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크리스마스.

산타할아버지의 비밀.

by 지각쟁이

<12월, 크리스마스트리 만들기.>


매서운 바람이 창문을 뒤흔드는 겨울밤.


은유네 거실 창 위로 눈이 내리듯 뽀얀 김이 서렸다. 한 켠에서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은유네 엄마는 해묵은 트리의 가지를 차례로 폈다. 눈송이 같은 먼지들이 허공에 흩날렸다.


아이는 반짝이는 방울 속에 비친 자신의 왜곡된 모습을 헤벌쭉 바라보았다. 장식용 선물상자 하나를 집어 나뭇가지에 걸었다. 문득 쪼매난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궁금해졌다. 엄마 몰래 하나를 손안에 쥐고 주머니에 넣었다.


'이따 방에 가서 몰래 풀어봐야지!' 아이는 시치미를 뚝 떼며 캐럴을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산타할아버지는 알고 계신데, 누가 착한 아인지 나쁜 아인지 잠잘 때나 일어날 때, 짜증 날 때 장난할 때도 산타할아버지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신데~워후~~ 워~~~"


그때였다. 눈알을 요리조리 굴리던 아이가 호기심을 머금은 입술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말이야~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진짜로 있어?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그랬는데... 산타할아버지가 없대!"



<어제의 유치원>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더해져 아이들은 한 층 더 복닥거리있었다.


"여러분, 오늘은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써볼 거예요. 칭찬받을만한 일들을 찾아서 적어보세요. 받고 싶은 선물도 함께 적는 것도 잊지 말아요. "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붉은빛 크리스마스 카드를 한 장씩 나누어 주셨다.


또래보다 늦된 은유는 산타할아버지에게 매년 편지를 써왔다. 일곱 살이 된 올해도 어김없이 반짝이 풀로 그림을 그리고 (비록 엉망진창 맞춤법이지만) 연필로 꼭꼭 눌러 글씨를 썼다.


'싼타할버지 올해도 잘 개셔써요? 저는 친구들이랑 잘지내고 이써요...그리고...'


그때였다. 반에서 몸집이 제일 큰 우석이가 은유의 옆구리를 쿡 쑤셨다. 커다란 몸집만큼이나 친구들에게 끼치는 영향력도 큰 친구였다. 활달한 성격 탓에 인기도 많았지만 막무가내로 자기주장을 밀어붙일 때면 아이들 모두 무서워하며 수긍했다.


"야~ 이은유 넌 몇 살인데 아직도 산타를 믿냐? 산타할아버지는 그거 순 개사기야! 안 그래~ 얘들아?"우석이는 한쪽 어깨를 뒤로 한 바퀴 크게 돌리며 으쓱한 말투로 내뱉었다.


"맞아. 나도 산타할아버지가 별루야. 누가 착한 아이인지 나쁜 아이인지 지켜만 보면 뭐해? 정작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지도 못할 거면서... 울 엄마가 그랬어. 요즘 아동 범죄도 늘어가고 사회가 흉흉해져서 무섭대. 점점 무언가에 화가 난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산타할아버지는 약한 어린이들한테만 맨날 착해지래. 똥 멍청이!" 새까만 일자 앞머리에 번쩍이는 안경을 쓴 민석이가 대꾸했다.


"아.. 아냐! 산타할아버지는 진짜로 살아계셔... 엄마랑 산타마을에도 가봤다고... 할아버지가 썰매 타고 이동하고 있는 모습도 컴퓨터로 볼 수 있어!! 크리스마스 밤이면 늘 엄마랑 지켜봤다고.." 물고기처럼 입술을 뻐끔거리던 은유의 마음속 자신감이 공기방울처럼 하나 둘 빠져나갔다.


"아, 솔직히 크리스마스의 희생양은 아이들이야! 번듯한 선물을 미끼로 어른들 마음대로 아이들을 조정하려는 거잖아. 너네 그거 알아? 나쁜 사람들조차도 정작 자기 자식은 착해야 된다고 믿는대. 왜 어른들은 화나 있는 모습이면서 아이들은 늘 밝고 착해야만 하는 거야?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게... 진짜 누굴 위해서 인지 너네 생각해봤어?"열성적인 엄마 밑에서 자란 영리하고 고집스러운 민석이가 덧붙였다.


"듣고 보니 맞네! 어른들은 항상 자기들 마음대로 혼내잖아. 그리고 마지막에는 꼭 잘못했다고 먼저 사과하래. 우린 아직 어리니까 사고도 치고 실패도 해보면서 성장하는 거라던데... 부모님들은 늘 주관적으로 판단하잖아. 산타할아버지도 결국은 부모님들의 갑질 아냐? 선물 받으려면 착한 척이라도 하라 이거지! " 우석이는 밀어놓았던 억울함이 밀려오는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야~너네 말조심해 못하는 말이 없네~ 그러다가 산타할아버지가 진짜 들으시면 어쩌려고 쉿!" 깐깐하지만 친구들 사이에서 정의롭기로 소문난 민지가 끼어들었다. 마치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날 밤 은유는 따뜻한 코코아를 홀짝이며 노란 스탠드 밑에서 산타할아버지에게 편지를 적었다.


'산타 할 버지... 우석이랑 민석이 말이 다 진짜일까요..? 그래도 전 할아버지를..... 응원할게요!'




<크리스마스이브>


무채색 아침 하늘에 조그만 눈송이가 흩날린다. 옷소매 사이로 시린 바람이 스며든다. 길가의 사람들은 옷깃을 목 끝까지 여미고 있었다. 엄마와 은유는 대형 쇼핑몰로 향하는 건널목에 서있었다.


그때였다. 주차장으로 차량들을 인도하던 사람과 마주친 은유의 두 눈동자가 작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서둘러 엄마의 팔뚝을 끌어당겼다.


"어.... 엄마!!!! 저기 산타다!!!! 산타할아버지가 왜 여기 있지???!!!!!!"


산타할아버지는 키다리 아저씨처럼 마른 체구에 키가 컸다. 붉은 곤봉을 절도 있게 휘두르며 박자에 맞춰 호루라기를 불기 시작했다. 차량들은 일제히 순진한 양 떼가 되어 주차장으로 진입했다. 보행자 안내 후 이어지는 엉덩이 씰룩씰룩~댄스까지.


은유는 엄마 손을 잡고 식자재를 사기 위해 마트에 왔다. 코끝을 스치는 고~소한 기름 냄새에 아이는 절로 시식코너로 끌려왔다.


'뜨헉~여기도 사.. 산타 할아버지...?'


산타할아버지는 두툼한 고기를 능숙하게 분해한 후 스테이크로 굽고 계셨다. 은유는 기름자국이 튄 산타할아버지의 커다란 배를 멍하니 올려보고 있었다.


"얼른들 와서 맛보세요~소고기는 역시 호주산이지요~~ 아가야 많이 먹으렴~산타할아버지가 크리스마스를 위해 특별히 멀리서부터 가져왔단다 " 집게와 가위를 든 산타할아버지의 손은 고깃기름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하... 할아버지 국적이 핀란드 아니셨어요? 호주산 소고기라니요...' 은유의 손에는 어느새 이쑤시개가 들려있었다. 받아 든 커다란 고기 한 점에서 붉은 핏방울이 뚝뚝 흘러내렸다.


은유는 지난번 유치원에서 친구들이 들려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야 이은유~산타 할아버지? 그거 개사기야~ ' 우석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왕왕 울려왔다.


이윽고 고개를 둘러보았다. 화장품 매장 앞의 산타가 바구니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샘플을 나누어주고 있었다. 서점에서 책을 읽어주는 산타할아버지까지... 많아도 너무 많았다.


무례한 아이들은 고무장갑처럼 꽉 끼는 산타할아버지의 빨간 쫄바지를 향해 똥침을 날렸다. 아이는 활시위처럼 위태롭게 매달린 흰 수염을 낚아채려다 실패했다. 고무줄은 힘 없이 끊어져버렸다. 두 개의 앞니 중 하나가 유난히 길던 산타할아버지는 수염을 쓸 수 없게 되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엄마... 여기 산타할아버지가 왜 이렇게 많아요? 크리스마스는 내일 이잖아요..." 무언가 억울한지 은유는 울먹이는 말투로 엄마에게 물었다.


"그, 그건 말이야... 은유야... 전 세계의 많은 아이들이 모두 너처럼 선물을 기다리잖니. 이제는 산타할아버지도 나이가 드셔서 혼자서 그 많은 일을 하시기에는 힘에 부치시단다. 그래서 도우미 산타를 보내셨나 보다.... 하... 하하하...;;;;" 궁핍한 거짓말이 탄로 날까 봐 겁먹은 엄마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은유는 산타할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겨울철 메마른 마룻바닥의 물기처럼 희미해져가고 있음을 느꼈다.


[ illustrated by Kimi ]


<크리스마스날 아침>


어제 내린 눈이 채 녹기도 전에 꽁꽁 얼어붙었다. 유리창은 눈에서 반사되는 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우석이네 집)

올 겨울. 우석이네 엄마는 남은 카드 한도와 포인트를 끌어모아 유행하는 북유럽풍 빅트리를 주문했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고... 아이의 마음을 살뜰히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이 마음속에 눌어붙기 시작했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크리스마스를 선물해줘야지!' 엄마 아빠의 빈자리를 친구들과 함께 채워 줄 검은색의 매끈한 상자도 준비했다.


그런데..!!!


크리스마스트리와 선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신형 플레이스테이션 콘솔과 번들팩이 있던 자리에 작은 눈사람 인형만이 덩그러니 놓였다.


선물을 확인하러 달려 나온 우석이가 잠이 덜 깬 채로 제 눈을 비비고 또 비볐다. 정신줄을 놓은 사람처럼 성큼성큼 걸어가 눈사람의 머리를 집어 들었다. 그 밑에는 지난여름 우석이가 서랍 속에 숨겨놓은 오줌 싼 팬티 여러 장이 숨죽이고 있었다.


살짝 열린 베란다 틈으로 찬바람이 솔솔 불어왔다. 새끼를 꼬을때 쓰는 억새풀들만창가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민석이네 집)

열성적인 엄마와 영리하지만 고집스러운 아이 민석이가 사는 집은 주인을 닮았다. 원목으로 짜인 거실 책장에서 은근한 나무향이 뿜어져 나왔다. 비워진 듯 채워진 공간에는 오전의 따뜻한 햇살이 내려앉았다. 주방 식탁 위에 열어 놓은 보온병에서 뿌연 김이 모락 피어올랐다. 라디오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흘러나왔다.


잠이 덜 깬 우석이가 실눈을 뜨고 엉거주춤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 엄마...... 해피 크리스마쓰!!! 이히히~"


12월이 되면 엄마는 늘 두툼하고 빨간 털실로 커다란 산타 양말을 다. 민석이는 식탁 옆에 걸어둔 양말을 응시하며 한 달을 착하게 보내야지 다짐했다.


오늘 아침 예상은 빗나갔다. 엄마의 빨간 산타 양말을 배불릴 선물이 증발해버렸다. 양말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심지어 엄마와 뒷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로 만든 벽 트리 조차도 말이다.


그때였다. 동물원에서 뒤돌아 앉아있는 어미 고릴라를 닮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콧구멍에서 뜨거운 김을 뿜어대며 솟아오르는 화를 억누르고 있는 한 여인이었다. 엄마의 어깨는 빠르게 위아래로 들썩이며 널뛰고 있었다.


"너~~~ 이 녀석 김민석!!! 지금껏 엄마를 잘도 속여왔겠다!!!" 벽 트리를 담당하던 길고 튼실한 나뭇가지는 어미 고릴라의 손에 쥐어져 휘둘리고 있었다. 고릴라의 다른 손에는 눈에 익은 종이 여러 장이 휘날리고 있었다.


'저... 저건 분명 몰래 숨겨 놓은 영어학원 테스트 결과지와 필수 예방주사 5종 안내문... 지난여름방학 숙제 목록...?!' 민석이의 두 뺨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낯 뜨거운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회초리를 들고 달려드는 어미 고릴라를 피해 도망치던 민석이가 억울함에 울먹였다.


"아니.. 나 진짜 착하게 지냈다고...... 정말 노력했다고 엄마.....!!! 산타할아버지가 영어공부 열심히 하라고는 안 했잖아!!! 그리고 나 주사맞기 진짜 싫어 악~악~~~ 사람 살려주세요!"


평소 민석이는 아끼는 장난감들을 고르고 골라 양철 틴케이스에 보관했다. 보물상자 속에는 엄마한테 들키고 싶지 않은 종이들도 꼬깃꼬깃 숨겨놓았다. 이제 속이 텅~빈 틴케이스 안에는 뻣뻣한 지푸라기 한두 점만이 놓여있을 뿐이었다.





<산타클로스의 사정>


해님도 추운지 겨울이 되면 퇴근을 서두릅니다.


컴컴한 밤하늘의 달빛이 흰 눈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겨울밤입니다.


아이들이 사는 집 문 앞에 걸어 놓은 양말이 찬 바람을 타고 날아오를 듯 휘날립니다.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거리를 홀로 서성이는 한 노파가 보입니다.


비쩍 마른 팔다리만큼이나 발걸음에서 어떤 무게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세월을 정면으로 맞선 노파의 얼굴은 화난 듯 굳어진 이마의 주름살로 험악해 보입니다.


요즘은 동네에서 지붕과 굴뚝을 찾아보기 힘이 듭니다. 노파는 환기를 위해 살짝 열어놓은 샷시를 슬쩍 밀어 잠입합니다. 한 참이 지나자 노파의 얇은 두 다리가 사뿐사뿐 걸어 나옵니다. 누군가의 집에서 몰래 훔쳐온 물건들로 망태기가 한 껏 늘어져있습니다.


이내 또 다른 누군가의 집을 뒤적거립니다. 망태기는 더 이상 물건을 담을 수 없이 늘어나 있습니다. 노파는 두 손가락으로 마른 입술을 매만지며 고민에 빠지더니 잠시 후... 덜 소중해 보이는 물건을 커다란 양말 주머니에 가차 없이 버립니다.


할아버지의 망태기는 또 다른 물건으로 채워지고 다음 집으로 향합니다.


'나는야~~ 망태기 할아버지~~ 망태기 할아버지 너무 무서워~~ 나쁜 아이들에게서 가장 소중한 선물만을 빼앗아 가지~ 악질 어린이를 벌주는 망태기 할아버지~예의 없는 것들 무례한 녀석들은 괴롭히는 나는 망태기 할아버지.... 호호 호~~ 호호호!'


내리막을 지나던 할아버지는 희열에 찬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두 개의 앞니 중 유난히 긴 이빨이 모습을 드러내며 씨익~ 미소 지었다. 흥이 오른 할아버지는 흐느적 몸을 흔들어댔다. 힘차게 발구르다가도 조심스레 뒤꿈치를 들며 춤을 췄다.


그때였다. 갈지자 걸음으로 을 헤매던 취객의 눈에 노파가 들어왔다.


"헤헤헤 어르신~ 한 겨울에 빨간 내복만 입고 다니다간 얼어 죽어요~자기가 산타할아버지인 줄 아나... 약주 한잔 하셨으면 곱게 들어가 주무세요." 망태기 할아버지를 발견한 남성은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아니 나이 잡수셨으면 점잖게 행동을 하셔야지.... 우리 좀 곱게 늙읍시다.... 노인네가 노망 났나?"


빨간 내복을 입은 망태기 할아버지는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의 눈빛은 어둠 속에서 음흉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검은 눈동자는 깊숙한 낭떠러지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제 할 말만 남기고 황급히 떠나는 남성의 뒷모습을 향해 소금을 뿌리듯 오므린 손가락 끝을 털며 중얼중얼거렸다.


"으헉.... 어... 어어..... 으악!"잠시 후 남성의 발이 허공에서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길가에 숨어있던 블랙아이스의 표면이 꽃망울을 피우며 자라났다. 빙판을 짓밟은 남성은 허공 위로 부웅 떠올랐다. 얼음 위로 엉덩이 한 짝이 떨어졌다.


'빠... 빠지직....'


소름 끼치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남성의 두 눈이 불투명하게 얼어붙었다. 언덕 위에 서 있던 눈사람이 쓰러지며 두 개의 눈덩이가 빠르게 굴러내려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몸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뿌연 안개가 낮게 깔린 하늘에 남성의 외마디 비명이 짧고 강렬하게 사라졌다.


"자~그럼 이제 어디로 가볼까. 다음 집은 오호라~ 우석이와 민석이 조금만 기다려요. 이 할애비가 꼭 빼먹지 않고 방문할 테니 호호~"


할아버지는 시뻘건 내복과 망태기의 먼지를 폴폴 털며 기품 있고 우아한 걸음걸이로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한낮의 아이들이 만든 눈사람은 할아버지가 지나가자 더욱 꽁꽁 얼어붙어갔다. 까만 단추로 만든 두 눈은 텅 빈 채 사라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길 위의 하수구 뚜껑 위로 껌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이었다.

[ illustrated by Kimi ]


<크리스마스 날 아침 은유네 집>


커다란 트리 앞에 다리를 벌리고 앉아 선물을 풀어보던 은유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어.. 엄마~~~ 아빠! 이것 좀 보세요! 플레이스테이션 최신형? 최신형 게임기잖아! 끼약~~ 정말 신난다!!"


갑자기 불러대는 은유의 다급한 목소리는 함께 자고 있던 엄마아빠의 방문을 찢고 들어왔다. 비몽사몽 앞다투어 뛰어나온 부모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는 갑자기 이를 악 물고 아빠를 째려보며 등짝을 때렸다.


'애를 오냐오냐해줘도 유분수지.. 아니 당신은 이 많은 돈을 다 어디서 나서 게임기를 산 거야?'라는 의문의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이유도 모른 채 등짝을 맞은 아빠도 도저히 모르겠다는 듯 두 손바닥을 치켜들고 어깨를 으쓱였다.


트리에는 붉은 털실로 짠 커다란 산타 양말이 걸려있었다. 그 속에는 과자와 사탕 구하기 어려운 희귀템 대왕딱지가 들어있었다.


'역시 산타할아버지 쵝오~~!!친구들이 뭐라 하든 내년에도 멋지게 지내는 은유가 될 거예요~~ 잘 부탁합니다!! 얏호!' 두 눈을 질끈 감은 은유는 오금이 저릴듯한 행복감에 탄성이 터져 나오려는 걸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날 아침이었다.


전국은 때아닌 크리스마스 좀도둑 출현으로 뉴스가 떠들썩하게 보도되고 있었다.


"연말에 집단속 철저히 하셔야겠습니다. 아이들의 꿈과 희망인 크리스마스 선물만을 골라 털어가는 괴상한 도둑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저희가 집중 취재해 보았습니다. 김민정 기자?"


"네 김민정 기자입니다. 범인은 범행 현장에 마른 풀을 흘리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건초를 제조하는 공장들에게 비교분석 의뢰를 맡겼는데요...미스터리하게도 사라진 지 오래된 희귀 풀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범인의 정체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가고있습니다. 어젯밤 또한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진 한 남성이 구조대에 실려왔습니다. 남성의 주장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길에서 산타 복장을 한 괴한이 흑마술을 부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요...연말 연시에 술 좀 얌전히 드셔야 겠습니다."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