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탁.

그림자 나라 속 사람들.

by 지각쟁이

<오후 여섯 시 퇴근길 >


구불구불한 운하를 따라 물고기를 가득 실은 뱃사공도 커다란 노를 밀어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입니다.


하늘에선 뜨겁게 타오르던 주황색 빛이 빠르게 명멸하고 있습니다.


은유가 사는 아파트 복도에는 창문을 타고 넘어온 음식 냄새들로 화려한 잔치 분위기입니다. 현관문을 열면 아담한 거실 한가운데 4인용 원목식탁이 무게를 잡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저녁 준비로 분주합니다.


파프리카와 가지 달콤한 야채를 다져 넣어 맛의 균형을 맞춘 육즙 가득한 고기만두가 찜기 위에서 스팀 샤워 중입니다. 우려낸 육수에는 마늘과 감자 닭고기가 자박자박 끓고 있습니다. 시골 계신 어머니가 마당에 바싹 말려 빻은 고춧가루를 팍팍 넣으면 쾌락과 통증이 공존하는 얼얼한 닭볶음탕이 완성됩니다. 자작한 국물 한 수저를 떠서 밥 위에 슥슥 비벼먹으면 얼어붙은 상심과 피로들이 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신선한 재료로 잘 차려진 밥상은 마치 잘 꾸며진 정원 같습니다.


저녁 식사는 지친 가족들의 하루를 달래줄 보약이자 함께 즐기는 오락거리가 되었습니다.


[ illustrated by Kimi ]


은유네 엄마는 냉장고의 냉기를 머금은 마늘장아찌의 껍질을 벗기다가 티비 속 화면에 눈이 딱 마주쳤습니다.


국제구호단체에서 광고하는 세이브 더 칠드런 광고였습니다.


만두 하나를 덥석 베어 물던 은유 엄마는...평온한 집으로부터 멀리 동떨어진 세계가 현실 속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아늑하고 멀게만 느껴졌습니다. 너무 멀리 있는 그들의 세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자두 알 같은 만두를 목 구녕으로 힘겹게 밀어 넣었습니다.


"엄마, 저 친구들은 어딘가 아파 보여... 너무 배가고파서 학교에 못 가는 거야? "

화면 속 내 아이와 또래가 비슷한 아이의 눈동자는 달빛 한 점 없는 깊은 밤을 닮았습니다.

"어.. 은유야 잘 들어봐~자본이 지배하는 경제를 자본주의라고 해. 자본주의는 어두운 곳에 놓인 등잔불처럼 우리들이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그치만 그 등잔불 밑에는 숨겨진 그림자도 존재한단다."


"그림자라면 어둡고 컴컴하던데... 저 친구들은 그 그림자 나라 속에 살고 있어서 밤을 닮은 거야? "


은유 엄마는 고개를 돌려 검은 대륙의 아프리카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그림자 나라 이야기>


금융자산을 가진 소수 지배자들의 재산은 점점 거대한 몸집을 부풀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주인인양 군림하기도 하며 때로는 대통령들도 그들의 눈치를 봅니다.


거대한 자본을 쥔 다국적 기업은 자유주의를 등에 업고 끝없는 이익을 향해 뜨거운 광기를 내뿜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소비자들의 교체 리듬을 끊임없이 가속화 시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빠른 변화의 물결 속에는 고립되고 소외된 나라들도 있습니다.


자본은 소외된 나라의 천연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해 빠르게 부를 축적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따뜻하게 차려진 밥상을 바라보던 은유 엄마는 순간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구 반대편에는 전쟁. 질병. 기근으로부터 지친 아이들이 시간을 다투며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래의 아이들은 더 넓고 명료한 생각을 가진 세대로 길러내야겠구나...'


모래알 같은 밥 한 수저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던 엄마는 부모로서 가진 책임감을 다시 번 생각해 봅니다.


[ illustrated by Kimi ]

<그날 밤, 은유 엄마의 꿈속>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흙탕물이 튄 하얀 운동화를 내려다 보았다. 문득 끈이 엉켜있는 걸 발견했다.


잠시 달리기를 멈춘 뒤 엉킨 운동화의 끈을 풀고 다시 묶어 달리기 시작했다.


불붙은 화약의 심지가 점점 타들어가듯...나는 이곳에서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바쁘게 살아가는 중이다. 사실 바쁘다는 건 핑계이다. 꼬여버린 운동화 끈은 다시 묶으면 그만이지만...오랜 세월 꼬일 대로 꼬여 섬유화가 진행되어버린 암덩이를 품은 세상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하루 내 자식들을 살찌우느라. 어디에서 왔는지 모를 수저를 아이들의 입속에 부지런히 퍼다 나른다. 백골 같은 팔다리에 터질 듯이 밀고 나온 배를 한 누군가의 굶주린 아이의 입속에 들어갔어야 할 수저 인지도 모른다.


내 아이의 손에 쥐어 준 수저는 아마도...

누군가의 소외에 눈을 감은 대가인지도 모른다.


과녁을 잃어버린 총알처럼 쉼 없이 뛰다가 길을 헤매었다. 지도에도 없는 땅이 나타났다. 잠시 후 황량한 모래언덕이 육중하게 고개를 들었다. 자비 없이 내려쬐는 햇볕을 받으며 꾀죄죄한 모습의 비쩍마른 아이가 길을 걷고 있다.


손에는 빈 그릇을 수도 없이 파느라 반쯤 닳아버린 수저를 들고서 위태롭게 걷고 있다. 모래알은 햇빛을 반사하며 흩뿌려진 보석들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주변에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순식간에 소년의 머리 위로 까만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눈꺼풀을 찌푸려 자세히 들여다보니 온 세상의 수저를 수집하려는 검은 마법사의 까마귀 떼였다.


집단의 광기에 휘말린 수백만 마리의 까마귀들은 이제 겁이 없다.


더 이상 아이가 지쳐서 쓰러지길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날카롭게 날이 선 발톱과 부리로 아이의 눈알과 머리를 공격하며 약탈을 시작할 것이다.


아이에게 시간은 목숨이다.

더 이상 기다리게만 할 수 없다.


주머니 속에서 움켜쥔 라이터를 켠다.


하늘을 시커멓게 가려버린 까마귀들을 향해 횃불을 던질 차례이다. 조그맣게 마음속으로 외쳐본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버릴 수는 있지만 절대 봄의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


-파블로 네루다-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