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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을 먹었다

똥이 더러우면 피하지 말고 치우면 된다

by 리뷰몽땅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잖아. 꿈을 꾸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냥 푹 잘 잤다는거지. 나는 밤마다 꿈을 꿔. 때로는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기도 하는데 어젯밤은 똥을 엄청나게 쌌어. 근데 변기에서 똥을 싸고 물을 내리는데 화장실 바닥 하수구로 똥이 내려가는거야. 막히면 어쩌나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고 있었거든. 꾸역꾸역 천천히 내려가던 똥이 막힘없이 내려갔어. 다행이다 하는데 어쩌다 내 입에 똥이 묻은거야. 입 안에 똥이 있었던가. 나는 똥을 씻으려고 뭔가를 찾고 있었는데. 그게 뭔지를 모르겠는거야. 삼키지도 못하고 뱉지도 못하고 ..."


민수는 이른 아침부터 민정의 전화를 받았다. 이제 막 아침 라면을 먹으려던 찰나였다. 그런데 똥을 먹었다니.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 한 젓가락을 막 입에 넣으려던 찰나였다. 평소 라면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하게 아침부터 라면이 먹고 싶었다. 건강에도 좋지 않은 라면을 집에 둘 이유가 없어 씨를 말려놓은 상태였다. 창문을 빼꼼 열어봤다. 겨울 바람이 차다. 바람이 꽤 부는지 나무들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라면을 먹고 싶다는 생각과 이 날씨에 걸어서 5분이 걸리는 편의점엘 가야한다는 생각이 싸웠다. 라면이 이겼다.


"야, 듣고 있어? 그래서 내가 눈뜨자마자 똥꿈 해몽을 검색했거든. 그랬더니 똥을 시원하게 싼 건 길몽이고 똥을 먹었는데 기분이 좋으면 길몽이고 안 좋으면 뭔가 일이 생길거라는데. 그럼 나는 도대체 뭐니?"


라면을 들었다가 놨다가 반복하던 민수는 결국 젓가락을 내려 놓았다. 왠지 눈앞에 민정의 똥이 어른거렸다. 민정의 집에 전등을 갈아 끼워주러 갔었다. 화장실이 급해서 대문을 열자마자 직진을 했다. 변기 뚜껑을 열었는데. 이런. 민정이 똥을 싸고 물을 내리지 않아서 구역질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멀쩡하게 생겨서는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다. 아무렇지 않게 아침부터 똥 이야기를 꺼내다니.


"그래서 말이야. 우리 오늘 2시에 만나? 그런데 바람도 많이 불고 좀 추운거 같아. 만나서 우리 어디 갈 데는 있어? 이렇게 추울 때는 전기장판 켜고 이불 속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데. "


만나지 않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이다. 속된 말로 볼 것 못 볼 것 모두 본 사이다. 우리가 연인인가. 민수는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때로는 불알 친구 같다는 생각도 한다. 아주 친한 친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일들을 민정에게는 부담없이 꺼낼 수 있다. 민정의 가장 큰 장점이다. 대단한 일을 대단하지 않게 넘겨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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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란 게 뭔가 기대나 두려움 같은 걸 반영한대. 내가 그 일 때문에 그런걸까? "


민정은 지금 임대인과 분쟁중이다. 겨우 장판 3cm를 찢어 먹었는데 임대인은 장판을 모두 원상복구 시켜 놓으라고 했다. 분쟁에 휘말리기 싫어하는 민수지만 이번에는 참을 수 없었다. 이건 앞범퍼에 기스 난 걸 가지고 범퍼를 모두 갈아달라는 것과 별반 다를게 없었다. 만나서 함께 이야기를 좀 하자고 했다. 임대인은 거절했다.


"민수야. 나 아무래도 그 돈 못 돌려받을건가봐. 똥을 먹어서 찝찝했다면 안 좋은 꿈이래. 하필이면 오늘 이런 꿈을 꿀게 뭐야. "


내일은 임대인과 법정에서 결국 만나는 날이다. 임대인은 결국 민정의 보증금 3천만원 중에서 200만원을 빼고 송금했다. 이유는 수리비라는 것이다. 3cm와 200만원. 제기랄. 어느새 변호사까지 동반해서 민정과 민수가 임대인 아니 집주인 그 개자식에게 문자를 보낸 건수가 대량 200건이 넘으니 이게 죄라는 거다.


"200만원 날리면 그것들이 그냥 넘어갈까? 정말 나를 문자폭탄인가 뭔가로 고소할까? 근데 법이 뭐가 이렇게 지랄맞아? 내가 잘못한게 뭔지 내가 알 수가 있어야지"


불현듯 민수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구에게는 200만원이 아무렇지 않겠지만 민정과 민수에게 200만원은 큰 돈이다. 한 달 월급의 2/3이다. 그러니까 똥은 왜 먹었어. 목구멍까지 말이 나올뻔 했지만 참았다. 민정은 요즘 한달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문자를 많이 보낸 것 만으로는 죄가 안된다고도 하던데. 그 때 법률구조공단에서 만났던 의사도 그랬잖아. 하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나도 변호사를 써야 했다고. 변호사 없이 변호사하고 싸우는 게 말이 되냐고."


내심 겁이 났다. 만약 민정이 아니 우리가 진다면 상대방 변호사 비용까지 모두 내야 하는데. 지금은 먹고 죽을 돈도 없지 않은가. 라면이 식어가기 시작했다. 살짝 기름진 국물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이제는 라면이 국물을 먹기 시작하면서 팅팅 붓고 있었다.


"....."


30분째 혼자서 한참을 떠들던 민정이 갑자기 말이 없었다. 민수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민수는 폰을 내려놓고 스피커를 켰다. 민정도 그러고 있을 것이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너도 머리가 복잡하지?"


글쎄. 머리가 복잡한 이유가 단순히 그 일 때문일까. 단순하게 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삶이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단순해지려고 할 이유는 없다.


"너 그 똥에 대해서 자세히 말해봐. 똥에 대한 네 감정 말이야."


"똥에 대한 감정? "


"무서웠어. 더러웠어"


"당연히 더러웠지. 똥이 어떻게 무서워"


그럼 됐다. 더러웠다면 됐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 찢어진 장판 3cm 가지고 수리비를 200만원 청구하는 그것들을 우리가 무서워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더러운 새끼들.


"더러워도 입에 담고 있었던거지?"


"응. 그냥 입에 있었지. 그런데 입안에 가득 똥이 있는게 아니라 그냥 입술 주변에 묻었던거야."


꿈의 상징은 사람마다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 뱀은 무서운 존재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와 지혜를 상징할 수도 있지 않을까. 꿈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꿈이 미래를 알려준다는 건? 그런건 없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듯이.


"그럼 됐어. 너는 더러운 똥을 뱉지 않고 입에 묻히고 있으면서 그걸 닦기 위해 방법을 찾고 있었던 거잖아. 지금의 네 상황을 그냥 나타낸거야. 더러운 똥 같은 집주인 자식을 혼내줄 방법을 찾고 있는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그런 네 마음을 똥이 대신해준거지."


똥을 먹지는 않았다. 더러운 똥을 뱉을 방법을 찾고 있었던 거지. 불어터진 라면을 싱크대에 부어버리고 민수는 뒷정리를 했다. 내가 라면 먹는 꼴을 못보는구나. 구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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