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맘에 꼭 드는 엄마
"내가 그랬어. 내가 찔렀어."
큰 딸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놀라지 말고 들으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놀래야 하는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았습니다. 자식이 여럿 있으면 꼭 엄마 팔자를 닮는 딸이 나온다지요. 엄마 맘에 꼭 드는 자식이 꼭 그런 일을 겪을 필요는 없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는데.
부모가 늙으면 자식들한테 해 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늘이 무너질 듯한 말을 듣고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요양사의 도움으로 병원에 다녀오고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밥을 먹고 약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이 핑 도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나는 끙끙 앓으며 걱정이나 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바람을 피는 남편이 손찌검까지 하는데도 버티고 사는 것 말고는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냥 자리를 지키고 앉아서 새벽이면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싸고 낮에는 만화방 문을 열고 저녁에는 장을 보고 밤에는 남편의 뒤를 쫓거나 얻어 맞는 일이 몸서리치게 싫었지만 그래도 바람 피는 남편의 버릇만 고쳐 놓으면 모든 일은 다 해결될 줄 알았지요. 평생을 이렇게 살 줄은 몰랐습니다. 다 커버린 딸들은 그 때 이혼이라도 하지 그랬냐고 하지만 할 줄 알았으면 했겠지요.
서슬 퍼렇게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사람을 패던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 죽이고 싶었습니다. 아니 죽여버릴까 생각했습니다. 아니 죽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막내가 그랬을까. 그 착한 아이가 그런 짓을 했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게 힘들었는데 지금까지 한마디 말도 없이 어떻게 참고 살았을까.
참고 참고 또 참다가 막내의 번호를 눌렀습니다. 아침에도 받지 않고 점심을 먹고도 받지 않더니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한참이 지나서 막내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엄마" 아무일 없었다는 듯,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억지로 밝은 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를 엄마는 아닌데도 막내는 제발 그렇게 생각해 달라는 듯이 엄마를 불렀습니다. 심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어요. 나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막내의 이름을 부르며 전화를 받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냐. 네가 왜 그랬냐고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그냥 나도 아무일 없는 것처럼 밥은 먹었냐. 몸은 괜찮냐 그렇게 물어봤어야 했을것을.
"미안해. 엄마." 그 말을 들으려고 그랬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그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속이 상했으며 그동안 얼마나 참고 살았는지 그동안 엄마가 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몰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나는 왜 네가 그런 짓을 했냐고 대성통곡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어. 그러니까 걱정마. 엄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괜히 걱정 끼쳐서 미안해. " 막내는 거듭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었고 나는 계속해서 왜 그랬냐고 묻고 또 물었습니다.
매일 맞고 살았다는 것을 나는 왜 몰랐을까요. 내 맘에 꼭 드는 자식이라고 그렇게 자랑하고 다녔으면서 엄마 앞에서 늘 밝은 모습만 보이려고 죽을 힘을 다한 자식의 모습을 나는 왜 보지 못했을까요.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사위는 딸을 매일처럼 때려야 했을까요. 무엇 때문에 남편은 나를 그렇게 때려야 했을까요.
남편이 죽고 나서 단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았던 사진을 꺼내어 나는 주먹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았던 울분을 쏟아냈습니다. 살아서는 멱살 한 번도 잡아보지 못했던 남편의 얼굴에 있는 힘껏 주먹을 내리쳤습니다. 바닥이 쾅쾅 울릴 정도로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엄마 팔자를 왜 네가 닮아가. 엄마 팔자를 왜 !!
사위에게 전화를 걸면. 오히려 막내를 더 힘들게 할까봐 나는 안절부절이었습니다.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내가 남편을 찔렀다고 말하며 온 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던 막내가 눈 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칼에 찔리고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막내와 살고 있다는 사위에게 도대체 무슨 맘이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행여 이 자식이 지금 이 순간에도 막내를 못살게 굴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움에 몸이 떨렸습니다. 그걸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그걸 이제서야 알다니. 얼마나 오랫동안 시달려왔는지 나는 알아야겠습니다. 알아야겠어요.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