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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잠을 위한 속삭이는 이야기

천하를 지배한 유일한 여황제 측천무후

by 리뷰몽땅 Mar 13. 2025

안녕하세요. 깊은 잠을 위한 속삭이는 이야기.입니다. 니체가 그랬하고 합니다.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두려워할수록 더 집착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 그 사랑을 망친다라고.     


절대 내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나요?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움에 빠져 있다면

오히려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이제 내 것이 아니다라는 마음을 가져본다면 잃어버리지 않게 될까요?     

가끔은 무슨 똥 같은 소리냐고 투덜대기도 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을때는 

니체가 했던 말이 최고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즘 제가 그렇거든요. 하하     


오늘의 이야기는 측천무후우입니다. 

중국 역사 속에서 딱 한 사람의 여자 황제였던 그녀는 

중국 역사에 등장한 남자들 백을 합해도 모자람이 없는 대단한 이력을 남긴 여인입니다.     


측천무후의 성은 무입니다. 이름인 조이고요. 그러니 이름은 무조였습니다.

 이름이 참 매력적이죠. 무조. 똑똑하고 예뻤다고 합니다. 

성격도 활발하고 명랑해서 거문고와 바둑, 서예와 그림 등 모든 부분에 두각을 나타내어 

부모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으나 열두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무조와 그녀의 어머니는 일시에 후원자를 잃게 되었습니다.

 친척들간의 이렇고 저런 싸움을 피해서 모녀는 교외의 허름한 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하루아침에 궁핍한 생활을 하게 된 무조는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밤낮으로 공부를 하며 기회를 엿보았다고 합니다. 

노력만 한다면 반드시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측천무후의 삶에서 가장 큰 믿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런 그녀는 겨우 열네살의 나이에 궁으로 들어가게 되고 16살에 입궁을 하여 당태종의 후궁이 됩니다. 

그녀는 부드럽고 정숙하면서도 행동거지가 남달랐으며 자질이 총명하여 당태종의 사랑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당태종은 무조를 예뻐하기는 하였으나 여인으로 가까이 두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한 눈에 보아도 미모가 출중한 여성을 왜 외면하였을까요?     


당태종에게도 이유는 있습니다. 

당시 궁굴에 새로 들여온 말이 하도 사나워서 

대장군이었던 을지경덕이라는 사람이 몇 번이고 말에서 떨어지자 

이를 지켜보던 무조가 자신이 저 말을 길들여보겠다고 나섭니다. 

어린  소녀인 네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자 무조는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쇠막대를 휘둘러서 기를 죽이고 그래도 안되면 철추로 내려치고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칼로 목을 따면 될 일입니다. ”     


이 말을 듣고 깜짝 놀란 태종은 그러면 말이 죽을 텐데 

죽이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라고 하자 무조는 또 이렇게 답을 합니다.  

   

"폐하의 장수들은 모두 폐하와 생사고락을 함께 한 충신들이니다. 

말이 멋대로 날뛰면서 대장군을 다치게 했는데 어찌 말 한 마리를 아끼시려 합니까."

     

어떤가요? 당차고 당돌한가요? 태종은 이 말을 듣고 그녀를 존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인으로서의 감정은 느끼지 못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종은 좋아하는 정벌 전쟁을 위해서 궁을 비울 때마다 

측천무후로 하여금 궁의 사무를 대신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점점 실권을 쥐게 되었던 것이죠.      


하지만 쥐구멍에도 볕들날이 있듯이 무조에게도 사랑의 불꽃은 타오릅니다. 

태종의 아들 고종이 무조를 좋아했거든요. 첫 눈에 사랑에 빠져버렸죠.    

 

태종이 죽게 되면서 무조는 당시의 법도에 따라 비구니가 되어 절로 들어갑니다.

 겨우 20대 초반의 젋은 나이에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절로 들어가야 하다니. 얼마나 통탄스러웠을까요.     


하지만 고종은 아버지의 아내였기 때문에 지켜보아야만 했던 그 무조가 

비구니가 되는 것을 두고볼 수는 없었겠지요.

 기회는 이때다 고종은 무조를 궁으로 불러 들이고 자신의 아내였던 당시의 황후를 궁에서 쫓아내 버립니다.      

여기에도 또 깊은 사연이 있습니다. 

귀비가 된 측천무후는 점점 실권을 장악해 갑니다.  

그녀는 이미 권력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으며 이를 얻기 위해서는 

중요한 대신들이 자신을 위해 힘을 쓰도록 실력을 발휘합니다. 


동시에 태종이 총애했던 소숙비와도 왕래하면서 그녀의 마음을 얻어둡니다. 

그녀의 최종 목표는 황후 자리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황후를 자리에서 몰아내야 했죠. 

무조는 황후의 명성에 타격을 줄 방법을 찾기 시작합니다. 


무조는 자신의 어린 딸이 황후에게 살해당했다고 고하였고 

이에 고종이 황후를 쫓아내었다는 것인데.

 일설에는 무조 스스로 자신의 어린달을 목 졸라 죽였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무조는 황후와 후궁을 함께 제거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고종은 이를 승낙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상당히 잔혹했습니다. 

먼저 곤장 100대를 때렸고 피부가 터져 나간 두 사람의 사지를 잘라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인 두 사람을 술독에 담그어 천천히 며칠 동안 죽어가게 방치했다지요. 

거의 죽기 직전이 되자 당시 후궁이었던 소숙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고양이로 태어나겠다. 그래서 쥐로 다시 태어난 너를 물어 죽여 주마”     


그래서일까요. 측천무후는 살아있을 때 고양이를 황실에서 키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로부터 몇 년 휘 고종은 갑자기 뇌졸중을 일으키며 행동 능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측천무후는 이 틈을 타서 황제를 대신해 정무를 처리하였고 실권을 장악해 나갔으며 

조정의 대권을 움켜쥐게 됩니다.      

심지어 고종이 죽은 뒤에도 측천무후의 세력은 시들지 않았으니 

고종의 두 아들을 차례로 황위에 올리면서 계속해서 섭정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섭정이란 어린 군주를 대신해 그의 어머니나 다른 어른들이 정치를 대신 하는 것이죠.   

   

똑똑하고 야무졌던 무조는 자식들이 하는 짓이 못마땅했나봅니다. 

아니 오히려 자식들이 정치를 잘할까봐 두려웠었는지도 모릅니다.

이러니 저러니 아들인 황제에게 매일 큰소리를 냈고 너무나도 무서운 어머니의 모습에 

그 아들들은 해가 뜨는 것이 공포스러울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무조의 권력에 대한 욕심은 끝이 없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자라 성인이 되어 섭정이 필요없게 되면 그 아들들을 황제의 자리에서 쫓아내기도 했으니까요

마침내 두 아들을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셋째 아들 중종을 황위에 올린 무조는 

중종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중종 스스로의 생각대로 나랏일에 관여하는 것이 몹시도 못마땅했습니다.   

   

애미가 하라면 하라는대로 할 것이지 저것이 나를 넘어 진짜 황제 노릇을 하려는구나. 라고 생각한 무조는 

아들을 다시 한번 자리에서 몰아내고 넷째 아들을 황위에 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요. 이러다 이 녀석도 대가리가 굵어지면 나를 넘어서려 하겠지.

 그럴바에야 내가 황제를 하는 것이 낫겠다.   

  

마침내  690년 무조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주나라를 세웁니다. 

이 때 그녀의 나이는 66세였습니다.

이 후 역사가들은 그녀를 측천무후라고 부르고 그녀가 세운 주나라를 무주라고 부릅니다. 

왜 역사가들은 그녀를 황제라고 부르지 않고 측천무후라는 이름을 붙였을까요. 

이는 그녀로 황제로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측전무후가 당나라의 황후 때부터 무주의 황제 때가지 나라를 다스린 기간은 

자그마치 50여년이나 됩니다.     

성격은 남자 못지 않았고 권력에 대한 욕심도 남부럽지 않았으며 

자기 말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가차 없이 죽일 정도로 차갑고 냉정했던 측천무후는 

천수를 누리며 80살에 죽을 때까지 살아있는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황제가 되기 전 측천무후는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세력을 가차없이 숙청해 나갔습니다.

 고종이 사망한 후 당나라의 황족들은 그녀가 권력을 장악하는 것을 막으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이를 알아챈 측천무후는 이들을 대량 숙청합니다.      


이십육사는 측천무후가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치한 비밀 경찰 조직입니다. 

이 조직은 고문과 협박을 통해 반대파를 색출하고 

적의 동향을 감시하며 권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고문을 통해 고발자를 얻기도 하고 범죄를 억지로 자백시키는 방법으로 반대파를 제거해 나갔는데요. 

신하들이나 귀족들이 의심스러운 행동을 할 경우

 즉각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이들을 처단해나가는 시스템이었습니다.    

  

이들의 고문 방식은 매우 잔인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귀에 진흙을 넣기도 하고 두개골을 조이고 꺾기도 했으면 눈동자를 가르기도 했다는데요. 

말로만 들어도 몸서리 처지는 잔혹함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만행은 일반 시민들에게도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반대하는 의도가 있다고 오해받으면 즉시 잡혀들어가거나 처형을 당했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측천무후에 반대하는 세력을 키워나가게 됩니다.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득이 있으면 실이 있는 것이지요.


과거제를 개혁해서 실력 위주의 관리를 등용하는 정책을 통해서 유능한 인재를 발탁했으며 

농업 정책을 강화해서 국가 경젤르 안정적으로 운영했던 것은 측천 무후의 치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석가모니의 후계자로 여기고 대형 불상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적극 장려하기도 했는데요. 

말년에 건강이 악화되면서 권력 기반이 흔들리고 결국 쿠데타로 인혜 폐위되었습니다.   


 깊은 잠을 위한 속삭이는 이야기


유덕화가 주연했던 중국영화 적인걸은 측천무후의 총애를 받았던 실존인물입니다.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판단력이 뒤어났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뛰어났으며 과거 시험에 급제하여 관리로 활동하게 되는데

 특히 법률 방면에 능력이 뒤어나 지금의 법무부 차관급으로 활동하면서

 많은 억울한 사건을 해결해 나갔습니다. 


특히 측천무후는 적인걸을 그의 정치적 조언자로 여기고 중요한 개혁을 맡겼는데요. 

이런 세력을 등에 업고도 그는 청렴한 태도로 올바른 정치의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그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측천 무후는 이를 몹시도 안타깝게 여겼고 특별한 예우를 갖춰 장례를 치렀습니다.     

뭔가 측천무후와 알콩달콩한 이야기를 기대하셨다면 다소 실망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권력욕이 강하였던 그녀에게 남자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측천무후는 남자들과의 정치적 관계를 통해 권력을 다져나갔습니다. 

남자들은 그녀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적인걸과 같은 이들은 그녀의 정치적 파트너였고 어떤 이들은 연인이나 남편으로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먼저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이었던 당 고종의 이야기를 다시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어찌되었던 무조가 측천무후라는 강력한 여제로서의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까요. 

만약 고종이 그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갔다면 

측천무후라는 인물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녀의 두 번째 남자는 장양입니다. 장양은 측천무후의 친위대장이면서 정치적인 측근으로 

그녀가 내린 명령이라면 모두 수행하였습니다. 

무조가 고종의 후궁으로 들어와 황후 자리를 놓고 궁중 내의 복잡한 정치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군분투할 때 장양은 그녀와 매우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그녀의 후원자가 됩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황후에 올라가기 무섭게 장양의 정치적 입지를 위협하고 

마침내 잔혹한 그녀의 배신으로 정치적 몰락을 맞게 됩니다.     


무소불휘의 힘을 휘두르던 측천무후도 인간인지라 나날이 쇠약해져 갑니다. 

시간은 사람을 그냥 두지 않으니까요. 

비단처럼 고왔던 검은 머리카락은 하얗게 변했고 

살아있는 고기라도 뜯어먹을 것 같던 강한 이도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갑자기 남자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젋고 잘생긴 남자들만 골라 면수라고 부르며 궁으로 불러들입니다. 

젋은 남자들과의 사랑 놀음에 빠져 노년을 보내다 72세의 할머니가 된 그녀의 몸은 

시시각각으로 나빠졌고 마침내 쿠데타가 발생하자 어쩔 수 없이 황위를 물려줍니다.     


측천무후가 가장 총애했던 면수 중 한 남자의 이름이 바로 설회의입니다. 

그는 수시로 측천무후를 만날 수 있었고 이를 힘으로 삼아 

신하들에게 호들갑을 떨며 갖은 횡포를 부렸습니다. 

하지만 측천무후는 그런 설회의를 그저 예뻐하며 이성을 잃어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직 여황제로서의 도도함을 잃지 않았던 그녀가 

왜 이토록 이상한 짓을 벌였을까요. 이는 당시 자신의 자제들이 후에 멸족 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그녀의 예상대로 측천무후가 죽자 젊은 남자들은 모두 궁에서 쫓겨났고 

무주의 자제들은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측천무후는 중국 역사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매우 유능한 지도자였으며 그녀가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에는 

경제적으로도 안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발전도 눈부실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도 남성 위주의 전통적인 정치구조 속에서 여성으로서 황제 자리에 올라 

독보적인 능력을 발휘한 것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대량의 살육을 저질렀으며 불법을 감행하였습니다. 

잔인하면서도 냉혹하였지만 효율적이며서도 강력한 지도자였던 측천무후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이 납니다.      

인간적인 면모와 삶의 고뇌 결단력과 책임감 그리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녀의 삶 속에는

 자기애와 자긍심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뜬금없지만 나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내 삶을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가는 힘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기가 참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능력과 판단력 감정을 믿고 

내가 선택한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지탱하는 힘이 될 것입니다. 


미래에 나는 더 나은 내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오늘도 좋은 꿈 꾸세요. 잘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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