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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Feb 21. 2024

입지 않을 옷을 사는 마음

욕망이란 이름의 무의식

이사를 하게 되었다. 매도자와 매수자, 전세자가 다 함께 맞춘 날이 어쩌다 2월 말로 결정되었다. 그때까진 아무것도 몰랐다. 유튜브에서 이사 정보를 검색하다 ‘2월 말에 이사하면 이사비 3억’이란 게시글을 보았다. 그만큼 일 년 중 이사업체가 가장 특수를 누리는 달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전국의 학부모들이 3월 초 개학을 앞두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시기였다. 결국 이사비를 두 배 올려주고 계약할 수 있었다. 6톤을 초과하는 이사는 하지 않는 업체여서 울며 겨자 먹기로 장롱과 책장을 두고 가야 했다. 견적팀이 떠나자 이삿날까지 모든 짐을 줄여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옷장 문을 열기 전 심호흡을 했다. 그곳은 지나온 선택들에게 영향을 준 무의식들이 잠자고 있는 곳이었다. 처음엔 용도별로 나누어 수납했던 옷들이 세탁 과정을 거치며 뒤죽박죽 자리 잡았다. 한 때 사회적 역할을 위해 입어야 했던 옷들 위로 먼지가 쌓였다. 과거의 역할이 사라지고 새로운 역할을 입자 기존 옷들은 주인을 잃어버린 듯 덩그러니 놓여있기 일쑤였다. 언젠가 입겠지란 생각은 말 그대로 생각뿐이었다. 옷에도 시절인연이 다. 새로운 시대와 사명에는 그에 맞는 도구처럼 새 옷도 필요한 법이니 이별하는 법도 알아야 다. 옷장 구석구석을 좀 더 살펴보니 자주 입어 늘어나고 보풀난 옷이 있는가 하면 아직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도 있었다. 입지 않을 옷을 사는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옷을 구매하던 소비 행위로 무엇을 원했을까. 옷은 자신을 만족시키기도 하지만 타인을 위해서도 입는다. 때문에 옷차림은 TPO(time, place, occasion) 시간과 장소 상황에 맞게 입어야 한다. 옷장 안에서 자주 입지 않은 옷들은 주로 값이 비싸고 격식을 차리기 위한 옷들이었다. 사람들의 평판에 주의를 기울이며 체면을 지키기 위해 구입했던 것이었다.  대면하는 사람에게 옷은 빠르게 상대를 판가름할 수 있는 지표가 되어주기도 한다. 때문에 타평가에 과하게 기대었던 어리석음은 시기로 가득 찬 허영심을 부채질하였던 것이다. 오래된 취향과 숙고 없이 과시욕으로 덕지덕지 불어난 옷장은 터져나가기 직전이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옷장뿐 아니라 집안 곳곳의 수납장에서 재생산되고 있었다.     


물건을 사모으던 열정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탐욕과 욕심으로 끝없이 갈망하는 마음을 우리는 욕망이라 부른다. 욕망이라는 폭주기관차에는 종착역이 없다. 욕망의 에너지는 자꾸만 끊임없이 불어나는 성질을 지녔다. 욕망의 원인은 결핍에서 시작된다. 채워지지 않는 결여감이 무의식이란 열차를 달리게 하는 연 된다. 욕망이란 힘은 잘 사용하면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처럼 자기실현의 결과를 이루기도 하지만 대체로 끝이 없다는 단점을 지녔다.     


욕망이 불의 성질이라면 사랑은 물의 성질을 지녔다. 물속에 퐁당 빠지듯 사랑에 ‘빠진다’고 표현한다. 나는 '어떤 걸 사랑하는 사람인지'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사랑은 자신을 나타내어주는 거울이 다. 욕망의 결과는 소유이지만 사랑의 결말은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사랑은 개념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이다. 좋아하는 사람이나 사물을 돌보는 행위 속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소중함을 배워간다. 때문에 사랑으로 대면하면 자신의 부재나 결핍을 안아주고 성장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혼란스러운 변화의 시대 속에 살고 있다. 사회에서 대면하는 빈곤과 차별 사회적 불평등은 더 많은 욕망들을 만들어낸다. 욕망을 덜어낸 자리를 사랑이란 재료로 채워보면 어떨까. 좋아하는 것을 원하고 돌보는 사랑의 경험은 마음의 을 기를 수 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낙수처럼 또한 사랑은 밖으로 흘러넘치는 성질을 지녔다. 추운 겨울 옷장에서 따뜻한 외투를 꺼내어 이웃에게 덮어주 듯 이타적인 마음과 연민으로 사랑이 지닌 희생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돌아본다면 어떨까.


(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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