 넘어간다고 하네.
고로 우리는 2월에 여행 갔으니 집주인 엄마도 출근하시고, 집에 사는 소년도 학교에 간다.
그래서 도우미 히포 이모랑 집주인 엄마의 동생인 혈연 이모가 놀아주러 오셨다.
뭐 하고 싶냐 하셔서 동네 눈 쌓인 데서 썰매 타고 싶어요, 하니까 차로 5분도 안 가서 있는 뒷동산에 데려다주셨다. 그냥 학교 앞 경사로인데 여느 썰매장 못지않네. 한 시간 반쯤 뱅뱅 돌려서 썰매를 타고 어른 셋이 돌아가며 애를 놀아주심. 바다에서 불어오는 따뜻하고 폭신한 눈, 폭 뛰어들고 금방 뭉쳐져서 눈사람도 두 개나 만들었다.
어른 셋과 어린이 하나가 빨간 뺨을 하고 다 같이 동네 라면집에 갔다.
어디를 가도 어린이 메뉴가 있는 일본 사랑합니다.
라면 먹고 집에 오니 옆집 사는 할머니가 만들어보고 싶은 요리가 있다고 요청하셨다. 미역국과 삼계탕을 끓여보고 싶다고. 적극적이고 요리를 좋아하시는 우리 엄마보다 젊으신 할머니. 번역기를 돌려서 재료를 말씀드리니 내일 사 오신다고.
요리왕 할머님과 함께 냉장고를 털어 김밥준비를 했다. 집에서 준비해 온 한국 김밥김이랑 김밥 말이를 펴고, 단무지랑 그냥 있는 햄이랑 참치랑 오이랑 달걀. 일본집에 원래 참기름 다 있는 걸까?
밥에도 참기름 간 하고, 왜 김밥 겉에도 참기름을 바르냐고 물으셨다. 그, 글쎄요. 반짝반짝하라고 일까요?
준비하고 있는데 형아가 학교에서 왔다. 너도 김밥 말아볼래? 해서 원하는 재료 넣고 셀프로 세줄 말아서 썰어주니 잘 먹는다. 김밥 만드는 사진을 찍어서 근무중일 엄마에게 보냈다. 헤헤.
오늘 와주신 이모야는 영어 못한다고 하면서 외국인인 나를 좀 무서워했는데 내가 아무 일본말로 떠들고, 살려주세요 정도의 신호를 보내며 메시지를 발신하니 몹시 잘 알아들어주셨다. 어떻게 보면 같이 사는 식구 말고 제일 의사소통 한 사람. 영어 대충 많이 알아들으시는데 안 해봐서 부끄럽거나 겁나셨나 봐. 사실 한번 부끄럽고 말면 어떻게든 되는 거. 요번에 여행 와서 나도 배웠지만 아이에게도 가장 알게 해주고 싶은 거였다.
우리 소년은 요즘 보기 드물정도로 영어 선행학습이 전혀 없었다. 몹시 배우기 싫어해서 반작용으로 일본어 구몬을 하면서 히라가나를 조금씩 외는 수준. 근데 어쨌든 나도 생활하면서 영어를 하고 다른 분들도 어색해도 영어나 어떻게든 의사소통하는 경험. 그리고 말을 못 해도 사람들이랑 같이 지낼 수 있다는 거.
사실은 나보다 어린이가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경험.
홈스테이를 처음 신청하면서 목표 중에 하나는 다른 나라 사람이랑 말하려면 다른 나라 말을 배울 필요가 있는 걸 느끼라는 거였다. 근데 와서 그보다 훨씬 큰걸 많이 배웠다. 사람이 소통한다는 건 말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마음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
저녁에는 눈이 많이 와서 히포 모임활동을 온라인으로 했다. 사람을 직접 못 만나고 떠듬거리며 말하려니 하찮은 언어실력이 와장창 실감됐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어주려고 몹시 노력해주셨구나. 그냥 말 안하고 같이 있는 것 만으로도 훨씬 많은 소통이 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