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살다 보면은...
힘들고 지치는 순간이 꼭 온단다.
단 한 발자국 내 딛기도 힘들 만큼
떼어 내려할수록
더 깊이 빠지는 진흙 뻘 속에 빠진 듯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몹시도
힘겨운그런 날 말이다.
아들아 그럴 날에는 말이야.
차고 쓴 소주를 네 입에 털어 넣기보다
뜨뜻한 국밥에 밥한 그릇 퐁당 다 말아놓고도
입맛이 없어 한술 떠지지 않아 지거든
아삭아삭 경쾌한 소리가 나는 깍두기 하나 먼저 입에 넣으렴.
신맛으로 침샘이 자극되니 없던 입맛이 돌게다.
뜨끈한 국밥 한 그릇을 국물까지 다 비워내거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다른 날 보다 잠자리를 따뜻하게 한 후
아무 생각하지 말고 잠을 청하거라.
자고 일어나면
네 생각만큼 그렇게 큰 일도 아닐 게다.
그렇게 쉽게 네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는단다.
그리고 지나간 일을 되돌아보지 말거라.
다시 네 앞에 주어진 일을 담담히 최선을 다하거라.
너무 애쓰지 말고 시간을 쓰거라.
네 간절함을 노력으로 바꾸어라.
또 하루하루를 살아내거라.
그 안에 작고 소박한 행복을 느끼면서 말이다.
엄마가 살아보니
아무리 큰일도 지나고 나면 생각보다는 작은 일이더라.
하늘이 무너지는 일도 없더라.
어느 때는
다 이렇게 정해져 있던 게 아닌가 싶더라.
대부분의 일은 더 잘되려고
외려 지름길이나 신작로가 아닌
구불구불 가파른 산길을 되돌아왔는가 싶더라.
그 가파른 산길에도 예상치 못한
인연도 사랑도 행복이 분명 있단다.
내가 지금 볼 수 있는 것들이
아직은 네 눈에 보이지 않듯이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을
네가 모르는 것이 많아
이렇게 구구절절 말해주어도
대부분 귀담아듣지 않겠지만
아니 귀담아듣더라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살다가 살다가 네가 힘든 순간에
만약에 엄마가 네 곁에 없더라도
바람결에 너를 찾아와
네 뺨이든 머리카락 한올이든 어디든 네게 닿아
어렴풋이 나마 기억이 나도록
엄마가 해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진짜 뻘 밭에 빠지면 걸을수록 네 발이 더 빠지니
걷지 말고 누워서 데굴데굴 구르거라
인생도 가끔 걷지 말고 뛰지 말고
굴러야 흘러갈 때도 있단다.
아들과 함께 자주 가던 국밥집에 갔다.
귀퉁이 테이블에 소주잔을 혼자 기울이는 아저씨를 보았다.
국밥은 식어가는데 국밥은 안중에도 없고
차고 쓴 소주만 입에 털어놓는 걸 보니
뭔가 힘든 일이 있는 듯 보였다.
그래 저 아저씨에게는 오늘이 인생 에그 전날 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아들도 인생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올 텐데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했다.
"아들 살다 보면 정말 힘들구나 싶은 날이 있어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그런 날.
그런 날엔 술 먹지 말고 꼭 뜨끈한 이런 국밥 한 그릇 먹어
엄마 유언이야 알았지 꼭 기억해?
입맛이 없어도 있잖아 요 깍두기 하나 입에 넣으면
신맛 때문에 침샘이 자극돼서 입맛이 생겨
그러니 국물 한 방울 남기지 말고 다 비워!
그리고 집으로 가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고
평소보다 따뜻하게 해서
아무 생각 말고 자 알았지?
자고 일어나 봐라
어제 보다 그렇게 큰일이 아닐 거야.
만약 자고 일어났는데도 큰일이면
지나간 일 뒤돌아 보지 말고
담담히 네 할 일하고 살면 돼
지나고 보면 별거 아냐
다 잘되어 있을 거야
엄마도 살아보니 그렇더라.
나중에 엄마가 국밥 먹으면서
이런 말 한 거 힘들 때 기억이나 할런가 모르겠네.
그럼 하나만 기억해 이누마
소주보다 국밥!!! 알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