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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무드 Apr 20. 2020

흐리고 이른 오후에

나의 사색이 흐르는 이 시간 [마무드 에세이, 12]


 내 방에는 햇빛이 잘 들지 않는 편이다. 큰 창이 있지만 햇빛을 등지고 있는 방향에 방이 위치해서 해가 잘 들지 않는다.

 햇빛이 잘 들지 않지만 날이 좋은 아침에는 따뜻한 연노랑빛의 해가 잠시 들리기도 하기에 큰 창에 커튼이 있지만 항상 커튼을 치지 않고 지낸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회색빛의 하늘이 창 밖으로 맴돌았다. 그리고 오랜만에 아주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회색빛의 하늘색에 일찍 깨어본 기억이 아주 드물어 조금은 어색한 아침을 보냈다. 그리고 12시가 지나 오후가 되었다. 여전히 흐린 하늘. 옅은 먹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덕분에 내 머릿속에 잡념이 많아진다. 잡념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지금, 나는 하나씩 천천히 해보기로 한다. 우선 스피커를 연결해 노래를 튼다. ‘애월 낙조-장필순’을 틀었다. 오늘의 하늘이 흐리고 탁하니 제주 애월에서 봤던 선셋, 그 평화로웠던 순간을 떠올려보기 위해 선곡했다. 그때의 노을을 떠올리며 하나씩 정리해본다.


 어젯밤, 나는 기분 좋은 꿈을 꾸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서인가 오늘 하루 마음이 참 복잡하다. 뚜렷한 형체가 없는 복잡한 마음은 나를 우울이라는 동굴에 슬며시 밀어 넣는 듯하다. 나는 잠에 깊이 들지 못한다. 그래서 늘 꿈을 꾼다. 기분 좋은 꿈도 있지만 대게는 어딘가 찝찝하고 흐린 느낌의 꿈을 꾼다. 심하면 악몽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꿈을 꾼다. 그런 꿈들은 내 하루를 장악해버리고는 한다. 마치 오늘 하루를 꿈으로 미리 보여준 것처럼, 찝찝하고 먹구름이 드리운 날처럼 어둡다. 오늘이 그런 날인가 보다. 그런데 또 이상하다. 나도 나를 종잡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오늘이 또 그런 날인가 보다. 오랜만에 빠진 이 우울이라는 늪이 그렇게 싫지 않다. 꼭 매일이 밝고 경쾌하게 흘러가는 리듬이 아니어도, 조금은 느리고 어두운 리듬이더라도 그 나름대로의 음악이 되지 않겠는가. 오랜만이지만 낯설지 않은 이 리듬의 하루에 나를 온전히 눕히고 흘러가 보려고 한다.


 그저 나를 이곳에 누여 복잡한 실타래의 시작에는 무엇이 있나 생각해본다. 시작을 알기 어렵다면 끝이라도 발견해보려고 노력한다. 노력. 아, 또 한 단어에 꽂히고 말았다. 노력. 실타래의 끝에 노력이라는 단어가 있는 듯하다. 사실 그 무엇이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사색에 빠질 수 있을만한 것이라면 그 무엇이든 이미 상관없었다. 그래,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아야겠다.


 노력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애를 쓴다, 수고한다’ 같은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들은 항상 인생을 살며 애써온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는 항상 남까지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리고 더 나아가 배려하기 위해 애를 썼고 함께 웃기 위해 애썼다. 소중한 것을 잃지 않으려고 내 손바닥에 올려놓고 주먹을 꽉 쥐며 살아왔다. 그렇게 주먹 꽉 쥐고 살아간다고 나의 인생에서 없어질 것들이 없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아무리 꽉 쥐어도 모래알들이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때까지 꽉 쥐며 살아온 것 같다. 이제야 나는 손에 힘을 풀고 아려오는 손톱자국을 온전히 아파하며 회복하는 중이다. 바알 게진 손톱자국이 너무 쓰라린 날이 있다. 그게 오늘인 듯싶다. 주먹 꽉 쥐고 애써온 날들이 후회스럽지만 후회해도 변하는 건 없기에 떨쳐내려고 노력한다. 아, 또 노력한다. 왜 이렇게 끝도 없이 노력해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날이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은 날이다.


 짧은 삶이지만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노력으로 무언가 된 적은 없는 것 같다는 비관적 생각에 빠져든다. 내가 지금까지 무언가 된 것은 노력하지 않아도 그저 ‘나’ 자체만으로도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그것도 나름대로의 복이겠지만 반대로 얘기하면 내가 노력한 것은 이루어진 적 없다는 말도 되기에 한껏 풀이 죽는다.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되지 않는 일들이 이렇게 투성이라니, 참 싫다. 그렇다고 애쓰지 않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애쓰지 않으면 내가 정말 엉망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애쓰는 내가 너무나도 가엾지만 애쓰는 일을 놓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나라니. 오늘은 내가 정말 싫어지는 날이다.


 흐린 날 오후, 참 많은 ‘나’들이 존재한다. 많은 내가 존재하는 이곳에 나를 가만히 누여 놓고 모든 것들이 흘러가도록 둔다. 최대한 애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의 사색을 억지로 접으려고 하지 않는다. 오늘만큼은 내 마음이 마음껏 느끼고 싶은 대로 느끼도록 내버려 두고 싶다. 나 스스로가 싫다면 싫은 대로, 눈물이 나면 나는 대로.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내일 아침은 일어나는 그 순간부터 다시 노력해보려고 한다. 애를 써보려고 한다. 무엇을 위해 노력하든 나의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나는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쉴 수 있는 시간을 주며 살아간다. 방식은 다를 수 있겠지만 당신도, 당신만을 위한 시간을. 감정이 편히 누울 수 있는 자리를 하루정도 가질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달리기에는 우리는 너무나도 나약한 인간 아니겠는가.  


-2020.4.20 사색의 시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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