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항상 무겁고 피곤하신가요?
침대에서 눈을 뜨면 영락없이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을 또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눈을 감고 이불을 당겨보지만 아이와 눈이 딱 마주친다. 곤히 잠자는 둘째의 늦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첫째를 데리고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온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거실에 따스한 조명을 켠다. 아이에게는 과채주스를 내어주고 나를 위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내린다. 우리의 아침은 원목식탁에서 시작된다. 아홉 살 딸아이는 요즘 빠져있는 [비밀의 화원]을 읽고 있다. 엄마는 아침 일기를 쓴다. 빈 종이를 어떤 말로 채울까 고민으로 시작하지만,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보면 한 편의 수다처럼 재미를 느껴진다. “시간이 없어”를 습관처럼 달고 사는 현대 사회 속에서, 아침시간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여유를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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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의 존재를 알게 되던 날, 처음엔 삼신할머니께 노안이 와서 ‘오배송’을 하신 줄 알았다. 뒤늦게 다시 엄마가 된다니 기쁘기도 하지만 조금 혼란스러웠다. (군대와 비교해 죄송합니다만 재입대 영장을 받은 것 같았다. 아기를 키우는 육아기는 사회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채 홀로 싸우는 날들이었다. ‘단절감’,‘혼자’,‘책임감’,‘불안감’,‘퇴보’ 나는 이런 단어들을 적으로 삼아 무찔러야 했다.) 다행히도 아기를 키워본 노하우와 육아에 동참하는 첫째아이가 있어 든든했다. 나이 차이는 많았지만 성별이 같아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코로나 시국이라 출산 후 아기와 격리를 당하면서도 묘한 기대감에 취해 자주 피곤함을 지워나갔다. 하나면 하나인대로 둘이면 둘인 대로 주는 행복감이 달랐다.
나에게 첫째를 키우는 일이 ‘화이트칼라’라면 둘째 아기를 키우는 일은 주로 몸을 쓰는 ‘블루칼라’였다. 인간의 ‘저 밑바닥에 있는 욕구’를 채워주는 일로 시작된다. 아기들에게는 먹고, 트림하고, 잠자고, 배설하는 일이 생명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사진 속에 얼굴이 달라질 만큼 아기는 안간힘을 다해 매일 자라주었다. 아기가 잘 먹고 잘 자기 시작하고부터 ‘편안함을 채워주는 일’을 시작했다. 하루 종일 휘저었을 팔다리를 따뜻한 물속에 담가 쉬게 해주는 목욕시간이었다. 얇은 뼈마디를 잘못 만지면 부러질까 목욕시간마다 두려움의 고비를 넘겼다. 엄마는 날마다 목욕관리사가 되어갔다.
아기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면 ‘리스크 관리’ 업무가 추가된다. 머리를 바닥에 꿍 찢거나 잘못 휘두른 장난감이 제 얼굴로 향하는 순간을 경호를 해주는 업무이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것도 순식간이라 이쯤이면 온 바닥이 매트도 도배 된다. 아기는 피부를 위해서인지 자꾸만 이유식을 얼굴에 바른다. 둘째라 그런지 엉망진창이어도 즐겁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몸은 고되지만 커가는 모습을 금방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어 뿌듯함은 배가 된다. 이 또한 노동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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