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도둑 아빠.

요즘 아빠가 수상하다.

by 지각쟁이


우리 아빠가 조금 수상하다.


눈만 뜨면 침대에서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가던 아빠였는데.


친구들도 안 만나고 집에 있는 날들이 많아졌다.


가끔은 영혼이 빠져나간 껍데기만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다. 마음속으로 못 박은 점 하나를 멍~하니 바라볼 뿐. 충격으로 휩싸인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병사처럼 반응이 없다. 혹시 회사에서 잘리기라도 한 걸까. 우리 아빠가 백수가 된다니... 덜컥 겁이 난다.

아빠의 출근 가방엔 늘 껌이나 사탕이 들어있었다.


갈수록 멀미가 점점 심해진다나...치사하기는 몰래 숨겨놓고 혼자만 까먹으려는 속셈이다.


아이에게 굳이 거짓말까지 하다니.


나는 먹이를 사냥하는 개미핥기처럼 긴 팔을 가방 깊숙이 쑥~ 밀어 넣었다. 손가락 끝에 눈이 달린 괴물처럼 캄캄한 가방 속을 휘젓다가... 가느다란 용수철이 달린 수첩 하나를 건져 올렸다. 오늘도 호기심 레이더에 불이 들어왔다.

아빠의 숨겨둔 일기장이었다.

[ 정신을 차려보니 건조한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있었다. 입가는 덜 마른침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손을 들어 얼굴을 닦으려는데 묵직한 쇳소리를 들었다. 철컹.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가죽으로 된 포승줄은 움직일수록 가슴을 점점 압박해왔다. 관처럼 작고 답답한 독방 속에 나 혼자였다. 통제할 수 없는 두려움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꿈이었다...]



아빠의 밤 외출이 부쩍 잦아졌다. 낮엔 주로 혼자 집에 있는다. 팔 굽혀 펴기나 윗몸일으켜기 같은 근력운동을 한다. 수상한 물건들도 사들이기 시작했다. 검은 봉지 한 묶음. 커다란 마스크 한 박스. 신체 보호장비. 신경가스를 마구 내뿜을 것 같은 수상한 스프레이. 10개들이 한 묶음.

얼마 전 아빠가 외출하고 돌아왔을 때였다. 팔꿈치와 무릎에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잘 익은 석류처럼 빨갛게 열린 상처 사이로 진물이 맺혔다. 그 후 일기장에 한 장이 더 추가되었다.

[ 내일은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

요즘 우리 동네에 좀도둑이 늘었다고 한다.

“에... 마지막으로 한 밤중에 창문과 문단속 철저히 하셔서 각 세대마다 피해가 없으시길 바랍니다.” 경비아저씨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설마...아빠의 일기장이...?


최초의 범죄 기억을 기록한 범죄일기...??!

[ illustrated by Kimi ]


연극이 끝나고 무대 위에 까만 장막이 내려오듯. 시커먼 먹구름을 붙들고 나타난 석양이 오늘 하루도 저 멀리 끌고 가 버렸다. 그리고 내일이 왔다. 나는 아빠와 오래간만에 외출을 했다. 우리는 어두운 긴 터널을 지나가는 지하철 안에서 위태롭게 서있었다.

빽빽하게 가득 찬 연필꽂이에 마지막 연필 한 자루를 쑤셔 넣듯... 만원 지하철은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묵묵히 다 받아냈다.


아빠에게 그야말로 한 건 올리기 좋은 장소였다.


짧은 다리에 오동통 살이 오른 어린이가 한 남자의 손을 붙잡고 서있다. 선량한 중년 남자. 사람들은 이 남자와 절도행각 사이에서 아무런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리라. 치이~ 순진하시기는.

[세상 밖으로 다시 나오니 좋다. 이 날을 기다려왔다... 오늘은 왠지 일이 잘 풀릴 것 같은데...]


순간 아빠의 머릿속 일기장에서 빠르게 한 줄이 쓰여지고 있었다. 또각... 또각...

그때였다. 우리의 앞을 등지고 서있는 젊은 청년은 오늘의 먹잇감이 되었다. 넓은 어깨만큼 큼지막한 백팩이 불룩 튀어나와있었다. 출근길 지하철 속 누군가의 머리를 강타한 공격 무기로 활약했을지도 모르겠다. 햇빛과 세월에 닳아 부드러워진 가방의 지퍼가 입술을 헤벌쭉 벌리며 열려있었다.


‘날 잡아드쇼~’

아빠의 몸짓이 부자연스럽게 과장되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걸까... 오늘 밤 뉴스의 사건사고 현장에서 모자이크로 뒤덮인 아빠의 얼굴을 만나게 되는 건 아닐까 순간 두려워졌다.


“속보입니다! 공공장소에서 뻔뻔하게 물건을 훔친 범인이 장물을 팔아넘기려는 순간 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놀랍게도 어린아이를 범행에 이용했다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함께 보시죠 ”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지하철 연결통로의 문이 열리고 제복을 입은 경찰관 한 명이 들어섰다. 물고기의 그림자를 쫓는 황새처럼 위압적인 눈빛으로 사람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아빠는 얼굴을 돌리지 않고도 직감적으로 그의 존재를 알아차린 것 같았다. 갑자기 커다란 공포감이 아빠를 통째로 꿀꺽 집어삼키기 시작했나 보다.


몸의 경고가 시작된 것이었다.


아빠의 얼굴은 안에서 백열전구를 켠 듯 푸르스름해졌다.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고 나온 식은땀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치 땀방울 스키장이 개장한 것 같았다. 넓어진 콧구멍은 대량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안쓰러울 만큼 소심한 아빠는 결국 나의 어깨를 부여잡고 다음 역에서 용수철처럼 튕겨져 나갔다.


아빠의 바지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액체로 축축이 젖어있었다. 실패였다...



아빠의 좀도둑 생활은 아빠를 변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좋아하는 마트의 시식코너도 일상에서 사라졌다. 카트를 타는 나의 기쁨도 함께 날아가버렸다. 더 이상 마트나 백화점에 가지 않는다.


아마도 얼굴을 들키는 게 두려운가 보다. 우리 아빠다운 투철한 직업정신이다. 아빠는 언제나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최고가 되려 했다. 어딜 가든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슈퍼맨 같은 아빠였다... 좀도둑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빠의 달력에서 여러 번 덧칠한 빨간 동그라미를 발견했다. 문득 어제 유치원에서 읽은 동화책이 떠올랐다. 바늘을 훔치며 낯선 희열을 맛 본 좀도둑은 마지막 페이지에서 소도둑이 되어있었다.


아빠는 드디어 소를 훔치기로 결심했나 보다.

[ 13일 금요일. 5시 은행털이. ]



우리는 은행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 서있었다. 고층으로 빠르게 올라갈수록 귀가 먹먹하고 어지러웠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아빠를 노려봤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밀고 탈수록 아빠의 동공이 파르르 흔들렸으나 점점 대범 해지는 것 같았다. 아빠답게 도둑일도 열심히 잘하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걸까...

어라. 뭔가 좀 이상하다.


은행으로 들어간 아빠는 돈을 인출해서 흰 봉투에 두둑이 담고 있었다. 무장한 청원경찰들은 왕궁을 지키는 수문장처럼 근엄하게 서있었다. 아빠의 태도는 너무도 순종적이고 나긋나긋했다. 삼엄한 경비로 인해 계획이 틀어졌나 보다.


나는 빠르게 아빠 차의 뒷좌석에 옮겨졌다.


다음 범행 장소를 물색하며 한 참을 달리는 차 안에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골 할아버지 댁에 도착했다.>

“어서 오게 이서방~ 이거 좀 들게나~ ”

할아버지는 자기 키가 훌쩍 넘는 장대기를 손에 쥔 채 반갑게 인사하며 걸어오고 있었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뒷주머니에 흰 봉투를 찔러 넣고 있었다. 차 안에서 잠드는 동안 순간이동을 한 것만 같았다.


쏟아내는 수다만큼이나 웃음도 많은 이모들이 먼저 와 있었다. 커다란 솥에서 막 건져진 옥수수를 하나 내밀었다. 옥수수는 솥안에서 품고 있던 뜨거운 열기를 성난 용처럼 내뿜고 있었다...

오늘은 할아버지 뒷 산에서 다 같이 은행을 터는 날이었다.

‘으악.... 뭐야... 이..... 은행을 턴다고.........?’

아빠가 기다란 장대기를 휘둘러 나무의 머리를 내려칠 때마다 노란 황금 금화 같은 은행들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나무의 이름이 은행나무인지 알 것 같았다.


아빠는 뜨거운 땀방울을 흘리며 깊은숨을 몰아쉬더니 은행들을 내리 치고 또 내려쳤다. 아빠는 그 후로 오래도록 말이 없이 은행을 털었다.


마음속에서 억누르고 무시해왔던 응축된 감정이 폭발이라도 하는 걸까. 장대를 잡은 두 손에 점점 더 강한 힘이 실어졌다. 아빠에게는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은유 아빠의 공황 일기>


오늘 드디어 마지막 공황 일기를 적는다.


그동안 원인 모를 두려움이 나를 세상으로부터 점점 거두어갔다. 공포의 뿌리는 점점 깊숙이 내려 나의 가슴을 압박하듯 조여왔다.


산채로 관에 갇혀 땅속에 묻힌 것 같은 날이 오면 길에서 기절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점점 변해가는 아빠를 바라보는 은유의 눈빛에서는 불안감이 읽혀졌다. 밤 산책에서 돌아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굳은 다짐을 하고도 늘 실패를 반복했다.


얼굴 없는 적과 사투를 버린 지 육 개월이 지났고... 이제는 과호흡을 막아주는 비닐봉지와 산소캔 없이도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곧 장기 휴직을 끝내고 회사로 돌아간다.


매일 적은 공황 일기 덕분에 내 마음속의 아이를 알아가게 되었다. 정체 모를 두려움도 조금씩 반복되는 양상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점자 공황에 맞설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마음속 징징대는 아이의 소리를 무시한 채 앞만 보며 달려왔던 나에게 신이 벌을 내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저 친구 잠시 브레이크를 걸어주자...'


에게 저항하던 인간들에게 끔찍한 소리로 공포(panic)를 심어준 반인반수 판(PAN)의 저주 같은 것 말이다.

출근 전날 은유가 서툰 편지 한 장을 내밀었다.

나는 다시 회사로 간다.

“아빠 그동안 많이 아팠던 거예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빠가 무시무시한 새 직업을 구한 줄 알고 걱정했어요. 지금의 밝고 정직한 아빠로 돌아와 줘서 너무 좋아요.


아빠가 언제든 힘이 들 때면 나한테 귓속말로 말해요. 내가 무시무시한 괴물들로부터 아빠를 구해내주는 슈퍼맨이 되어줄게요!


이제 나도 다 컸다구요! 아뵤~


아빠...다시는 혼자서 아프지 말아요...사랑해요!”




글. 지각쟁이.

그림 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