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키워준 팔 할은 반려식물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드신가요?

by 지각쟁이

“문제집 안 그래도 지금 풀려고 그랬거든? 엄마 자꾸 보채지좀 마세요!”


우리 집에는 따사로운 빛이 들어오는 창가 자리에는 두 명의 주인이 있습니다. 그 중 한명은 딸아이죠. ‘봄 햇살에는 며느리를 내보내고 가을 햇살에는 딸을 내보낸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딸아이는 가을 햇살을 만끽하며 창가에 앉아 빈둥모드 입니다. 그런 아이에게 “오늘 할 일”을 물었다가 되려 된통 당했습니다. 내 인생에 넘어오지 말라며 자꾸만 선을 긋는 딸아이 옆으로는 식물들이 주루룩 줄서있습니다. 뱀부 소재로 짜여진 선반은 일층과 이층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곳은 각자 다른 사연 끝에 모인 식물들이 함께 사는 아파트입니다.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던 딸아이 옆에는 식물들이 춤을 춥니다. 공기의 순환을 위해 살짝 열어 놓은 창문틈 사이로 들어온 바람이 리듬을 전해줍니다. 창 밖에서 쏟아지는 햇살 덕에 거실 하얀 벽에는 식물들이 춤추는 그림자로 넘실댑니다. 바람이 파도를 실어온 듯 합니다. 반짝반짝 잎사귀가 긴 ‘스마트필름’은 멋진 기럭지를 뽐내며 흐느적 느끼하게 온몸을 흔듭니다. 갑자기 대학시절 홍대를 주름잡고 다니던 젊었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피식~하고 웃어봅니다. 식물은 삶에 치일 때 나를 잠시 어디론가 데리고 가 줍니다. 그리곤 ‘이 바람을 바라보라’고 말합니다. 그저 멍하니 보고 숨 한 번 크게 쉬었을 뿐인데 기분이 새로워 졌습니다. 식물들이 덕분일까요? 가끔 초고층 아파트 베란다에 매미도 놀러와 노래를 하고 잠자리도 쉬어갑니다.


선반 일층에는 주로 키작은 녀석들이 살고 있습니다. 식물원을 관람하고 나오며 기념으로 하나 둘 받아 온 다육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생김새도 크기도 각자의 개성이 모두 다 다릅니다. 다육이는 착한 아이들입니다. 집사가 물준 것 말고 해준 게 없는데도 잘 자랍니다. 그런데 지나친 관심이 문제입니다. 매일 아침 녀석들이 궁금해 들여다 보면 물도 더 자주 주게 됩니다. 우리집 다육이 녀석들은 작아서 서러운지 키 큰 화분들 사이에서 무럭무럭 웃자랐습니다. 아무래도 관심을 덜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땡글아~이 식물들 좀 봐 너무 멋지지 않니~?”

“뭘 그저 초록색일 뿐이잖아~”

“저기 저 산 좀 봐, 올라가보고 싶지 않니~”

“엄마 나는 바다가 더 좋아요. 어차피 내려올 거 뭣 하러 올라가요?”


저는 어릴적부터 식물과 친해지기 싫었습니다. 유난히 식물을 사랑하던 엄마의 감탄사 앞에서 무감각한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죠. 제게 산은 산이고 풀은 그저 초록색이었던 거죠. 고기를 먹을 때도 꼭 상추에 싸먹어야 하는 게 싫었어요. 한 점이라도 더 고기로 채우고 싶은 ‘고기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랄까 그런 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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