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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Oct 24. 2021

부부만의 은밀한 시간

마음에 불안함이 느껴지시나요?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아침이 되었습니다. 월요일은 마치 행복한 단잠을 자고 일어난 다음날 같습니다. 열어 놓은 창가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커튼을 간질입니다. 창밖에선 올 여름 마지막 매미가 목청껏 울고 있습니다. 햇빛에 뽀송하게 말린 이불이 종아리를 스쳐지나갑니다. 단순한 후각이나 촉감에도 일상을 행복으로 이끄는 마력의 힘이 있다고 말입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침대 위에 누워 조금 더 빈둥대고 싶어졌습니다.    

  

우리 부부는 주말동안 함께 맥주를 마셨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 유리잔을 샀습니다. 540ml 짐승용량에 오로라 빛이 감도는 잔이었어요. 코로나로 집에서 마시는 맥주라도 좀 느낌있게 마셔보자는 의도였죠. 편의점에서 마셔보고 싶은 맥주들을 어렵게 고르고 (손톱을 물어 뜯고 싶을 만큼...우유부단한 이들에게는 이 결정의 순간이 늘 어렵습니다.) 검은 봉지에 담아 들고 오는 내내 묵직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딸깍~스으으으~~똘~똘~똘~똘”     


유리잔을 잡는 그립감은 낯설지만 기분이 좋았습니다. 따르는 용기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액체라서 일까요. 새로운 잔에 따르니 늘 마시던 맥주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뽀글뽀글 탄산이 달라붙은 유리잔의 표면을 돌리자 오로라가 일렁입니다. 입술을 대고 천천히 한 모금씩 음미를 하자 IPA 홉의 향이 맴돌았습니다. 하루는 간장소스를 발라 구운 등갈비랑 함께 마셨고 또 하루는 숯불 치킨에 칠리소스를 더해 마셨습니다. 역시 맥주는 어떤 요리와 함께 먹어도 잘 어울리더군요.     


우리는 적당히 취해도 대사를 놓칠 일 없는 한국 영화를 틀었습니다. 영화배우 진구씨가 재식 역할로 나왔습니다. 은혜라는 어린 여자아이도 등장하죠. 어느 날 은혜의 엄마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재식은 은혜네 전세보증금 8천을 노리고 가짜 아빠노릇을 시작합니다. 이 장면에서 ‘아이를 키우며 개과천선하는 전형적인 건달영화’로구나 싶었는데. 맥주를 안주 삼아 기대 없이 보려던 영화 [내겐 너무 소중한 너]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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