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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관찰기록소

마음에 불안함이 느껴지시나요?

by 지각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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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나요. 벌거벗은 제 몸을 보면 왠지 경건한 마음이 듭니다. 샤워를 하며 요가나 명상을 해볼까요. 아이들을 씻길 때면 손에 와 닿는 촉감이 기분을 좋게 만듭니다. 촉촉하고 보드라운 살결에 탱탱한 탄력감은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나를 씻길 때는 어떤가요. 거칠고 건조한 피부는 날로 탄력을 잃어갑니다. 모찌떡 같은 아이들을 씻기던 손으로 푸석한 감자 같은 피부를 쓰다듬는 날에는 나는 조금 서글픕니다. 그동안 이 몸으로 악착같이 살아내느라 고생이 많았구나. 제 어깨를 한껏 끌어안고 싶습니다.


피부가 노화되는 변화를 겪으면서 나는 죽음을 떠올립니다. 오늘이 생에 마지막 날이라면 당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요. 나는 평소에는 가지 않던 네일샵에 문을 여는 상상을 합니다. 나의 마지막 날에 페디큐어를 하고 싶습니다. 냄새나는 신발 속에서 구겨져 고생한 발에게 호강도 시켜주고 싶지만 그 이유만은 아닙니다. 자식들 앞에 주검으로 누워있더라도 초라한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습니다. 형광색도 발톱도 좋고 커다란 큐빅을 박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 제일 화려하고 반짝이게 해주세요.” 저들 때문에 평생 고생만 하다간 울 엄마를 떠올리며 죄책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아요.


고백을 하자면 나는 여름철 집안일을 할 때면 대체로 헐벗고 일하는 편입니다. 청소기를 돌릴 때면 먼지를 내보내려 창문을 열어 제낍니다. 한 여름 창문으로 밀려들어오는 열기는 그야말로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죠. 땀에 젖은 티셔츠와 바지가 바짓가랑이를 붙잡습니다. 그럴때면 비키니를 입고 해변에 간 기분으로 홀가분히 고무장갑을 끼 채 설거지를 합니다. 조그만 창에서 조각 바람이 불어와 몸을 타고 흐르던 땀을 식혀줍니다. 헐벗고 집안일을 하다 물걸레를 밟고 널부러진 내모습을 상상합니다. 얼마나 꼴사나운지 모릅니다. 엄마를 찾아온 자식들 앞에서 ‘아 속옷을 위 아래 짝이라도 맞춰입을 걸...’ 후회해도 그때는 이미 늦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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