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2)

질서는 무너진다

by 리뷰몽땅

'아메리카 대륙을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이라는 질문은 초등학생에게도 시시하다. 가끔 콜럼버스가 아니라는 대답을 할 수도 있지만 이러쿵저러쿵 따지기도 귀찮으니 그냥 콜럼버스라고 해두자. 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이미 수만 년 동안 다양한 부족이 살아가며 그들만의 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당시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직전 아메리카 인구는 대략 6,000만 명 이상이었으며 많게는 1억 명 가까이로 추정되기도 한다.


아스텍, 마야, 잉카 제국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문명을 그들은 이미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옥수수, 감자, 카카오, 토마토, 고추, 콩, 호박, 카사바, 퀴노아 등 지금 우리들이 먹고 있는 식량 작물 상당수를 그들은 이미 재배하고 있었으며 도로와 관개시설이 발달해 있는 곳도 많았다.


운 좋게도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 본토가 아니라 카리브해의 한 섬에 도착하게 된다. 만약 그가 본토에 발을 디뎠다면 역사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버렸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그 섬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빈 땅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 다시 콜럼버스가 항해를 떠나는 과정으로 돌아가보자. 스페인 여왕의 후원을 받으며 포부도 당당하게 콜럼버스는 지구는 둥글다, 그러니 서쪽으로 가면 동양에 빨리 갈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된다.


세 척의 배에 타고 있는 90명의 선원 중에는 죄수 출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죄수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사람은 아니었을 것. 그런 편견은 지우기로 하자. 죄 없이도 죄인이 되는 사람은 오늘날에도 빈번하니까.


콜럼버스는 먼저 남서쪽으로 내려가 카나리아 제도를 향해 나아갔다. 그곳은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대서양 전진기지로 그곳에서 식량과 물, 장비를 재정비하였다. 무엇보다도 카나리아는 동에서 서로 부는 바람을 타기 위한 최적의 출발점이었다.


세 척의 배가 카나리아 제도에 도착한 것은 8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였다. 고장 난 방향타를 수리하고

돛을 손 본 후에 다시 장거리 항해를 위한 항로를 계산하고 보급까지 마친 후 약 보름 1492년 9월 6일 그는

배를 출발시킨다.


나침반과 태양, 별의 위치를 통해 서쪽으로 거의 직선에 가깝게 나아가면 아시아의 동쪽 섬들에 도착할 것이라 믿었던 콜럼버스의 생각과 날이 여러 날이 지나도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망망대해 한가운데에서 선원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물고기 밥이 되는 건 아닐까.


결국 콜럼버스는 실제 항해한 거리보다 줄여서 기록한 가짜 항해일지를 만들어서 보여주며 사실 우리가 육지에서 이만큼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며 선원들을 안심시켰으며 가끔 바다 위에 떠다니는 잡초들과 육지에 가까이 사는 새들이 보일 때면 것 봐라, 이제 육지가 가까워온다며 허풍을 떨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북동에서 불던 무역풍과 함께 날아가는 새 떼의 이동방향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골럼버스는 남서쪽으로 진로를 바꾼다면 육지를 볼 수 있겠다고 판단한다


마침내 하늘이 도왔을까. 아니면 어린 시절부터 갈고닦은 바다에 대한 감각 때문이었을까. 약 한 달이 지난 후 멀리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선원 중 한 명이 육지를 포착한다


그리고 콜럼버스는 이 섬을 아시아 동쪽 변두리에 있는 섬들 가운데 하나쯤으로 착각하고 그들을 향해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원주민들을 인디오라고 제 멋대로 이름을 붙인다.


콜럼버스는 무장한 보트를 타고 카스티야와 아라곤 왕가의 깃발을 들고 상륙한다. 그리고 자신이 이 섬을 페르난도 국왕과 이사벨라 여왕의 이름으로 점령한다는 선언을 하게 되고 이 장면을 공식 문서로 남기도록 증인을 통해 기록하게 한다


섬사람들은 기이한 행동을 하는 이들에게 서서히 접근하였고 콜럼버스는 빨간 모자, 유리구슬, 작은 방울 같은 값싼 장신구를 나눠 주었다


유럽의 무너진 질서를 기회 삼아 아시아로 가던 콜럼버스는 이제 아메리카 대륙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야기는 다음 편에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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