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한 잔을 위해 오늘 하루를 살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드신가요?

by 지각쟁이

올해도 어김없이 맥주의 계절 여름이 돌아왔습니다. 제 인생 맥주는 바로 야구장맥주입니다. 그 당시 야구를 좋아하던 남자친구의 손을 잡고 처음 야구장에 입문하였습니다. 그날 하필 버스카드를 두고 나와서 집으로 되돌아갔어요. 간 김에 앞코가 마음에 들지 않던 구두를 바꿔 신었습니다. 약속시간은 촉박하고 마을버스는 애만 태우고 저는 결국 데이트에 늦고 말았답니다. 남자친구는 텅빈 잠실구장 입구에서 유령처럼 사색이 되어있었답니다.


“저 치킨 한 박스 주세요~”

“소세지 두 개 주세요, 케찹은 빼고 머스타드만 뿌려주시고요~”


그때 저희는 늦었지만 사야할 건 빼먹지 않고 챙겼습니다. 바로 야구장 맥주를 위해서 였죠. 두 손에 먹을 걸 잔뜩 들고 터널처럼 좁은 입구를 지나자 광활한 구장과 사람들의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우리팀이 막 승점을 기록했답니다. 여기저기에서 공기를 채운 응원용 막대를 두드리고 한 목소리로 응원가를 외쳐댔습니다. 야구의 룰도 잘 모르는 저는 어찌된 영문인지 몰랐으나 그들을 따라서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습니다.


컴컴한 영화관에서 좌석을 찾아가듯 조심조심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야구장에 여신이 치어리더라면 여성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는 건 바로 맥주를 파는 청년들이었죠. 훤칠한 키에 야구모자를 눌러쓴 교회오빠 이미지의 청년들은 농약을 뿌릴 때 쓰는 통을 어깨에 메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맥주를 주문하자 번개처럼 날아가 일회용 종이컵에 따라줍니다. 그때 느꼈던 야구장 맥주의 첫맛이 어찌나 시원하고 달달했는지. 가사도 모르는 응원가를 옆 사람 입모양을 보며 고래고래 따라부르고 비닐봉지로 머리띠를 만들어 쓴 채 어깨동무하고 춤을 출수록 야구장에 열기는 달아올라갔습니다.


“크으~맥주에 취하고, 분위기에 취하는 구나~”

“딸깍~스으~~~꿀꺽.꿀꺽”


가족들이 전부 잠든 캄캄한 밤입니다. 조그만 스탠드를 켜고 혼자 맥주 한 캔을 땄습니다. 야구장에서 사색이 되던 남자친구는 이제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잠이 드는 남편이 되었습니다. 핸드폰 배터리가 녹을 만큼 밤새워 전화해도 아쉬워하던 남자친구는 돌아오지 않는걸까요. 문득 야구장을 꽉 채우던 인파와 함성소리가 그리워집니다. 이제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을 까요. 지금은 코로나 2년째입니다. 두꺼운 마스크 때문에 사람들은 표정을 잃었습니다. 잔잔한 행복을 주던 작은 일상들 조차 모조리 빼앗겼기 때문이죠. 모두들 각자의 사정으로 힘든 시절을 묵묵히 통과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야 라고 주문한 마스크는 자꾸만 쌓여갑니다. 델타바이러스의 위협에 새로운 마스크가 나오면 나도모르게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 답답하고 울적해집니다. 그런 날이면 맥주 한 잔의 청량함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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