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를 미루기로 미루기 금지.
어쩌다 보니 미뤄지게 되었다. 미루려고 미룬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미룬 것이다.
모두 미루고 난 뒤에 나오는 대답이다. 그래 미루는 것이 주는 달콤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쓰디쓰다.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나는 미루는 달콤함을 냉큼 삼킨다. 결국 쓰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말이다.
작년 치과에 방문해 스케일링을 받았다. 치아에 치석을 제거하고, 이쪽저쪽 두루 살펴보더니
"이 정도면 관리는 잘하고 있으시네요." 칭찬을 들었다. 그래!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고.
"사랑니는 빼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빼라니... 그것보다 무서운 말이 있을까? 그것도 치과에서.
대답을 우물쭈물하다 결국 '네.'라고 했지만 역시 치과는 이상하게 무섭다. 당연하지만 굳이 보이고 싶지 않은 입을 열어 일단 속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고, 기구들이 아주 투박하고 무섭게 생겼고, 심지어 귓가에 들려오는 그 모터의 소리가. 공포영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나이는 많이 채워놓고도 치과에 가면 다 반납하고는 불안해한다.
사실 치과가 편한 사람이 그리 많겠는가? 가야 하니 가고, 가다 보니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니 편해지는 거겠지만 나에겐 그런 경험이 쌓이지 않았으니 복이라면 복이고, 병원에 가야 할 땐 불운이라면 불운이 된다.
아무튼 그렇게 대답하고는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해가 바뀌었고, 별문제도 없다 생각했는데. 일이 터졌다. 그 사랑니 주변이 아프다. 그것도 갑자기. 슬슬 신호는 보내왔을 것인데 인지하고도 무시했던 나를 반성한다. 그래 미룬 거지. 가기 싫어서 미룬 것이지. 결국 크게 될 거란 것을 알면서도 애써 외면했건만 이렇게 마주할 줄이야...
아무튼 쓰디쓴 결과를 마주한다. 그래 이제 더 이상 미루면 내가 아파 죽겠지.... 이제라도 미루기를 미뤄야겠다. 미루기를 미루기로 미루다니. 이 어이없음이... 아주 냉철한 분석 같이 느껴진다.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나를 향해 잔소리한다.
고만 좀 미루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