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 구린 맛.

쇠똥구리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by 지각쟁이

<쇠똥구리 초등학교에 입학하다.>


"풍아~ 학교 잘 다녀와. 오구오구 귀한 내 갑충이. 넌 애벌레 때부터 성장이 남달랐단다. 어딜가서도 아빠를 닮은 큰 키와 단단한 앞가슴을 항상 자랑스러워하거라. 학교 가는 길 헷갈리지 말고 엄마가 일러준 대로 잘 다녀오너라. "



오늘 나는 드디어 학교에 간다.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니 엄마가 알려준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나타났다. 뚱뚱한 줄기답게 적응력이 탁월해 생명의 나무로 불리는 바오밥나무는 웅장하게 손을 뻗어 커다란 하늘을 받들고 있었다. 그 앞에는 날렵한 몸의 검은 빛깔 친구가 더듬이를 서성이고 있었다. 길을 헤매고 있나보다. 다가가서 말을 걸어볼까..


"안녕? 나는 학교 가는 길인데 너는 여기서 뭐하는 중이니?"


"안녕. 난 하늘이라고 해. 엄마가 학교 가는 길을 적어줬는데 글쎄 오는 길에 잃어버렸나 봐... 더듬이로 바람의 방향을 파악하고 있었어. 우리 엄마가 곤충들에겐 바람과 냄새가 때론 내비게이션이 되어준댔거든."


"그래? 학교 가는 길이라면 내가 전문가지. 우리 같이 가면 되겠다. 나만 믿고 따라와. 반갑다. 난 풍이야."




<축 쇠똥구리 초등학교 입학식- 교장 훈화>


"자랑스러운 우리 숲의 미래가 될 쇠똥구리 친구들을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천적에게 먹히지 않고 무사히 초등학교에 입학하였으니 모두들 앞날개를 비비며 축하합시다. 지금까지 잘 꾸며진 흙 속에서 놀며 온화하게 보낸 애벌레 시절은 어때 즐거우셨나요. 이제부터 학생들은 딱딱한 갑옷을 가진 진정한 성충으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분의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를 것입니다. 설마 신성한 똥으로 장난치는 학생은 없겠지요.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은 날벌레로 낙오될지 모르니 잘 따라 배우도록 하세요."


흙바닥은 라면이라도 거뜬히 끓여낼 것 같은 열기를 뿜어댔다. 그곳에서 훈화를 받다 보니 애벌레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끈적한 액체가 눈앞을 흐렸다. 앞다리를 하나 들어 쓱 문질러 보니 진드기 녀석이 붙어있었다. 깜빡했다. 곤충에게는 눈물이 날리 없지...촉촉한 땅속에서 모난데 없이 부드러운 애벌레 친구들과 굼벵이 놀이를 하던 시절은 참 즐거웠다. 꿈틀대기도 하고 낄낄 웃을때면 배꼽에 주름이 잔뜩 잡혔던 나의 어린 시절이여...안녕.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자~ 지금부터 똥 고르기 수업을 먼저 시작하겠어요. 매일 아침 세상에는 참 많은 종류의 똥들이 땅으로 떨어집니다. 동물들이 먹는 먹이와 컨디션에 따라 배설물의 강도와 습도가 다 다릅니다. 더듬이로 촉각을 느껴보고 한 점 떼어내어 맛을 본 후 잘 버무려 반죽하면 됩니다. 참 쉽지요~?"


곤충생활의 에너지원 좋은 똥을 고르는 일은 선생님의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한 번은 하늘이가 따끈한 열기를 내뿜으며 떨어지고 있는 똥으로 전력질주를 하던 도중 말발굽에 밟혀 으깬 곤충 샐러드가 될 뻔했다. 뭐 영양면에서는 곤충이 들어있어 그리 나쁘지 않겠지만.... 결국 독단적으로 규칙을 어긴 벌로 선생님의 거대한 엉덩이에 깔리는 신세가 되었다. 철푸덕 눌려 바사삭한 곤충 칩이 될 뻔했다.


"자~ 이제 가장 중요한 똥 빚기를 배워볼 거예요. 어린 시절 먹고 자라온 똥의 크기와 모양을 떠올리며 한 번 만들어 보세요."


우리 집안의 빛나는 자랑거리. 드디어 내가 나설 차례가 되었나 보다. 말은 좀 안 들어도 창의력 하나는 뛰어나다는 말을 등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되자 친구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똥 속에서 허우적거리 시작했다. 안쪽부터 들어가 파내 오는 아이와 엉덩이를 쳐들고 뒷발로 똥을 굴리는 아이까지...방법은 달랐지만 모두들 똑같은 구슬 모양이었다.


'똑똑한 인간들처럼 나도 도구를 이용해보는 거야...'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기다란 막대기를 찾았다. 그걸로 조심스레 아기 엉덩이를 두드리듯 요리조리 똥을 다듬어주었다. 점차 주사위 모양으로 변해가고 있는 게 제법 멋스럽다. 이대로 차곡차곡 쌓으면 저장하기에도 편리할 것 같다. 부드럽고 긴 이 나무 막대기는 휘두를수록 달콤한 아이스크림 향이 폴폴~ 풍겨왔다.


" 우아~하늘아 이 막대기 냄새 끝내준다 달달한 게 가슴이 두근두근거려 너도 한 번 맡아봐!"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뜨헉~~~하...하늘아....'


하늘이는 똥떡을 빚고 있었다. 그것들은 궁중 떡방앗간에서 정성스레 빚어놓은 색색깔의 오색경단처럼 화려한 똥떡이었다. 쑥떡처럼 보이는 고운 송진가루를 입힌 녹색 똥떡, 노랗고 분홍색 꽃가루를 입힌 곱디 고운 똥떡들이 정갈하게 줄세워져 있었다. 어릴 적 할아버지께선 유유상종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문득 이렇게 멋진 풍이가 내 친구라는 생각에 어깨가 들썩일만큼 우쭐해졌다.


정체모를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던 선생님의 눈가가 미세하게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누구도 만들지 못했던 혁신적이고 새로운 작품을 보시곤 속으로 경탄하고 계신 것 같았다.


"요~~~ 놈들아!!! 신성한 똥을 가지고 지금 무슨 장난질을 치는 것이냐!! 이 똥은 장차 너희가 혼인 비행을 마친 후 아이들을 키우게 될 집이자 밥이니라. 지금 이런짓거리로 선생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냐!! 내일까지 똥 덩어리 백개를 얌전히 굴려 놓지 않으면...이 학교에서 영영 추방당하게 될 것이다. 가로 세로 맞춰진 규격대로 남들과 똑같은 똥을 굴리면서 반성하도록 해라! "



이글이글 타들어가다가 재가 되어버릴 듯한 햇빛을 견디며 바닥에서 쉴 새 없이 똥을 굴리고 또 굴렸다.


각자 고심해서 창의적인 모양의 똥을 빚었을 뿐인데 우리가 무엇을 잘못한 건지 모르겠다. 잘못을 모르니 더 억울했다.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내 두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아무도 모르게 소매로 닦아내어 본다...헉 이번엔 짝짓기 중인 진드기가 두 눈에 붙어있었다. 제길. 갑자기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우리들 개개인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걸까. 학생들의 자유와 사고를 빼앗아 어떻게 하면 수월하게 줄 세울것인자 고민만 하는 듯했다. 어느새 우리는 자로 재어 놓은 듯 똑같은 일꾼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비밀은 하나 더 있었다. 쇠똥구리 학교에서 똥은 미래가 약속한 부와 권력이었다.


"풍아.. 우리 엄마가 그랬어. 억울하지만 인생은 적당히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거라고. 지금 네가 얼마나 속상한지 알아. 그렇지만 우리 힘을 내서 다시 해보자. 집에서 우리만 바라보고 있을 부모님을 실망시킬 순 없잖아. 내가 똥 위에 올라타서 발로 구를 테니 뒤에서 발로 좀 밀어줘 영차~ 영차~ "




똥 속에서 시커먼 갑옷 두 마리가 밀고 당기고 구르고... 그야말로 한 바탕 똥 파티가 이뤄지고 있다.


지나가던 인간들이 그들을 발견하곤 신기한 듯 시선을 고정했다. "어머어머어머~얘들아 이리 좀 와서 봐바!" 웅성웅성 소리를 내던 커다랗고 까만 눈동자들이 모여 일제히 꿈뻑거린다.


"요즘은 곤충들도 투 잡 뛰나 봐. 장수하늘소랑 풍뎅이가 똥을 굴리고 있잖아."


'뭐... 뭐라고????'


고단한 노동이 계속되자 풍이의 여섯 개의 다리가 풀려 해바라기 꽃처럼 바닥에 뻗어있다. 풍이는 학교 입구에 심어진 바오밥 나무를 바라본다. 자세히 보니 나무에는 코딱지 만 한 팻말이 붙어있었다. 소리내어 읽어보았다.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너... 도... 밤.... 나.... 무......... 너도밤나무???? 우리 엄마가 알려준 바오밥나무가 아니라고?"


턱을 벌려 발음해 보는데 쉴 새 없이 입에서 똥 구린 맛이 났다.


저 멀리에서 엄마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고 있다.


"풍아~~~~ 장수풍뎅이 학교에 안 가고 남의 학교에서 뭐 하고 있는 거야???"


그 옆에 홀쭉한 아줌마가 한 분 더 서 계셨다.


"혹시 여기서 저희 장수하늘소 한 마리 못 보셨나요? 아름다운 송진과 꽃가루를 유난히 좋아하는 아이랍니다.. 대체 어디를 간 건지 모르겠네요.. 저기 똥 위에서 춤추고 있는 아이가 우리 하늘이 아닌가요.. 아이고 얘야~~!!"




<" 은유아~~ 어서 일어나! 이러다가 학교에 늦겠어~~얼른!">


얼마 전부터 초등학교에 입학한 은유는 체력이 부족한지 아침마다 늦잠 타령이다.


어제는 일찍 자라며 불끄고 방문까지 닫아주고 나갔건만...침대 밑에는 곤충 관찰 백과사전이 놔뒹굴고 있었다.


"나 원참 파브르 납셨네.. 어서 일어나지못해!!! 파브르님 이제 학교로 납시실 시간이십니다! "


은유는 잠잘 때면 습관처럼 하얀 이불을 돌돌 말고 잔다. 마치 한 마리의 귀여운 굼벵이처럼 말이다. 뽀얀 피부에 복숭아빛을 엷게 띠는 입술이 오물조물거린다. 꿈에서 맛있는 뽕잎이라도 먹고 있나 보다. 아무래도 5분만 더 재워줘야겠다.


'잘 자요, 우리 귀여운 굼벵이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