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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콜롬버스는 원주민 학살범이었다

by 리뷰몽땅

같은 사건이라 하더라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영웅담이 되기도 하고 범죄사가 되기도 한다. 콜롬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1492년을 우리는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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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버스는 이탈리아 최대의 항구 도시 제노바의 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세 시대에 베네치아와 함께 지중해의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강력한 도시.


수많은 선박과 선원들이 오가는 항구에서 소년 콜롬버스는 다양한 항해 기술과 정보를 접했고 지중해 전역에서 온 상인, 상원들과 교류하며 새계 각국의 문화와 지리에 대한 호기심을 키웠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부와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바다로 떠나는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탐험가적인 기질을 함양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콜럼버스가 훗날 아시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는 기반이 되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아시아의 향신료와 금은 엄청난 부를 보장하는 핵심무역이었다. 그도 역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서는 탐험이 불가피했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은 난공불락이라 여겨지던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키고 기존의 무역 경로를 통제하면서 이를 오가는 국가들에게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전통적인 육상 무역로 실크로드는 제 구실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실크로드를 통해서 들여오던 후추, 계피 등의 동방의 향신료 가격은 미친듯이 오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독점 무역의 이익을 즐기던 베네치아와 제노바 상인들은 심각한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이제 막 새로운 신흥 해양 강국으로 떠오르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기회가 열린 참이었다. 그들은 새로운 해상 무역로 개척에 국가적 사활을 걸기 시작했다.


이들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해상 무역로 개척에 더 열성적이었던 데에는 지리적 위치와 당시의 정치, 경제적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유럽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하고 있어 아시아로 향하는 대양 항해를 시작하기에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이탈리아 중심의 지중해 무역에서는 큰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새로운 시장 개척이 더욱 절실했던 참이었다.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는 일찍부터 항해 학교를 설립하고 탐험가를 후원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해양 탐험을 장려했고 스페인 역시 대항해 시대의 문을 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 제노바 출신의 야심 찬 선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등장한다. 당시 포르투갈이 아프리카 남단을 따라 위험하고 긴 동쪽 항로 개척에 매달리는 동안 콜럼버스는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서쪽으로 항해하면 더 빠르고 쉽게 아시아에 도착할 수 있다며 스페인을 꼬드겼다.


물론 그의 주장은 당시의 과학적 지식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과 영국, 프랑스는 그의 제안을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난도 국왕은 콜럼버스의 계산이 틀렸을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포르투갈보다 먼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는 절박함과 종교적 열망으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스페인이 콜롬버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면 아메리칸 원주민들은 학살을 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었을까?


다음주 목요일 제 2편이 올라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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