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 주로 어떤 도구를 이용하시나요?
내게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다. 성장기인 아이의 발은 금방자라 새로 산 신발을 따라잡는다. 작아졌지만 깨끗한 딸아이의 신발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내게도 이런 아담한 신발을 신던 시절이 있었지. 그때 나는 국민학교에 다녔었다. 운동장에서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끝날 것 같지 않은 아침조회를 꾹 참고 서있던 작은 아이였다. 운동회 날이면 흰 체육복 주머니에서 오제미를 꺼내들고 앙다문 이로 박주머니를 노리던 아이. 다 따라잡았다 싶었던 계주에 넘어져도 아파서 울지 않고 분해서 울던 아이. 운동회가 끝나고 흙먼지와 땀이 흥건한 채로 중국집에 달려갔다. 짜장면 한 그릇에 오늘 하루를 행복으로 기록하던 평범한 아이였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하루는 엄마 손을 꼭 잡고 남대문 시장에 갔다. 장보러 가는 엄마를 따라가는 일이 뭐 그리 신날까 싶지만. 꾹 참고 돌아다니면 언제나 보상이 주어졌다. 수입상가에서 물 건너온 텀블러나 가판대에서 반짝이는 악세사리였다. 돌아가는 발걸음에 출출해지면 오백원, 천원 깍은 돈으로 결국 간식을 사먹었다. 메뉴는 주로 고추장으로 코팅 된 떡볶이나 염통을 가득 넣어 빨간 고춧가루로 볶아낸 깻잎 순대볶음이었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이 마냥 신났다. 도로에서 노면을 구르던 버스가 흔들리자 사람들과 손잡이도 함께 리듬을 타는 게 정겨워 보였다.
버스 안에서 문득 엄마를 올려다 보았다. 엄마는 몸을 더듬으며 무언가를 다급하게 찾고 있었다. 커다란 엄마의 가방은 늘 물건들로 가득 차있었다. 엄마가 가방에 손을 넣자 마술처럼 손이 가방 밖으로 통과했다. 어라? 순간 엄마의 눈동자가 텅 비었다. 수산물 시장 가판대에 누워있던 대구나 명태의 눈알 같았다. 엄마의 커다란 가죽가방은 ‘말리려고 손질해둔 생선’처럼 배가 갈라져 홀쭉해 있었다. 그때의 당혹감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 시절에는 버스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소매치기’가 흔한 일이었다. 우리는 텅 빈 발걸음으로 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찢겨진 엄마의 가방이 슬퍼보였다. 엄마랑 함께 보낼 시간을 잃어버려 서글퍼졌다. 괜히 발 앞에 보이는 깡통이나 돌맹이를 발로 찼다가 엄마한테 혼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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