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녀오고 난 뒤, 여행을 했던 보름기간보다 더 긴 시간을 나는 열병을 앓았다. 그리고 지독한 외로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생각해 보니 그것은 내 일상이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만 혼자 추억에 젖어, 내가 살아가는, 살아내야 하는 일상에 다시 복귀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여행이 일상의 연장이 되지 못한다면 한낱 일탈에 불과할 수 있고, 다시 복귀한 일상에서 그 여행의 추억을 잘 녹여내지 못한다면 애써 떠나갔다 온 그 시간들이 퇴색되기 마련이다.
나는 내가 다녀온 여행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싶었다. 가장 좋은 방법이 생생히 기록하는 것이라 여겼고, 그렇게 하는 사이 모든 것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헤밍웨이는 경험을 어떤 특정한 장소에서 옮겨 적는 일을 옮겨싦기라고 불렀다. 나는 특정한 장소를 정해놓지는 않았지만 카페에서든, 집에서든, 작업실에서든 내가 라오스에서 겪었던 경험을 틈틈이 내 기억과 기록에 의지해 여행기를 쓰면서, 헤밍웨이가 말한 옮겨싦기라는 말이 아주 멋있고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을 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어떠한 이유로 인해 오랫동안 사용해 오던 로션을 여행을 가면서 바꾸게 되었다. 당연히 새로운 로션의 낯선 향기에 적응해야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지금까지 아침저녁으로 새로 바뀐 로션을 바를 때마다 나는 라오스를 생각한다. 아니 생각난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비엔티안의 펍에서 음악에 취해 늦게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얼굴에 바르던 순간의 로션의 향기, 방비엥의 호텔 베란다에서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손등에 문지르던 순간의 로션의 향기, 루앙프라방을 떠나던 날 숙소 마당에서 밴을 기다리며 얼굴에 바르던 순간의 로션의 향기.
여행하는 줄곧 함께했던 로션의 향기가 그런 순간순간의 기억들을 불러올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