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포용 그리고 진보
매년 8월 마지막 주 월요일은 잉글랜드(스코틀랜드 공휴일은 다르다.) 여름 공휴일 (뱅크 홀리데이) 이자, 전날인 일요일을 포함해서 2일 동안 열리는 길거리 축제 “노팅힐 카니발 Notting Hill Carnival”의 마지막날이다.
화려하고 컬러풀하게 분장한 사람들의 퍼레이드에서부터, 스틸 드럼의 다이내믹한 음악, 곳곳에서 보이는 작은 퍼포먼스들과 거부할 수 없는 냄새의 캐리비안 음식 노점들의 향연에서 느껴지듯이, 노팅힐 카니발은 열정적인 캐리비안의 문화 축제이다.
한국인에게는 그리 가깝지 않은 캐리비안.
영국과는 식민지 시절부터 역사가 깊은 곳이다.
> 노팅힐 카니발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지금은 영국인 모두가 즐기는 축제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즐겁지 않았다.
1948년 몇 백여 명의 캐리비안 이민자를 실은 HMT 엠파이어 윈드러시 Empire Windrush 배가 영국에 상륙했다. 그들은 2차 세계대전으로 피폐화된 도시를 되살리는데 부족한 노동자를 보충하기 위해 영국 정부가 식민지 시민들을 대상으로 영국 거주권을 약속하고 초청한 자메이카, 바바도스등 캐리비안 지역에서 몸을 실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거주할 곳도 마땅치 않았고, 많은 이들은 인종차별에 시달렸다.
1958년 소수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노팅힐 지역에서 웨스트 인디스 West Indies 인들을 폭행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퇴근하는 길에 뒤에서 맞은 사람에서부터,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경찰 사이에서 많은 피해가 일어났다.
저널리스트이자 액티비스트인 클라우디아 존스는 이 폭동의 대항으로 캐리비안인들만의 문화를 감사하며 즐기는 축제를 주관하기 시작했다. 실내에서 시작되었던 이 축제는 1966년부터 노팅힐 거리 축제로 승격되었고, 올해 55번째 생일을 맞이했다.
> 문화적 다양성과 과다노출 경범죄의 기준
열정이 넘치는 캐리비안 문화이니 만큼 그 분위기에 참여하고 싶은 참가자들의 의상은 가지각색이다.
화려한 색감에서부터 과감한 노출까지 자신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다.
작년 한국에서 오토바이 비키니 커플이 사회적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보수적인 한국의 사회 분위기상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었는데,
노팅힐 카니발이나 브라질의 불타는 카니발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깊은 유교문화 속에서 노출을 꺼려하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반발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영국 법에서도 과다노출죄가 존재한다. 2명 이상의 대중 앞에서 외설적이고 불쾌한 행동을 했을 때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곳 런던에서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인종의 다양성에서 시작해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문화의 다양성.
문화의 다양성은 그들의 의상, 머리스타일, 음식 등을 모두 포용한다.
물론 역사적인 충돌과 많은 사건들의 결과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겪은 후, 지금의 브리티쉬를 대표하는 다양성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물론 아직도 소수의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앞으로 이 나라가 풀어갈 남아있는 과제라고 생각한다.
> 경찰 태도로 보는 진보적인 사회 분위기 : 극단적인 사회비판이 아닌 포용과 진화의 가능성
또 하나 눈에 띄는 장면은 경찰의 대처였다.
그 규모답게 문제가 없을 수 없다. 작년 축제에서는 경찰이 속수무책이 되었을 정도의 충돌과 범죄가 있었다. 문제가 많았던 축제지만, 곳곳에 2-3명의 소수그룹으로 배치되어 있는 경찰들은 축제의 분위기를 망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서 편안하고 유연하게 관찰하는 듯했다.
축제가 끝난 다음에 폭력, 마약소지, 성범죄가 있었다고 하는데, 문제의 발발 가능성을 인식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의 축제를 더 진보적으로 대비한다고 한다.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사회적 비판의 흐름이나 결정이 아닌, 포용하며 진화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 사유재산 보호와 그라피티 아티스트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축제인 만큼, 그 지역 주민들의 피해도 대단하다. 아침에 나가보면 집 앞에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와 오물에서 오는 악취. 심지어는 창문이 깨지는 사례들도 빈번하다.
그 지역 사업자들과 사유지 주인들은 축제에 대비해서 나무 패널로 담을 만든다. 적지 않은 돈이 들지만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재밌는 것은, 지역구에서 그라피티 Graffiti 아티스트를 불러 모아서 그 패널에 태그 Tags를 그리게 한다. 사유재산을 보호할 목적으로 세워지는 패널이지만,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에 의해 그것은 축제의 분위기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키는데 한 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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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명실공히 유럽에서 가장 큰 길거리 축제로 자리 잡은 노팅힐 카니발.
문제도 많은 기간이지만, 그 문제점을 안고 진보하려는 모습이 보인다.
또한 축제 기간 동안 침체되어 있던 런던 버스와 언더그라운드(런던 지하철) 사용량이 배로 늘었다니, 이것 또한 좋은 뉴스이지 않은가?
문제만 보면 문제만 보이지만,
문제로 인해 전체를 부정하지 않는 문화가 선진문화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