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규칙적인 생활을 하시는 편인가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 나이 먹을수록 속담이 점쟁이처럼 잘 맞는다. 어린 시절 조그만 습관이 어른이 되어서도 달라붙을 때가 있다. 내게는 사라진 좌측통행이 그렇다. 국민학교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늘 왼쪽으로 붙어 다녔다. 좌측 통행은 잘만 지키면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친구로부터 안전을 지킬 수 있었다. 2010년 좌측통행이던 세상이 갑자기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다. 좌측통행은 일본이 남긴 잔재였기 때문이다. 고대 일본에는 ‘사무라이 규칙’이 있었다. 사무라이는 왼쪽 허리에 칼을 찬다. 상대방이 걸어올 때 서로의 칼자루가 부딪치는 순간, 냉혹한 싸움이 될 수 있기에 좌측으로 통행했다 전해진다. 나에겐 인생 절반은 좌측통행으로 나머지 절반은 우측통행으로 살아왔다. 멍하니 길을 걸을 때면 가끔 발걸음에 혼돈이 느껴지곤 한다.
비오는 날이었다. 비가 바람을 타고 가로로 내렸다. 우산을 방패삼아 쓰다가 그만 좌측통행을 해버렸다. 순간 왼쪽 도로에서 날아든 거센 파도가 덥썩 나를 집어 삼켰다. 잘 빠진 은색 세단은 이미 가고 없었다. 나는 순식간에 물폭탄을 맞은 생쥐꼴이 되었다. 가방 안이며 신발 속에는 물웅덩이가 생겼다. 흥건히 젖었으니 우산을 접어들고 힘껏 휘두르고 싶은 분노가 일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나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중자음으로 튀어나오는 쌍욕을 연신 삼키며 집으로 돌아왔다. 실컷 울고 싶어졌다. 빗물이 뺨 위를 흐르며 대신 울어주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와 벗어던진 옷은 얼룩진 마음처럼 흙탕물 범벅이었다. 약알카리성 계면활성 세제와 과탄산나트륨을 넣고 빨래를 돌렸다. 세탁기는 묵묵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마치 과도를 들고 당황한 내게서 무심히 사과를 가져가 부드럽게 돌려 깍던 남자친구 같았다. 네모난 어깨에 PK티셔츠가 잘 어울리던 그는 늘 같은 자리에서 티내지 않고 남을 돕는 법을 아는 사람이었다. 끝나지 않는 야근처럼 가사노동에 지치는 날이면 언제나 세탁기가 있어 든든했다. 청소기가 고장 나면 빗자루로 쓸면 되고 식기세척기가 고장 나면 고무장갑을 끼면 되지만 세탁기에는 답이 없었다. 벗어 둔 빨래가 금방 산이 되고 쉰내를 풍기기 시작하는 여름철이면 더더욱 소중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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