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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의 아줌마 Oct 04. 2020

암구호 하나쯤은....

  

영화관에서 남편과 오랜만에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하교시간이 앞당겨져서 관람 중에 아들에게 전화가 왔다 

울리는 진동벨을 꺼버리고 문자를 쓰는데 다시 아들에게 전화가 오고 전화를 끊어버리고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가방 속에 핸드폰을 넣고 겨우 겨우 


‘응 어 마 여 ㅁ화 보는 중’이라고 오타 많은 문자를 보냈다.

‘엄마? ’

‘으 ㅇ 오 ㅐ? ’

‘엄마 무슨 일 있어요? 뿌리아뜨노바 아부찌또’

‘도이찌지마미 엄마 아빠랑 영화 보는 중이야 아무 일 없어 영화 끝나면 전화할게 오늘은 걸어서 집에 가 있어’

‘네 알겠어요’     


평소에 아들 전화를 꺼버리는 일도 없는 엄마가 전화도 안 받고 오타 많은 문자를 보내니 혹여 엄마가 납치라도 당해 다른 이가 엄마를 가장해 문자를 보내나 싶어 아들이 둘만이 아는 암호를 댄 것이다.(이그 똘똘한 내 새끼) 아차 아들이 크게 걱정하고 있구나 싶어 가방 속에 핸드폰을 넣고 오타 없이 암호와 함께 문자를 보내어 아무 일 없음을 증명해주었던 것이다.   

  

뿌리아뜨노바 아부 찌 또와 도이 찌찌 마미는 아이가 6살 즈음 그저 놀다가 혼자서 만들어진 말이고 별 뜻은 없지만 아들과 나의 암호 같은 말이다. 


또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나오는 원주민 부족의 ‘개또’ 같은 말이다

좋아 가자 먹을래? 등 언어가 발달하지 않은 아마존 부족에게 다양하게 쓰이는 말이다.      


우리 모자에게는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엄마? 뿌리아 뜨노 바 아부 찌 또에요”

“응 엄마도 도이 찌찌 마미야”

이렇게 사랑한다는 혹은 감사의 말로 쓰이기도 하고     

“저녁 뭐해먹을까 아들?”

“응 당연히 쁘리아 뜨노 바 아부 찌 또 죠”

“도이 찌찌 마미 응 라면은 안돼 밥 먹어야지” 

뭐 이런 식의 전라도의 거시기 같은 우리만의 텔레파시 같은 말이기도 하다. 

     

영화 상영 중 마치 군대 야간 보초병들의 암구호처럼 쓰였지만 그럴 목적의 것으로 서로가 미리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다른 관람객에게 피해를 주지 아니하고도 상영 도중 밖으로 나가서 아들 전화를 받지 않고서도 아들에게 엄마의 안전을 알릴 수 있었으니 참으로 용이했긴 했다.      


영화 페이스 오프에서 보면 FBI 요원 존 트라볼타와 테러범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을 사건 해결을 위해 바꾼다. 깨어나 자신의 얼굴이 없어진 걸 알게 된 범인 니콜라스 케이지는 보관된 존 트라볼타의 얼굴을 이식하고 그 인척 그의 아내에게 다가가 며칠간 남편 행세를 한다.

진짜 남편 젠트라볼타가 니콜라스 케이지의 얼굴을 하고 아내에게 다가가지만 아무리 둘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도 테러범 이라고만 생각하지 남편이라고 절대로 아내는 믿지 못한다.      

그러나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쓸어내리는 제스처를 보고 남편임을 확신하게 되는데 남편이 자주 하던 사랑의 제스처였음을 둘만이 알기에 그가 남편임을 믿게 된 것이다. 비록 얼굴은 테러범이더라도 말이다.     


영화관 암호 사건 이후 얼마가 지나 페이스 오프 영화를 아들과 집에서 보았다.

“우리도 저런 암호 같은 게 있어야지 않을까? 우린 뭘로 하지?”하고 아들에게 물었더니

“우리도 있잖아요”

“그게 뭔데?”

“당연히 뿌리아뜨노바 아부 찌 또 죠!!”

“아 하 그렇지? 우리도 있네 도이찌찌마미 ~~~”     

사랑하는 사람과 암호 하나쯤 만들어두어도 좋겠다.

위기의 순간 내게 위안을 줄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나저나 만천하에 둘만의 암호가 공개되었으니 우리 모자도 다시 암구호 하나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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