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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흔의 아줌마 Oct 04. 2020

개미와 프레드릭

10년 전 전업주부가 되고 전혀 예기치 못한 사기를 당하고 3년간 놓았던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허비한 시간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내일은 어제보다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며, 기필코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야 한다고, 더 멋지고 자랑스러운 엄마와 딸이 되어야 한다고,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려 애쓰며, 닥치는 대로 자기 계발서를 읽어내던 때가 있었다. 


그즈음 000이라는 프로도 유튜브로 즐겨보곤 했었는데 그마저도 설거지나 운동 청소를 하면서 시청했다. 시간을 아껴 쓰려고 말이다. 그 프로에는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업가 혹은 어떠한 분야의 전문가 신체적 장애를 이겨낸 청년 조금은 특별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프로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나 이렇게 성공했소. 나 이렇게 역경을 이겨냈소 하는 식이다. 


어느 날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갖가지 역경 속에서도 그 꿈을 이루어 낸 당찬 젊은 출연자가 또래 젊은이들 앞에서 강연하는 것을 남편과 함께 시청 중이었는데 돌연 나 혼자 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이유인즉슨, 너무 어린애들 얘기는 듣기가 거북하단다.

“저 때는 인생 잘 모를 때거든, 지금은 자기가 인생 정답인 거 같고 신작로처럼 성공 가도를 이어나갈 것 같지만 인생 살아봐서 알잖아” 


그 얘기를 듣고 보니 10년 전 대기업 회사를 그만둘 때가 생각났다. 워킹맘을 대신해 손주를 돌봐주시던 엄마는 그런 나를 만류했다. 대기업 다니는 딸이 엄마 자랑인데 애도 다 키워놔서 내년이면 어린이집 보내면 엄마 힘들 것도 없는데 힘든 거 다 지나갔는데 왜 그만두느냐고.

“엄마 회사에서 버는 돈은 푼돈이야. 나 다른 일도 다 야무지게 잘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세상 물정 모르고 그런 소릴 했더랬다. 내 나이 서른하나였다. 양가에 한 푼 받은 거 없이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고 모은 전 재산을 날릴 줄은, 그 모진 풍파가 내 앞에 있을 줄 감히 상상하지 않았더랬다. 만류하던 엄마이기에 정말 힘이 들어도 힘들다고 말 한번 하지 못했다. 10년 만에 딸 집에 와본 아버지는 잘 사는 줄 알았던 딸이 들에 난 풀이나 뜯어먹고 산다며 안절부절 서성이다 한번 앉지도 않고 돌아가시며 가시는 길에 눈물을 훔치셨다고 했다. 결혼할 때도 안 흘리던 눈물을.


내가 퇴직을 하고도 10년 넘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성실하게 회사 다니는 동기들 연봉은 지금 8천만 원 정도다. 퇴직하고 내가 10년간 번 돈도 8천만 원의 반도 안 된다. 오히려 그간 번 돈의 10배도 넘는 돈을 사기를 당하고 손해를 만회해보고자 더 많은 돈과 시간을 흘려보냈다. 인생의 쓰디쓴 맛을 봤던 10년 세월이었다. 

좋아하는 책을 사고 글을 읽고 글을 쓰는 생활을 민생고 없이 하기 위해 내가 요즘 땀 흘려하는 아르바이트는 시간당 만 원 남짓. 앞서 투숙하고 간 이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는 일인데 적게는 8개 많게는 15개의 객실을 치우는 일이다. 그마저도 퐁당퐁당 불규칙한 일이다. 


연봉 8천만 원 vs 시간당 만 원 이게 인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교대 야간근무 3시간 왕복 출퇴근하며 적지 않은 연봉을 받으며 고생한 엄마에게 큰 자랑거리였을 그때보다 어쩜 믿기지 않으려나 모르겠으나 열 배, 아니 한 스무 배 정도는 더 행복감을 느끼며 살고 있으니 정말  인생 참 모를 일이다. 


레오 리오니의 작품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10년 전 4살 아들에게 읽어줬었는데 프레드릭이 했던 말이 불현듯 생각이나 얼마 전 다시 읽어보았다.

처음 이야기는 꼭 개미와 베짱이 얘기 같다. 요약하자면

다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열심히 먹을 것을 모으고 나르던

다른 들쥐들과는 달리 프레드릭은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 프레드릭을 보고 다른 들쥐가 말했다.

“프레드릭 지금 뭐 해?”

“응 햇살을 모으는 중이야!”

“지금은 뭐해?”

“응 색깔을 모으는 중이야 겨울엔 온통 잿빛이잖아”

“프레드릭 너 지금 졸고 있지?”

“이야기를 모으는 중이야!”

추운 겨울이 오고 먹을 것과 이야깃거리가 떨어진 들쥐들에게

프레드릭은 모았던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들쥐들에게 들려준다….

이야기를 들은 들쥐들은 손뼉을 치고 감탄하며 말했다.

“프레드릭 넌 시인이야”라고

프레드릭은 얼굴을 붉히며 수줍게 말했다.

“나도 알아” 


마흔 남짓 살아보니 꼭 인생을 너무 애쓰지 열심히 살지 않아도 그래서 화산처럼 마그마가 끓어 넘치는 순간이 꼭 오지 않더라도 뭉근히 뜨뜻해져 오는 아랫목같이 인생이 그저 소박할지라도, 내가 갖지 못한 것을 바라보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소중히 바라보며 타인 시선의 삶이 아닌 진짜 내 삶을 살아간다면 충분히 행복하다고 이 삶도 나름 성공한 거 아니냐고 당당히 말할 수도 있음을 알겠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자기 계발서를 찾아 읽지 않는 이유이고 더는 종종거리며 일상을 보내지 않는 이유이다. 


한동안은 마치 갑자기 실어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글감 거리도 없고 그나마 있던 필력도 없어져야 한 줄 글도 쓰기가 어려웠는데 말이 늦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말문이 트인 것처럼 쓰고 싶은 말들이 차올라 (물론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단어와 문장이긴 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와 문장을 어디에든 담으려고 대부분의 시간을 책상에 앉을 수밖에 없게 되는 요즘 전업맘으로 산 10년 세월을 허비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나도 프레드릭처럼 이야기를 모았나 보다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간 나는 개미는 옳고 베짱이는 그른 줄 알고 살았다. 아니 불변의 진리인 줄 알았다는 표현이 더 맞을게다. 그럼 언젠가는 많은 곡식을 쌓아두고 찬바람과 먹을거리 걱정 없이 “이 보게 나 베짱이군 나처럼 열심히 좀 살지 그랬나?” 의기양양 말할 줄 알았더니 개미가 아닌 이야기를 모으는 행복한 프레드릭처럼 살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남편 말대로 인생 살아봐서 알 것도 같고 알다가도 모를 것이 인생이지 싶다. 


개미에게 덧붙여 말하고 싶다.

“이 보게 나 개미군. 너무 애쓰며 살지 말게나. 네가 찾고 있는 게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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