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위, 인생의 시작과 끝에 놓이다

생활에서 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하시나요?

by 지각쟁이

무더운 여름이 오면 기력이 떨어지고 식욕이 없다. 입맛을 되찾기 위해 살얼음 동동 띄운 평양냉면을 시켰다. 슴슴하고 개운한 고기국물과 동치미를 섞은 육수에 식초와 겨자를 뿌린다. 동그랗게 잘 말아진 면을 가위로 잘라 먹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어졌다. 주방에서 가위가 마법처럼 사라졌다. 서랍장을 모조리 뒤져보았지만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한 것 같았다.


절체절명의 순간 가위가 사라졌을 땐 당혹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작은 가위가 부엌살림에서 꽤나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라면을 끓일 때 대파를 가위로 숭덩 썰어 넣는 편리함을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식탁위에서 삼겹살도 가위로 잘라 먹는 한국인에게 가위는 도구를 넘어선 그 무언가가 되었다. 만약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무엇을 가져가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나는 작은 주방 가위 하나를 챙기고 싶다.


‘처음 가위가 발명 되었을 때 열렬한 환영을 받았을까? 아니었다.’


두 개의 칼날을 교차해서 만든 가위는 그 당시 사람들에게 쓸모없는 사치품으로 낙인이 찍혔다고 한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던 그 시절에는 대장장이들이 손수 가위를 만들었다. 쇳물을 녹이고 하나하나 두드리고 펴서 만든 귀한 수공예품이었다. 그래서 귀족들만 사용하였다고 한다. 편지봉투용 가위가 따로 있을 만큼 용도별로 철저히 나누어 쓰였다고 한다. 귀족들이 사용 하던 허세의 대명사 가위는 오늘 날 대중들의 식탁 위에서 고기를 자르고 택배상자를 뜯는데 꽤 유용하게 쓰이게 되었다.


‘대체 사라진 가위는 어디로 간 걸까?’ 가위에는 나름 사연이 있었다.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던 날이었다. 결혼생활의 시작을 축하하며 색색깔 리본 끈을 자르던 순간에도 나는 가위와 함께였다. ‘원래 결혼할 때 칼은 엄마가 사주는거야’라던 엄마는 내게 잘 드는 가위 한 벌을 사줬다. 엄마랑 살며 손에 물 한 방울 안 닿게 키운 딸아이가 집안일을 잘 해낼 리 없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던 걸까. 초보 새댁에겐 김치를 자르는 것도 칼보다 가위가 훨씬 수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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