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 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하시나요?
사춘기 시절 나는 문구류를 사랑했다. 그 중에서도 초록, 노랑, 주황 신호등을 떠올리게 하는 ‘삼색 형광팬’을 가장 좋아했다. 종이에 대고 일자로 ‘쓰윽’ 그을 때의 미끄러지는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다. 부러 버리는 종이를 만들어 격자무늬와 물결무늬를 그려보곤 했다. 필기할 때는 주로 ‘사쿠라 젤리펜’과 얇고 섬세한 ‘HI-TEC-C펜’을 애용했다. 이 두 가지만 필통에 있으면 지도를 그리며 필기해야 하는 지리나 세계사 수업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나서 좋아하게 된 팬이 있다. 그것들은 주방 수납장 속에 있다. 바로 음식을 볶을 때 쓰는 후라이팬이다. 나는 언제나 ‘미리멀리스트’를 꿈꾸지만 팬은 여러 종류를 두고 사용하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둥근 ‘후라이팬’을 가장 자주 쓴다. 에그 스크램블이나 스팸 굽기, 어묵볶음 처럼 간단한 음식을 조리한다. 팬 사이즈가 너무 작으면 음식물이 탈출하기 쉽고 반대로 너무 크면 손목에 무리가 오기 쉽다. 나는 보통 24cm 사이즈를 선호하는 편이다. 중간 사이즈 팬은 가스렌지 어느 화기구에 올려도 잘 맞는다. 후라이팬은 코팅 방법에 따라 불소수지 코팅, 마블 코팅, 다이아몬드 코팅 등 여러 가지 종류로 나뉜다. 브랜드나 코팅기술에 따라 후라이팬의 몸값이 널뛰기를 한다. 값비싸고 질 좋은 팬을 구매해서 오래도록 쓰는 분들이 있는 반면 나는 저렴한 팬을 구입하는 편이다. 볶고 지지는 요리 특성상 조리 도구에 까지고 긁혀 팬이 자주 손상된다. 편하게 쓰고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게 좋다. 후라이팬도 수세미처럼 교체주기를 짭게 사용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고물을 수거할 때 짭짤한 용돈벌이가 되기도 한다.
‘불’과 ‘시간’이 맛을 좌우하는 요리들이 있다. 긴 시간을 졸여야하는 국물 닭발이나 센 불에 야채를 튀기듯 볶아야 하는 요리는 주로 ‘웍’을 사용한다. 두텁고 깊이가 깊어 재료가 넘칠 걱정이 없어 좋다. ‘웍’은 부피가 커서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만 후라이팬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자주 쓰이기에 손이 잘 닿는 곳에 둔다.
육고기를 구울 때는 낮은 ‘무쇠팬’을 사용한다. 무쇠팬은 코팅이 되어있지 않아 기름칠을 하는 ‘시즈닝’이 필요하다. 이제 막 은퇴한 거친 종마처럼 길들이기에 예민한 녀석이다. 시즈닝에 실패하면 음식물이 다 눌러붙기 때문이다. 이 녀석은 아령처럼 무겁지만 용광로 같은 팬의 열기에 고기를 한 번 구워 먹어보면...‘지금껏 후라이팬에 구운 삼겹살은 가짜였다’는 기분을 들게 만든다. 겉은 바삭하고 육즙 가득한 속은 촉촉하다. 그 맛을 잊지 못해 무쇠팬에 기름을 칠을 하며 아끼고 길들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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