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각쟁이 Jul 01. 2022

지금 그곳의 날씨는 어떤가요?

비바람이 몰아치는 장마 속에 띄우는 편지


올여름도 장마가 시작이네요. 바람은 참 부지런해요. 비가 오기도 전에 먼저 도착했죠. 아파트 다용도실 창살로 바람이 들이닥치는데 소리가 꽤 요란해요. 커다란 플라스틱 깃발이 휘날리는  같기도 회초리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 같기도 죠. 유리창이 깨질까 봐 박스 테이프를 붙인 집들도 있더군요. 시가 통째로 뜯어져 날아갈 것 같은 날이었어. 여름 바람이 겨울바람만큼이나 매섭더군요.     


창문을 열자 모기장 사이로 바람이 비를 밀어 넣었요. 순식간에 얼굴은 미스트를 뿌린 듯 촉촉하게 젖었죠. 눅눅하고 끈적한 날씨에 차가운 빗방울을 맞으니 오히려 시원하더군요. 그렇게 바람을 맞다가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바람”이라는 말을 자주 쓰다는 걸요. 약속 시간이 다 되어도 나타나지 않던 친구에게 “바람을 맞았다”고 하죠. 정인을 두고 다른 이와 눈이 맞았을 때에는 “바람났다” 해요. 또 허황된 일에 공연하게 들뜬 마음은 “헛바람”이라 하죠. 바람은 경우에 따라  “약속”이었다가 때론 “사랑”이기도 하고 또 “희망”이 되어요. 아마도 바람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잠시 머물렀다 돌아나간 것 아닐까요..     



“우리 바람 쏘이러 갈까?” 누군가로부터 이런 메시지를 받으면 기분이 들뜰 것 같아요. 젖은 머리카락을 헤어드라이기에 말리고 건조기에서 꺼낸 옷을 입고 길을 나서요. 창문을 내리고 운전을 하면 귓바퀴에서 머리카락과 바람이 함께 휘감겨요. 얼굴로 쏟아지는 바람을 맞다 보면 얼얼한 기분이 들곤 요. 그러다 보면 마음 안을 꿉꿉하게 채웠던 걱정거리들도 조금씩 마르기 시작해요. 집안 곳곳에 얼룩덜룩 생활이 묻어나듯이 마음에도 감정의 얼룩이 물자국을 만들곤해요. 바람을 쏘이고 들어오면 마치 대청소를 하듯 개운한 기분이 들겠죠.


그거 아세요? 단풍나무 씨앗에겐 프로펠러를 닮은 날개가 있다는 걸요. 바람이 노래하던 어느 날 씨앗이 빙빙 돌며 멀리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어요. 땅 위에 많은 생명들은 바람에 씨앗을 날려요. 어쩌면 우리들의 마음속에도 아직 날려 보내지 못한 씨앗 하나쯤을 품고 사는 것 아닐까요. 싹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던 씨앗은 오래도록 품어온 누군가의 꿈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어떤 바람(hope)이 바람(wind)을 타고 순항하기를 바라는 힘은 하루를 더 살게 해요. “      


연을 높이 올리고 싶을 때에는 줄을 풀지 않고 팽팽하게 감는다지요. 오래도록 간직해온 꿈 하나를 꼭 쥔 채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요. 연이 탄력을 받고 머리 위에 수직으로 섰을 때 비로소 줄을 느슨히 풀어요. 감았다 풀었다 반복되는 행위 속에서 연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요. 희망이 곤두박질치던 날에도 줄을 꼭 잡고 바람이 바뀌기를 기다리던 이 있어요. 실수 투성이던 순간들에도 온 마음을 다한 진심이었다는 걸 스스로 알기에 버틸 수 있었어요.


어쩌면 우리는 남들보다 조금 더디게 살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런 날들 속에서도 부지런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함께 이 질긴 줄을 잡아봐요.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거리에서 당신을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다가오는 계절 속에서 당신을 기다릴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