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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07. 2016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정치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사회의 부조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없는 자들의 억울함에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아무 지장이 없고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별다른 저항 한번 못해보고 턱밑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도 어쩌면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을 아이들의 절박함과, 어처구니없이 먼저 떠나보낸 자식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알고자 긴 세월을 가슴 새까맣게 타들어가면서도 밀려 올라오는 분노와 울음을 삼키는 그 부모들의 심정을 그저 남의 일인 듯 헤아리지 않아도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다.

우리는 철저하게 각각의 개개인이고, 스스로의 삶을 꾸려가기에도 벅차고 위태롭다.

때로 시간에 쫓겨서 허겁지겁 먹는 단순히 주린 배를 채우기에 급급한 식사들은 위장장애를 일으키기도 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면 주위는 고사하고 제 가정 돌보기에도 벅찬 채 곯아떨어지기도 한다.

사회는 그렇게 경쟁을 부추기고 어떻게든 거기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사람 구실을 하고 살아가는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고, 그 경쟁에서 도태된 자들은 능력이 없는 인간으로 규정되기도 한다.

즉각적인 결과물만이 받아들여지고 그 과정에서 저질러지는 온갖 불법, 만행들은 그럴싸한 결과물만 생산해 낸다면 쉽게 묻혀버린다.


왜 태어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면서, 왜 살아가는가 하는 질문이나 의문은 당연히 쓸데없는 것으로, 그런 것들에 대한 대화들은 서점 한쪽에서 켜켜묵은채 자리 잡고 있는 책들 속에서나 언급될 뿐이다.

어쩌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토론이나 고민도 할 수 없이 한쪽으로만 몰아넣어서 가장 효과적으로 많은 돈을 버는 것이, 그러기 위해서는 명문대를 가고 좋은 직장을 구해서 한평생 별 걱정 없이 살아가는 것만이 능사인 것처럼 세뇌되어 살아온 우리의 환경에서 근본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어른들은 그저 철이 없는 사람이거나, 사회 부적응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 왜 살아갈까.

태어난 이유에 저마다의 의견을 말하듯, 살아가는 이유도 제각각이겠지만 삶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만이 할 수 있다. 그 의미 또한 각자의 몫이겠지만.


결과적으로 본다면 인간은 누구든 죽을 수밖에 없고, 우리의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지만 주위를 둘러보지도 못한 채, 앞만 보고 가는 삶은 그저 허무의 낭떠러지로 내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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