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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Oct 02. 2016

박제될 변명

오랜 친구를 만나고 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할 나위 없이 화창한 날에도, 그 옛날 그네에 홀연히 앉아서 맡았던 놀이터 가득한 모래의 비에 젖은 냄새가 났다. 

철부지 같았던 그 옛날에, 우리는 해 질 녘 국기하강식과 함께 애국가가 울려 퍼지는 시간이면 가슴에 손을 얹고 순간 의젓한 어른이 된 마냥 착각하곤 했었다. 게양대의 꼭대기에 닿아서 위풍당당 바람에 날리는 태극기를 뒤로하고서야, 우리는 다시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뜻 모를 웃음과 이야기들로 즐거워하며 중단된 놀이를 다시 시작하고는 했다. 이제는 곧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달콤하지만, 미루고 싶은 저녁시간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하루의 놀이를 격하게 마감하는 시간이었다.

그때는 놀이가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하루의 시작도, 끝도 놀이었다. 지겹도록 붙어 다니면서도 지치지 않았었고 서로가 고집을 피워서 싸웠다가도 그 어떠한 화해의 제스처가 없이도 놀이를 통해서 화해는 이루어졌다. 그 놀이는 또래들끼리 어울리는 가운데 자연스레 생겨났고, 서로의 편의에 의해서 수정과 보완을 반복했다. 그 놀이의 대다수는 우리의 형들, 또 그 형의 형들, 또 그 형의 형들의 형들....... 아주 오래전부터 생겨난 놀이겠지만, 우리는 직접적으로 누구에게 가르침도, 지시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온 놀이도 누군가는 전통을 따르고, 누군가는 그 전통 안에서 발전을 찾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거부하고 전혀 새로운 놀이를 갈구하곤 했다.


어른의 세계가 철부지 어린 시절 놀이에 비유하겠는가마는 그 철부지 시절엔 그 놀이가 세계의 전부였을 수도 있다. 그전부의 세계는 각자의 타고난 성향 안에서 서로가 영향을 받으며 충돌하고, 변질되고, 또 타락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의 싸움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고, 더 이상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된다고 보면 그 싸움을 통해서 서로가 성숙해지는 과정이었다. 물론 사내의 세계라는 것이 엄연히 보이지 않는 완력이 작용했을 테지만 그 완력이 상대를 제압하거나 조종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되진 않았다. 

그러기엔 우리는 너무 어렸고, 그래서 어른들처럼 비겁하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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