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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Oct 24. 2021

바람 잘 날 없으신가요

마음에 불안함이 느껴지시나요?

마음이 복잡할 때면 절에 다녀온다. 종교는 없지만 그저 절이 주는 평온함이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절들은 주로 도시를 떠나 한적한 곳에 있었다. 때로는 넘실대는 파도 옆이기도 하고 원시우림을 떠올리게 하는 산 속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좋아했던 건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을 외던 스님들의 목소리와 향냄새, 그리고 바로 풍경소리였다. 바람이 노크를 하듯 풍경을 두드리면 청아하고 텅~빈 소리가 머리에서 울려 퍼졌다. 바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라. 그저 바람을 생각하라.” 트루먼 카포티의 소설 <마지막 문을 닫아라>의 한 구절이다. 하루키는 이 책을 읽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소설을 썼다고 한다.     


나의 집 창가에는 썬캐쳐가 하나 있다. 빙그르르 돌면 온 집안에 햇볕이 도트무늬 파도가 되어 일렁인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썬캐쳐는 바람이 흔들어 놓고 간 열정이 아닐까. 사계절 바람의 모습을 눈으로 지켜볼 수 있어 좋다.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밝은 태양의 빛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창문에 썬 캐처를 걸어두었다. 빛을 통해서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믿었던 풍수 아이템이라고 한다. 아기들의 모빌을 닮은 썬캐쳐는 유리나 구슬, 크리스털,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소재로 만들어진다.     


풍경이 바람의 노래라면, 썬캐쳐는 바람이 추는 춤이다. 강한 비바람이 불어오는 날이면 창가에서 파르르 날개를 비비는 소리가 난다. 수 천 마리의 종이 나비들이 하늘을 향해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만 같다. 그 날도 그랬다. 우리는 거제도로 여행을 떠났었다. 산책길을 따라 ‘바람의 언덕’에 올라갔다. 길가에 떨어진 동백꽃은 아직 붉은빛이 선명했다. 송이 째 툭 떨어지는 동백은 척박한 겨울에도 아름다운 꽃을 피워내는 강인한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어린 딸아이의 손을 꼭 붙잡고 정상을 향해 걸었다. ‘바람의 언덕에서는 바람의 핫도그를 먹어야 한다’고 누군가 내게 말했다. 두 겹으로 바삭하게 튀겨낸 그곳 핫도그는 갈색 빛이 돌았다. 설탕 위에 사르르 굴려 캐첩과 머스타드를 지그재그로 뿌렸다. 건망증 도깨비가 잃어버리고 간 도깨비방망이처럼 생긴 핫도그를 들고 어린 딸아이는 벌써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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