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렇게 깜깜한 밤에 야시장이 선다고? 진짜 도깨비를 만나면 어떻게 해? 우리 집에 다시 돌아가자~”
그날 밤은 온 세상이 정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시커먼 밤은 묵직하게 가라앉아 하늘의 경계를 묵묵히 지워냈다. 고개를 들자 달도 별도 없이 온통 새까만 밤하늘이 펼쳐졌다. 손을 뻗으면 까만 밤을 만져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늘이 고요함을 더해갈수록 시장은 점점 더 활기를 찾아갔다. 상점마다 걸어 놓은 크리스마스 전구와 간판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사람들의 설렌 얼굴을 발그레 비추고 있었다. 연인들은 속삭이듯 사랑을 키워가고 아이들은 낯선 밤이 허락된 공간에서 들개처럼 뛰어다녔다.
한 푸드트럭에서 로마 제국의 병사처럼 보이는 우람한 팔뚝의 아저씨가 토치로 불쇼를 하며 고기와 싸우고 있었다. 승리의 맛을 보기 위해선 길게 줄을 선 배고픔을 먼저 이겨내야 할 것 같았다.
시장이 이끌어주는 대로 좀 더 따라가 보았다. 우주 밖을 부지런히 도는 행성을 갓 따온 듯 영롱한 빛깔의 유리구슬 반지와 목걸이를 파는 수공예점이 나타났다. 도깨비가 나올 것 같다며 호들갑을 떨던 은유. 아이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은 건 목에 유리 방울이 달린 고양이 열쇠고리였다. 계산을 마치자.
유치원 가방에 매달고 갈 거라며 기대에 부푼 은유는 어느새 도깨비를 잊은 듯 보였다.
[ illustrated by Kimi ]
<다음날>
“은유야 양치했니~~? 오늘 체험학습 가는 날이라 선생님이 늦지 않게 보내달라고 당부하셨어. 오늘도 지각하면 엄마가 선생님 뵐 면목이 없어져. 제발 좀 서둘러서 하고 나와~~봐!!”
“엄마 나 지금 양치하려고 치약 짜고 있었던 중인 거 안 보여? 오늘 아침은 왜 이렇게 잔소리야. 이럴 땐 꼭 혹부리 영감님 같아. 혹에서 노래가 아니고 잔소리가 술술~ 나오는 영감님 말이야. 도깨비는 울 엄마 혹 좀 안 떼어가고 뭐하나.”
“아이고~네~~ 이~~~~ 녀석~~”
그때였다. 핸드폰이 다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바로 받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서늘하게 스쳐 지나갔다. 바쁜 아침시간에 울려대는 핸드폰의 예감은 늘 수상하다.
(통화 후)
“은유야 오늘 유치원은 못 가겠다...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시대.. 우리라도 얼른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아.”
불길한 전화벨 소리를 무당처럼 찰떡같이 맞춘 촉이 스스로도 신기하지만 체험학습에 가지 못해 입이 구둣주걱처럼 나온 은유를 달래서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바쁜 마음에 닫힘 버튼을 연거푸 누르려던 찰나. 호기심이 가득한 할머니 한 분이 눈알을 굴리시며 종종걸음으로 타셨다. 세명 뿐인 엘리베이터 안에는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아고~ 엄마가 여름방학 동안 얼마나 아를 데리고 돌아다녔으면 이리 까마우? 아이를 이렇게 까맣게 태우면 못써~ 머리카락이 곱슬곱슬한 게 꼭 옛날 못난이 인형 생각난다 얘~호호~흐흐흐 휴가 잘 다녀왔구먼~ ”
“....(고구마처럼 불타던 은유의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대기 시작했다)”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은유를 달래주려 엄마가 나섰다.
“아.... !할머니가 지금 은유 예쁘다고 칭찬해 주시는 거야~ 까맣고 예쁘다고!”
아침부터 속상했던 아이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할머니는... 눈치챌 새도 없이 발 앞에 깔아 놓은 지뢰밭을 즈려 밟으셨다. 일촉즉발. 눈물 폭탄이 빵 터지기 직전이었다.
아빠가 유난히도 바빴던 올 여름방학은 친구들 다 다녀온 휴가 한 번 못 가고 끝이 났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의 뱃속에서 나온 아기 시절 은유는 휴양지를 막 다녀온듯한 구릿빛 피부에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장착하고 태어났었다. 유치원에 입학하고부터 흰 피부의 친구들과 자신의 모습을 번갈아 바라보며 머릿속에 물음표 하나를 그려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심지에 그 불똥이 튄 것이었다.
은유의 울음보자기는 끝내 인내심을 다하였다. 아이가 울기 시작하자 갑자기 귓가에서 요상한소리가 들려왔다.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강가에 꽂아둔 낚싯대에서 방울이 파르르 떨리는 소리말이다. 미끼를 문 물고기가 온몸으로 저항하며 떨던 파동의 근원지를 찾아서 고개를 떨구었다. 어젯밤 야시장에서 사 온 고양이 방울 열쇠고리가 옆가방에 달려있었다. 은유가 유치원 가기 전까지만 엄마에게 빌려준다며 으시대며 달아준 방울이 몸을 흔들며 떨고 있었다.
그때였다. 할머니가 들고 있던 퀴퀴한 비린내가 진동하던 검정 비닐봉지 안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기 시작했다.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바삭하게 마른 멸치였다. 괜한 아이를 울려버린 장본인이 되어버린 할머니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문이 열리자 황급히 자리를 떠나셨다. 찢어진 검은 봉지 사이로 멸치들은 한 마리 두 마리 탈출을 시작했고 할머니의 발걸음 뒤엔 멸치들의 피난 행렬이 펼쳐졌다.
“엄마... 저기... 저.......”
바닥에 낙하하는 멸치들을 본 은유가 할머니의 봉지가 찢어진 걸 알리려고 하던 찰나... 나는 터져버린 수박처럼 쪼개진 웃음을 입가에 띄운 채로 아이의 말을 가로막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알 수 없는 통쾌함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엄마가 되고 아이랑 함께 다니며 듣는 타인의 잔소리들을 거부할 권리가 없는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아 참...!'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다급한 엄마의 잠긴 목소리가 떠올랐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시 길을 나서기 시작했다. 그 뒤로 다가오는 행인 사이로 조그만 고양이방울이 울리면 아이와 문워크로 뒷걸음질치며 요리조리 잘도 피해왔다.
바퀴 달린 탈것을 좋아하는 은유를 꼬드겨서 지하철 승강장에 도착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들을 싣고 괴물의 입속 터널을 지나 사람들을 안전하게 내려주는 지하철은 아이에게 흥분을 주나 보다.
자리에 앉은 은유는 다리를 나비처럼 팔랑팔랑이며 눈으로 탐험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자리에 앉자 손 안의 핸드폰 세상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단절된 세상 속에 있는 기분이었다. 갈 곳을 찾던 눈동자는 자연스레 노약자석으로 향했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감당되지 않는자의 여유로움이 뿜어져 나왔다. 가끔씩 노인들의 눈길은 대화가 끊길 때마다 은유에게로 와 붙박였다. 아이를 훑어보며 제 자식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시곤 주름살이 더해진 길쭉한 눈매로 둥글게 미소 지으셨다. 유독 불편해 보이는 한 분의 할아버지를 빼고 말이다.
“거기 얘야~지하철에서 남들 불편하게 다리 흔들면 안 된다~ 자꾸 그러면 복 나가요~~”
은유의 짧은 다리가 좌석 밖으로 빼꼼 나왔다. 피해가 될까 싶어 신발을 벗겨두었지만 자꾸만 꿈틀대는 다리를 가만히 묶어두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돌연 도깨비처럼 쌀쌀맞은 눈매를 하고 은유를 쏘아볼 수밖에 없다. ‘자꾸 다리 흔들면 지하철에서 우리 쫓겨나 은유야... 제발..’
“오냐~ 그렇게 가만히 있어야지. 예절은 어른들한테 배워가는 거란다. 그래~ 올해 몇 살이니~?”
엄마는 자꾸만 가오리 같은 눈으로 째려보고 모르는 할아버지가 대뜸 건너편에서 나이를 물어오는 상황에서 은유는... 우물쭈물거리기 시작했다. 진땀을 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며 개미같이 속삭였다.
“일..... 일... 곱살......이에요....”(이에요... 는 입속에서 차마 탈출하지 못하고 되삼켜 졌다.)
“에헤이~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래 살면 안 되지. 다들 지가 잘났다고 날뛰는 세상에서 부끄럽다고 대답도 제대로 못하는 성격 갖고서 어떻게 살아갈라 그래. 엄마가 저 성격 고쳐줘야지. 집에서 싸고돌기만 했구먼. 쯧쯧쯧..... ” 할아버지는 고개를 훽 돌리며 혀를 끌끌차셨다.
“엄마... 저 할아버지 지금 나한테 뭐라고 하시는 거야... 내가 들었는데.... 뭘 잘못되었다는 거야.....? ” 겁에 질린 은유가 엄마에게 귓속말로 조아리며 말했다.
뱃멀미 차멀미는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는데 지하철 멀미라는 게 있었던가...
순간적으로 속이 울렁거리고 머릿속이 둔탁하게 울려댔다. 눈을 감자환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코를 세운 버선발의 창백한 여인이 칼날 위에 위태롭게 서있었다. 하얀 한복 위에 달린 저고리들은 거센 바람에 비장하게 나부낀다. 여인은 색색깔의 실로 둘러감은 나무 막대기 위에 달린 거대한 쇠방울들을 흔들어 재끼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가방에 달아둔 고양이 방울 열쇠고리의 진동이 강하게 떨려오기 시작했다. 이전과 다른 둔탁한 쇳소리가 울려왔다.
[ illustrated by Kimi ]
“에헴~ 인천까지는 얼마나 남았더라....”
할아버지의 낙타같이 뻣뻣한 속눈썹은 지하철 노선표를 바라보다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얼굴빛이 점점 쪽빛으로 변해갔다.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으신지 엉덩이를 자꾸 들썩이셨다.
“이런 재수가 없긴.... 인천행인 줄 알았는데 수원행이었네.... 다음 역에 내려야지...” 할아버지가 혼잣말로 뇌까리는 순간 지하철 안내방송이 쩌렁쩌렁 흘러나왔다.
“이 번 열차는 수원으로 가는 급행열차입니다. 무정차로 수원까지 운행합니다. 아름다운 지하철 문화를 위해서 서로 다른 승객을 불편을 주는 행위는 삼가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다음 역은 수.원.역.입니다.”
순간 살짝 벌어진 나의 자두 빛 입술사이로 잘게 쪼개어진 웃음을 흘러나오려다 참아냈다.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들에게 혹을 떼어주고 산길을 내려올 때의 홀가분함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 안의 숨겨져있던 또다른 내면에 흠칫 놀라면서도 강렬한 통쾌함은 잊을 수가 없었다.
'나에게도...잔소리를 거절한 권리가 생긴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 댁에 도착했어요>
“할머니~~ 약이랑 죽 사 왔어요~~ 은유도 왔어요! 얼른 나으세요!”
할머니의 품속으로 파고든 은유가 일부러 어리광을 부리고 있었다. 어지러움증을 조금 덜어낸 할머니는 장롱 속에서 옷 한 벌과 장난감을 꺼내오셨다. 복숭아 씨앗을닮은 초록색 펌프를 누르면 튜브에 연결된 말이 달그락달그락 발을 차며 달리기 시작했다. 말 장난감을 처음 본 은유는 신기해하며 갖고 놀기 시작했다.
“엄마도 참 이런 거 요즘 누가 가지고 논다고~ 엄마 먹고 싶은 거랑 필요한 거 사시지..은유껀 또 왜 샀어~”
엄마는 며칠 전 장날에 사 왔다고 한다. 시장 한 바퀴를 돌며 보이는 물건들에서 혹은 아이들이 먹고 있는 과자에서 은유를 떠올렸을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가 사 온 옷은 아이의 키를 훌쩍 넘었다. 가슴팍에 박힌 공주의 얼굴에는 고운 볼화장이 되어있다. 중세시대 공주가 입을법한 소매에는 흰 프릴 레이스가 풍성히 달려있었다. 시장판을 돌며 고르고 또 골랐으리라 생각하자 갑자기 괜한 질투가 몰려왔다.
‘치~ 나 어릴 때 입고 싶었던 그 옷이나 한 벌 사주지... 그땐 야박하게 나한테 왜 그러셨어요...’
나의 어린 시절. 언니에게서 물려 입은 옷들은 제 할 일을 다 한 듯 손목이 늘어나 닳아 있었다. 유행이 지난 고르덴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면... 커다란 신발주머니로 자꾸만 가리고 싶었다.
어릴적나는제 마음을 헤아려주지 않은 엄마가 미웠지만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뒤늦게 철들어가는 아빠를 붙잡아가며 억척스럽게 자식들을 키워오느라... 서로 속내를 내비칠 새도 없이 지나가버린 날들의 회한이 차고 흘러넘쳤다.
“엄마 나 어릴 때 입고 싶어 하던 그 옷 한 벌 사서 입혀주지 그랬어... 그땐 나한테 왜 그러셨어요....” 잔소리를 한 바탕 늘어놓으려던 순간! 두 입술 사이가 딱풀로 풀칠해놓은 듯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귓가에는 사이다의 포말처럼 작은 물방울 소리가 포르르르 울려왔다.
부엌으로 박차고 나가 선반 위에서 제법 묵직한 유리잔을 꺼내어 찬물을 부었다. 시원한 물 한 모금에 순간적으로 저지를 뻔 한 실수를 알아차리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목젖 사이로 청량한 물줄기를 넘기며 카멜레온처럼두 눈동자로는 빠르게 엄마의 세간살이를 엿보았다.
‘ 낡은 반찬통, 이 나간 접시, 언제 적 사은품으로 받았을지 모를 우유회사 유리컵, 잘 닦아 햇볕에 말려놓은 유리 용기 (훼미리 주스병이나 젓갈병으로 추정됨), 다리를 꼰 인삼의 요사스러운 무늬가 그려진 수저 몇 벌...’
차가운 물길이 지나가고 난목젖 끝에서 쓴 물이 올라오기시작했다.
엄마의 세간살이는 내가 어릴 적 물려받은 옷 소매의 끝자락을 닮아있었다.
가득 차오른 달의 기운으로 빠져나가는 썰물 속에 둥둥 떠있는 부표처럼.... 엄마는 부지런히 삶의 절정으로부터 속절없이 멀어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릴 적 양장점 아주머니 앞에서 양팔을 벌리고 청초하게 서있던 엄마의 젊은 모습이 떠올렸다. 날렵한 맵시의 옷을 맞춰 입던 엄마는 독일을 휩쓸고 불어오던 주방용품의 바람도 제일 먼저 받아들이셨다. 찬장을 열면 유행하는 그릇세트가 유리탑처럼 쌓아져 위용을 과시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때가 엄마 인생의 절정이었으리라...
아득히 멀어질 일만 남은 인생의 절정에 서서...그 순간 엄마는 아셨을까...
내 나이와 비슷한 시절의 엄마를 떠올리다가 지금의 세간살이를 바라보니...앙금처럼 가라앉은 화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엄마의 독일제 압력밥솥의 추가 머릿속에서 훽훽 꼭지를 돌리기 시작했다....
‘엄마.. 자식들이 사다 준 새 그릇 안 쓰고 이게 다 무슨 궁상이야... 그돈 모아서 다 끌어안고 갈 거야? 우리들 한테 눈곱만큼이라도 물려줄 생각하지 말고 속 시원하게 다 쓰다 가시라니까...!!’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 중이던 그 잔소리는...끝내 꺼내지 못했다. 이제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게 일상의 낙이 되어버린... 부모님께 또 다시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 나... 오후에 급한 일 생겨서... 죽이랑 약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있어. 주말에 또 올게요.”
장난감을 갖고 놀던 은유의 손을 낚아채어 잡고 현관문을 뛰쳐나왔다. 엄마가 사주신 은유의 새 옷을 가슴팍에 와락 끌어안았다. 꼭 쥐어진 손가락 마디 사이로 새 옷의 비닐이 쪼글쪼글 쪼그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