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월 퀴즈방.

유치원생과 치매할머니의 퀴즈대결.

by 지각쟁이

<초월 퀴즈방>


자 지금부터 전화 연결된 두 명의 친구와 퀴즈를 시작합니다. 오늘의 상품은 로봇청소기와 김치냉장고 입니다.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문제는 몸풀기로 쉬운 것부터 가볼까요?


Q. 이것은 종이 재질로 만들어졌습니다. 밑을 닦거나 코를 풀거나 허드레로 쓰는 이 얇은 종이는 무엇일까요? 아~갑자기 배가 싸하게 아파오는 기분이 듭니다.


은유: 휴...휴지?아..아니.....물티슈?


복순: 아고~ 이를 우짠댜. 미친년 머리채를 휘어잡듯이 얇은 낱장 달력을 부욱 찢어. 발가락에 신발을 꾀고 달려가야제. 쭈그려 앉아서 힘주는 동안 두 손은 놀리지 말어. 필사적으로 종이를 구겨야혀. 우리집 지붕 밑에는 식구들이 포도송이처럼 줄줄이 달려있었제. 화장실이 북적이는 날이면 달력이 먼저 미래로 가있기도 하고 그랬어. 타임머신인가 했어. 해도 안 뜬 컴컴한 새벽에 당번인 줄 알고 땀방울 맺히게 핵교로 달려 나갔어. 글씨 그 날이 아닌 거야. 옘병~.



Q. 다... 음 문제입니다. 자~ 이것은 알록달록한 그림과 글씨가 인쇄된 작은 종이카드입니다. 요즘 어린이들 사이에서 이것을 수집하는게 유행이 되었는데요.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은유: 아! 저 알아요! 포켓몬 카드!!!!!


복순: 아고 말도 마. 삐라제? 동네 애들마다 고놈 주으러 다닌다고 난리도 아니야. 학교랑 파출소에 갖다 주면 빵이랑 음료수로 바꿔준다는구먼. 터질 듯이 빵빵한 두 볼에 유난히 욕심이 많던 앞집 귀남이 녀석. 한~ 봇다리를 모아서 의기양양하게 파출소에 갖다주더라고. 먹을 걸로 주는 줄 알았더니 글쎄 연필이랑 공책으로 바꿔준 모양이지. 먹지도 못하는걸 뭣에다 쓰냐고 악을 쓰며 연필을 흙바닥에 패대기쳤어. 먼지 나게 밟아대는 꼴을 봤어야 하는데. 흐미~.


Q. 때마침 출출한 시간이 되었는데요. 이번에는 간식 문제 나갑니다. 이것은 동그란 모양으로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입니다. 입안에 넣으면 살살 녹아내려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이 간식은 무엇일까요?


은유: 마카롱!...뚱카롱? 우리 엄마가 맘스마켓에서 자주 사 오세요... 헤헤 맞죠?


복순: 삶은 계란이쥐~! 고거이 얼매나 슬픈 기억인지 몰러. 우리집에선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지. 어무이가 장에 가시면 계란 한 줄을 짚 꾸러미에 고이 담아서 사 오셨어. 그 날이면 올매나 가슴이 쿵쾅대던지 몰러. 고것이 꼭 강보에 쌓인 아기 같기도 하고 완두 콩깍지도 닮았단 말이지.


소풍날이었지라... 친구들과 나눠먹기에 아까운겨. 글서 가방 안에 있는 삶은 달걀을 꽁꽁 숨긴 거야. 온종일 깨질까 봐 신경이 곤두서서 제대로 놀지도 못했어. 집에 돌아와서 혼자 몰래 먹으려고 꺼냈는데 아 글씨... 가방 안이 많이 더웠나 봐. 달걀한테서 울 아부지처럼 시금털털한 땀냄새가 나더라구. 맛을 보니 폭산 쉰 거야... 속상한 마음을 느낄 새도 없었제. “아이고 그걸 여직 안 먹고 들고 오면 우짜냐 이 화상아~~”그걸 알아챈 구신 같은 엄마가 싸리빗자루를 쥐고 달려오는 통에... 맨발로 대문 밖으로 달아나는데 눈물이 쏙 들어가더라고. 난 지금도 그 동그란 삶은 달걀을 손에 꼭 쥐면 슬퍼. 힘이 장사같던 울 엄니가 자꾸 생각이 나. 해가 갈수록 기억 속 엄니의 눈. 코. 입이 점점 동그란 달걀처럼 희미해져...


Q. 다.. 음은 과학 문제입니다. 우주의 무질서는 놔두면 계속 증가한다고 합니다. 어떠한 상태를 공들이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저절로 삐딱하고 무질서해진다는 이론인데요. 이것은 무슨 법칙일까요?


은유: 블랙홀 법칙....?! 엄마는 제 책상을 보면서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블랙홀 같다고 그랬어요. 전 대체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밤마다 머리카락 헝크러뜨리기 요정과 책상 엉망진창 만들기 요원들이 출동해서 비밀 작전을 수행하나 봐요. 신기한 건 저는 절대 안 그랬다는 거예요.


복순: 가만히 놔두면....지랄도 풍년이다!!!!!??



Q. 네 아쉽게도 두 분 다 틀렸습니다. 정답은 엔트로피의 법칙이죠. 이... 이번에는 분위기를 바꿔 패션 문제로 나갑니다. 땀을 뻘뻘 흘릴 정도의 뜨거운 열기로 머리카락에 물리적 변형을 주는 이 시술의 이름 무엇일까요?


은유: 매직이요! 매직! 한 여름 머리카락 사이로 땀이 삐질빼질 흘러내리는 계절이 오면 엄마가 미용실에서 곱슬머리를 펴주셨거든요. 비가오는 날이면 곱슬머리의 고집도 억세져요. 친구들이 자꾸 못난이 인형 같다고 놀려서 도끼눈을 뜨게 돼요.. 울 엄마가 그랬어요. 예뻐지려면 참아내야 하느니라. 매직은 더위와 엉덩이와의 싸움이에요.


복순: 고거이 바로 빠마~지. 뙤약볕에 아지랑이 피는 여름 날이이었제. 아카시아 나무 그늘 아래로 너도 나도 모여서 더위를 피했어. 온종일 나무 아래 앉아가꼬 아카시아 꿀도 따먹고 잎사귀를 뜯어낸 굵은 대에 머리카락을 돌돌 감아 빠마도 했제. 곱실곱실하니 부잣집 딸내미가 된 것만 같았어.


그 후로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났지. 하루는 내 딸아이가 가스레인지 불에 젓가락을 데워 빠마를 하더라고? 아 고거이.. 젓가락 고데기라나...밥 먹는 젓가락을 뭣하는 짓거리냐고 등짝을 후려치며 내쫓았지만...내를 쏙 빼닮은걸 생각하니 웃음이 피식피식 새어 나오더라고.


[ illustrated by Kimi ]


Q. 마지막 문제입니다. 전국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색 앙케이트 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요즘 아이들 사이에서 가장 무서운 것으로 이것이 1위에 꼽혔다고 합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은유: 저 알아요! 신비 아파트!! 온갖 귀신들과 괴물들이 득시글한 아파트에요...전 아직 무서워서 한 편도 못 봤어요. 그런데 저희 엄마가 그랬어요. 요즘은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대요. 사람들 입속에 숨겨진 혀는 날카로운 칼날이래요. 저한테 조심해서 쓰라고 하셨어요. 엄마는 그 칼날에 베인 자국이 아직도 바람이 불면 쓰라린다고 하셨어요. 언제부터인지 엄마가 외출할 때면 어두운 색 옷을 걸쳐 입어요. 안 쓰던 모자도 푹 눌러쓰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면 눈으로 자꾸만 땅바닥을 읽어요...누가 보면 우리 엄마가 으스스한 저승사자인 줄 알겠어요. 신비 아파트가 혹시 우리 아파트 이야기는 아니겠지요...?


복순: 울 언니는 시커먼 밤에 뜨는 별이 그리 시립고 무섭다고 그랐제...방직공장으로 일하러 멀리 떠났거든. 어무이는 단속반을 피해 행상하며 늘 밖을 나도셨지. 나 혼자서 집에 있는 줄줄이 사탕같은 동생들을 돌봤어. 천진난만한 얼굴로 떼를 쓰는 아그들을 돌보는 하루하루가 참 지긋지긋했지... 그때 문득 언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봐 무서운거야... 도시에서 정장 빼입고 뮤직 싸롱을 드나들며 아이스케-키를 사먹는 언니를 찾아가서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상상을 하곤 했지.


이 집구석을 혼자서 탈출한 것 같아서 괘씸했거든. 근디 말여...어느날 잠시 쉬러 고향집에 온 언니의 손목이 참 앙상했제. 언니는 새벽녘 별을 보며 출근하고 밤에 걸린 달을보며 퇴근한다고 그랬어. 밀가루처럼 흰 손에는 분홍빛으로 부어오른 바늘자국과 불에 그을린 흔적만이 선명했제...그걸 보니 시커먼 밤의 어둠이 울 언니 젊음을 덥썩 물어가 버릴까 봐. 호랑이보다 더 시리고 무서웠더랬어...울 언니는 그 긴 세월을 묵묵히 재봉틀 앞에 앉아 이 악물고 버텨내는 중이었어...울 언니 그땐 참 고왔는데...




<이른 아침.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깨어난 은유.>


“엄마! 오늘~ 나 이상한 꿈을 꿨어. 어린이 퀴즈대회라고 그래서 나갔는데 문제들이 너무 쉬웠어. 헌데 이상한게 있더라. 상대방 아이가 하는 말이 도대체 무슨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햇살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눈이 부셔 한쪽 눈만 가늘게 뜬 은유는 제 꿈이 신기한 듯 입 꼬리에 웃음기를 띄었다.


“오잉?!! 이건 또 뭐야~ 못 보던 장난감인데?”


은유의 시선은 식탁 위에 놓인 오래된 뽀로로 장난감에 붙박였다. 증조할머니가 손주들을 주려고 장롱 속에 하나 둘 쌓아 놓고 오랜 세월 잊어버린 장난감을 받아왔다. 유행이 한참 지난 뽀로로 장난감은 세월의 빛바램도 없이 새것처럼 반질반질하고 작동도 잘되었다.


평생 자식들 뒤만 바지런히 쫒으며 잘 키워낸 김복순씨.


2년 전 치매 증상 발현으로 노인전문 요양기관으로 모셔졌다.


그녀의 부지런한 성품은 어느날 자신의 머릿속도 깔끔히 지워나가기 시작했다.


손주들의 이름을 줄줄이 꾀던 복순은 이제 은유를 잊었다.


제 딸도 잊고... 어느새 제 자신도 잊어버렸다.

삶의 마지막에 서서 차곡차곡 쌓아 온 기억들을 참 바지런히도 닦아내고 있었다.


그녀의 집에 걸린 미래로 향하는 낱장 달력처럼...

그리운 어린시절로 달음박질치고 있는지도 ...


복순은 이제 은유를 잊었다.




(오늘은 10월 2일 노인의 날입니다. 쪽진머리에 곰방대를 물고 대문 어귀에 쭈그려 앉아 늘 어딘가를 바라보던 나의 할머니. 증조할머니 생각이 절실해지는 하루이네요. 지난번 좀도둑 아빠 편이 많은 독자 분들께서 방문해주신덕에 브런치 인기글에 올랐습니다. 보내주신 관심과 사랑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