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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각쟁이 May 03. 2019

파란 종이 안경.

장난감 보기를 돌같이 하라.

<어제의 하루>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물에 젖은 바지를 입은 듯 불편해 보였다. 무언가를 말할 듯 말 듯 감추고 있는 눈초리였다. 부엌에서 간식을 준비하던 나는 아무 관심이 없는 척 질문을 툭 내뱉었다. 내겐 엄마가 되고나서 얻은 초능력이 있었다. 언제부턴가 정신을 뒤통수에 집중하면 뒤돌아 무를 썰어도 아이 모습이 훤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은유야~ 오늘은 유치원에서 뭐하고 놀았어?”     


아이의 오밀조밀 작은 입가에선 울음이 반쯤 섞인 대답을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있잖아 엄마..친구들이랑 다 놀고 혼자 블록놀이가 하고 싶어져서 쌓기 영역으로 갔는데...주말에 바다에서 쌓았던 모래성을 블록으로 한참 만들었거든...한 친구가 갑자기 다가와서는 죄다 부...부셔버리잖아!! 나 이제 그 친구랑 절대로 안 놀 거야...유치원도 안 갈거야!!!”


엄마에게 속상함을 털어놓고도 분이 덜 풀렸는지 아이가 말을 이어갔다.

“엄마가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놀라고 유치원에 보내준거지만...가끔은 나도 나 혼자만의 장소가 필요하다구!!”

     


"너어~유치원에선 장난감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얘기해준것 벌써 까먹은거니? 다 함께 생활하는 곳인데 장난감은 친구들이랑 함께 가지고 놀으라고 있는거야!으이구!!” 이기적인 자식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순간 훈계를 늘어놓았다. 하지않는 편이 나을만한 뻔한 말들이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늘 친구같던 엄마의 꼰대같은 반격을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까...어정쩡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애꿎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닦지 않은 먼지들이 뿌옇게 유리창에 쌓여있었다. 갑자기 지나간 나의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이 떠올랐다. 늘 복작거리던 사람들로 둘러 쌓인 하루를 보내던 날들 말이다.


아마도 아이를 양육하며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단체생활에 감이 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아야 한다는 미션를 안겨주곤 아이도 가끔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걸...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지금은 다 지나가 버린 그 시절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개인적인 공간 말이다.

     



[인간은 누구나 심리적으로 타인의 침입을 거부하는 개인적 공간이 있다.]


인간에게는 문화권마다 다른 개인적 공간이 있다고 한다. 북유럽이나 영국 사람들은 개인적 공간이 확보돼야 편안하다 생각하고 중남미와 아랍 사람들은 좁은 공간에서의 어울림에 익숙하다고 한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각 도시마다 느끼는 개인적 공간의 크기는 서로 달랐다.

     

어릴 적 내가 살던 시골에선 개인적 공간이 꽤나 넓었다.


큼직한 땅덩이와 자식들을 다 키워낸 노인들이 넘쳐났다. 사회교과서를 펴고 노동 지대와 생산물 지대를 배울때면 시골풍경을 절로 떠올리게 했다. 황금알을 낳아주는 도시의 땅덩이와는 달리 그저 넓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려면 한 참을 걸어야 해서 늘 다리가 쑤셔왔다. 도보에서 마주치는 행인은 많지 않았다. 밤이면 걸어다니는 일이 오싹오싹 했다. 버스는 어디를 분주히 돌아다니는지 늘 자주 오지 않았다. 하루는 정류장에서  빠르고 강렬하게 지는 해넘이를 오래도록 구경했다.

    

서울에 올라온 첫날은 얼음을 갈아 넣은 사이다를 들이켠듯 충격이었다. 모두들 너무 가까이에 와있었다.


대형서점 모퉁이에서 희귀서적을 발견한 나는 신이나서 계산대에 줄을 서 있었다. 그 순간 뒤통수로 불어오는 뜨겁고 떨리는 숨결이 느껴졌다. 몸에 있는 털들이 놀라서 일제히 일어섰다. 나의 뒷목에 바람을 불고있던 변태를 확인하고 싶은 불안감에 뒤를 돌아보았다. 바짝 다가선 뒷사람 때문에 우리는 한바터먼 코인사를 나눌 뻔했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도 난감한 상황이 벌어졌다. 내 옆자리에는 쩍벌남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그의 허적지 온기가 나의 다리로 전해져 오는 뜨끈한 순간...갑자기 우리는 무슨 사이라도 되는 걸까 생각했다. 넓찍한 들판에서 뛰어다니며 자라온 나에겐 모두들 너무 가까웠다.

 

“아저씨...우리 서로 이런 사이 아니잖아요?”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오늘 하루>


꿀떨어지는 오전의 자유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서둘러 길을 나섰다. 풋내나는 연둣빛으로 막 물들인 나무의 머리채는 풍성하게 빛나고 있었다. 뜨거운 날씨를 보니 곧 매미가 햇볕에 벗어놓은 몸을 말리고 있겠구나 싶었다.


강렬한 햇볕에 눈이 시려져 가방 속을 뒤져보았다. 아이가 두꺼운 종이로 만들어 놓은 안경이 손에 잡혔다.


갓 구운 김처럼 바스락 소리를 내는 푸른색 셀로판지를 덧댄 푸른빛 선글라스.


왠지 그럴싸하게 잘 만들어 놓은 안경을 귀에 걸어 써보았다.

     

순간 밀려오는 어지러움에 눈을 감았다 떴다. 나의 눈 앞은 온통 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푸른빛의 바다가 펼쳐졌다.


길가를 거닐던 사람들은 일제히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 되었다. 섬은 불어오는 거센 바닷바람과 파도와 싸우며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고 있었다. 고요히 홀로 참아내는 과정 그로인해서 빛이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걸 고독이라고 부른다.


고독은 다른 섬이 나서서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커피숍 유리창 너머로 연인들이 보였다. 섬과 섬 사이에 다리를 놓아 부지런히 사랑을 교류하던 그들조차도 하나의 섬이 될 순 없었다. 가끔 무너진 다리의 통증을 스스로 견뎌내야하는 섬들도 보였다.


각자의 섬들은 부지런히 다른 섬에게 조각배를 띄우고 있었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 않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섬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 illustrated by Hyunhee Kim ]

어느새 유치원 앞에 다다랐다.


선생님께 하원 인사를 마치고 나온 아이가 엄마를 발견하곤 뛰기 시작했다.


내 품에 안겨 숨을 헐떡이는 아이를 있는 힘껏 끌어안아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바닥을 바라보았다.


아이와 나 사이에 차갑고 시퍼런 바닷물이 넘실대고 있었다.


그것은 누구도 건널 수 없는 심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이의 어깨가 넓어지고 어른만큼 키가 클수록 바다의 깊이는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당장 내것 같은 품안의 어린 자식을 빼앗길 생각을 하니 억울한 마음이 울컥 밀려들었다. 아이를 더 가까이 꼭 끌어안고 두 눈을 감았다. 아이의 뜨거운 체온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나의 마음속은 온기로 따뜻해졌다.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던 노랫말이 떠오랐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이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엄마도 아이를 붙잡고 풍랑을 이겨내는 하나의 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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